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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Jan 08. 2024

다들 내 논 자식들인가?

초밥: 애들하고 우리 집에서 하루 자면 안 돼?

나: 나도 마음에 준비는 하고 있었어. 내가 없는 날로 한번 정해보자.

초밥: 엄마 있어도 괜찮아. 효인이네 부모님은 계셨어.     


초밥이네 조직원은 9명. 효인이네 집에서 조직원들이 숙박한 것만 8번이다. 그때마다 결석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내가 어디서 잤냐고 물으니까 다 같이 거실에 이불 깔고 잤단다. 횟수가 거듭되자 나는 효인이네 부모님에게 심심한 위로의 뜻으로 초밥이 손에 과일을 들려 보냈다. 그리고 언젠가 내 차례가 한 번은 올 거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다.    


나는 9명이 조잘대는 소리를 들으면서 잘 엄두가 나지 않아서 산으로 도망가기로 했다. 지리산 대피소를 예약하고 그날 친구들을 오라고 했다. 샌드위치라도 만들어놓으려고 했더니 초밥이가 시켜 먹는다며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해서 그냥 나왔다.      


지리산 천왕봉을 오르고 장터목 대피소에 자고 다음날 집에 돌아온 시간은 오후 1시. 초토화된 집에 조직원 몇 명이 널브러져서 자고 있을지 모른다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문을 열었는데 어라? 집 안은 내가 나가기 전과 똑같았다.      


나: 다 갔어? 집 깨끗하네?

초밥: 애들이랑 내가 다 치웠지.

나: 술병이랑 싹 치웠어?

초밥: 어.     


와, 이 분들 노는 데만큼은 철저한 프로정신이 있는 분들이다.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이번에 다시 한번 놀랐다. 효인이가 어머니가 주셨다며 석류를 가지고 왔고, 가현이는 건강 음료 박스를 들고 왔단다. 갱년기와 건강을 잘 챙겨보자는 이심전심이 느껴졌다.


 



올여름에 있었던 일이다.  초밥이와 친구들이 계곡에 놀러 가는데 나한테 기사 역할을 부탁했다. 가족행사로 세 명이 빠지고 여섯 명이 간다는데 출발시간이 새벽 5시 30분이었다. 아이고 그 꼭두새벽에 시간 맞춰 나올 수 있을까 했더니 컴컴한 어둠 속에 다섯 명이 아이박스 세 개, 불판, 수박, 과자 봉다리를 들고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너희들 진짜 진심이구나. 조직원들이 착착 착석하는데 내가 물었다.

      

나: 못 가게 하는 부모님이 있을 법도 한데 다들 내 논 자식들인가?

조직원들: 하하하. 맞아요.


구불구불한 길을 한참 올라가니 아이들이 검색해서 알아냈다는 평상이 있는 식당이 나왔다. 아침 7시도 안 된 시간이었다. 내가 자리 잡는 것만 보고 가겠다고 하니까 아이들이 어서 가라고 절을 해서 쫓겨나듯이 자리를 떴는데, 집에 돌아오니 초밥이가 소고기를 구워 먹고 있는 사진을 보내왔다.


          



초밥: 졸업식 때 엄마, 아빠 만나겠네?

나: 아버님은 그날 바쁜 일 없으시다니?

초밥: 헐. 바빠도 와야지.

나: 나는 졸업식 때 조직원들 부모님들하고 인사하고 싶어. 친구들 덕분에 너희들에게 평생 가는 추억이 생긴 걸 자축하고 싶거든. 차라도 한 잔 하고 싶은데, 너의 아버님 때문에 어색하게 생겼네.

초밥: 크크크. 자축은 좋네.     


(술병은 제가 장난을 친 거고, 초밥이네 조직원들은 건전하게 노는 분들입니다)


신난 아이들, 흰 옷이 초밥
어서 가라고 절을 함
노는데 빈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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