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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Dec 27. 2023

계속 바뀌는 이야기

엄마가 이전 글 <여자니까 못해도 돼>를 쓰고 나니까 너한테 미안한 거 있지. 아빠를 ‘그분’이라고 한 걸 네가 읽으면 가슴에 찬바람이 일지 않을까 후회되더라고. 엄마도 미처 알지 못한 속마음을 쓰다 보니 정리되지 않은 감정이 드러나는 것 같아. 너는 엄마와 아빠가 함께 있는 장면이 기억에 가물가물하고, 지금은 상상도 안된다고 했지만(상상을 못 할 건 뭐야) 그래도 내가 좀 더 세심하게 표현하지 못해서 미안하다.     


너는 엄마와 아빠와 왜 헤어지게 되었는지 물어보지 않았지. 아니 물어본 적이 있었던가? 그동안 네가 아빠하고 있었던 이야기를 자주 해왔고, 나는 장난과 진심을 넘나들며 끼어들었어.(그러다 너한테 혼나기도 했지) 그러는 사이 나름대로 이유를 짐작했을까. 하긴 엄마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유를 네가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엄마가 제대로 모른다고 한 건 시간이 지날수록 결론이 자꾸 바뀌기 때문이야. 살아갈수록 내가 보지 못한 부분이 드러난다고 해야 할까. 내가 서있는 곳은 생각보다 아주 넓은 곳이었는데 발밑만 봤다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들고 아직 내 발이 닿지 않은 곳을 내다볼 수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생겨.      




아빠를 만났을 때 엄마는 이 사람과 함께 한다면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이겨나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어. 남자한테 그런 확신이 든 적은 처음이었지. 한 번은 엄마와 아빠가 계곡에 놀러 간 적이 있었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어. 조그만 지붕이 있는 곳으로 피했는데 아빠가 비가 들이치는 바깥쪽으로 몸을 등지고 비를 막아주었어. 그때 어쩌면 이 사람과 결혼할지 모르겠다는 예감이 드는 거야. 이 사람은 세상의 모든 어려움으로부터 나를 지켜주겠구나, 하고 생각할 때 아빠 몸에서 피어나던 훈기와 땀냄새가 지금도 기억이 나.     


하지만 그런 기대로 시작했던 게 문제였어. 출산과 육아를 하고, 학원을 개업하는, 나로서는 처음인 세 가지 일을 동시에 했으니 힘든 게 당연했지만 그걸 받아들이지 못했어. 비를 막아주지 않는 아빠 탓을 한 것 같아. 아마 아빠도 몰랐을 거야. 결혼생활에서 처음으로 겪는 문제 앞에서 당황했던 건 나와 마찬가지였을 테니까.

 

그래도 아빠는 엄마만큼 기대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 신혼 초에 내가 아침밥을 해주지 못한 날이 있었거든? 그때 내가 미안하다고 하니까 아빠가 이렇게 말했어.     


“아침밥을 먹지 못한 건 내가 준비하지 못해서지 당신이 미안한 일은 아니에요. 당신이 전업주부라고 하더라도 아침밥을 해야 할 의무는 없어요.”     


아빠는 엄마한테 기대하지 않았거나 적어도 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했던 것 같아. 경제적인 부분을 반씩 부담했던 것도 기대하지 않기 위한 노력이었을 수 있고.    

  

반면 엄마는 인정받고 싶어서 애썼던 것 같아. 그냥 못하겠다고, 이건 내 능력밖이라고 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했어. 나 자신보다는 아내, 엄마, 며느리라는 역할을 잘 수행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던 것 같아. 내가 몰랐고 내가 선택하지 않은 내 안에 원래 있던 본능 같은 거지. 그건 여자와 남자가 생존해 온 방식이 다르고, 각자 양육되어 온 방식이 다른 데서 비롯된 거야. 과거부터 여성은 관계에서 자신의 의미를 찾아왔기 때문이야. 


그때는 내가 힘든 이유를 스스로 질문하지 못했어. 시선이 밖으로만 향해 있었으니 제일 가까운 사람인 아빠가 모든 원인 제공자처럼 보였어. 어떻게 날 이렇게 힘들게 할 수 있나. 나를 어떻게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 수 있나 하고 원망했지.   


오늘 아침에 네가 빨래통을 뒤졌잖아. 내가 빨래를 했어야 했냐고 물으니까 네가 “내가 어제 한다는 걸 깜빡했어”라고 했잖아. 너는 빨래가 안되어 있을 때조차 한 번도 엄마를 탓하는 법이 없었어. 그럴 때 나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래, 아빠를 닮은 거겠지. 그런데 있잖아. 나중에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걸 좀 받아주면 안 되나, 옳고 그름을 나누는 일이 아니라 함께 사는 일인데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고 하지 않는구나. 


엄마도 할 말은 없어. 아빠의 한계를 알고 그것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이해하고 끌어안으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어. 우리가 헤어진 이유는 달라서가 아니라 서로의 아픈 부분을 품지 못했기 때문이야. 서로의 좋은 점만 보고 결혼해 보니 어두운 면이 드러났고, 그것까지 그 사람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어. 넌 의지가 부족했다고, 나약하게 도망쳤다고 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있잖아. 도망치는데도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고 말하고 싶다. 아빠도 아마 그랬을 거야. 공평하게도.     


전지적 엄마관점의 이야기일 수 있는데 엄마는 기대를 하지 않는 노력은 못했지만, 함께 살기 위한 노력은 했어.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던 것 같아. 4년간 혼자 부부문제로 상담을 받았던 것도 그 때문이야. 그런데 그러지 말았어야 했어. 상담을 받는 그 시간이 너무 외로웠거든. 혼자만 비를 다 맞고 걷는 기분이었어. 그래서 포기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이만큼 비를 맞았으면 됐다고, 그만하자고 말이야. 아무래도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겠다. 아직도 보지 못한 곳이 많이 남아 있으니까.

오트밀죽, 숙주볶음, 브로콜리무침, 토마토쥬스, 12월 27일 아침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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