짭짤이토마토 2.5kg 26,900원
마트에서 온 광고문자를 쳐다보다가 창을 닫았다. 토마토는 늘 박스로 샀다. 가격이 내렸을 때를 기다려 수업을 마치고 늦게라도 가서 사 오고는 했다. 토마토는 초밥이가 어떤 순간에도 거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강판에 간 토마토주스를 좋아했다. 믹서기를 쓰지 않고 손수 갈아야 물이 맑고 알갱이를 씹는 맛이 있다고 했다. 전지적 먹기만 하는 사람의 멘트였다.
“토마토 갈아주까?”
“어!”
늦으면 기회가 사라질까 봐 그러는지 다급히 대답하는 소리에 웃음이 나고는 했다. 아침에 화장하느라 아무리 바빠도 토마토 주스는 마시고 갔다. 혹시 남으면 “학교 갔다 와서 먹을 거야”라며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내가 먹을까 봐 그러는 거다.
한 번은 빼빼로데이에 빼빼로를 과하게 받은 것 같길래 다 먹으면 건강에 해로울까 봐 내가 몇 개 먹었더니, 귀신같이 알아챘다.
“아몬드 빼빼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데 먹었어?”
에미한테 하나 사주지는 못할망정 그거 하나 먹었다고 난리냐. 에미는 토마토 박스를 이고 와서 팔이 나가도록 갈아주는데. 아무튼 그때 이후로 녀석은 과자를 사 오면 다람쥐처럼 이불 안이나 서랍에 숨기고 갔다. 학교에서 돌아와서 과자를 들고 먹고 다니는 걸 보고 내가 하나만 달라고 하면 진짜 하나만 준다. 더 달라고 하면 두 개는 선 넘는 거라는 소리나 했다.
나: 어디에 숨겨놓고 갔냐?
초밥: 안 가르쳐줘.
나: 너는 내가 먹깨비로 보이냐?
초밥: 맞잖아.
초밥이가 있을 때 귤 한 박스가(5kg) 일주일을 넘기지 못했다. 까먹을 때마다 언젠가 먹었던 최고 달았던 귤과 비교하는 소리를 들어야 해서 귤을 고르는데도 신중해야 했다. 올해는 귤도 어찌나 비싼지 5kg에 4만 원이 넘었다. 작년에 과일트럭에서 한 박스에 만원인 귤을 세 박스를 사서 하나는 연언니네 갖다주고, 하나는 한길문고에 간식으로 배달했었는데 말이다. 그 만만했던 귤을 겨우 한 박스를 사 와서 아끼느라 나는 조금만 먹었다.
집에 먹을 게 없으면 편의점에서 사 먹을 것 같아서 초밥이가 학교 갔다 와서 바로 먹을 수 있도록 고구마를 구워 놓거나 바나나를 식탁 위에 두었다. 늘 초밥이가 좋아하면서도 가공되지 않는 간식을 고민했다.
장을 볼 때 초밥이가 뭘 사놓으면 잘 먹을까 궁리하며 찬찬히 둘러봤다. 샤인머스캣 가격이 내렸는데 살까 하다가 내려놓고, 바나나를 들고 텔레파시도 아니고 “너 이거 사놓으면 먹을 거야?” 물었다. 지난주에 바나나 샀더니 하나도 안 먹었잖아, 그 전주에는 잘 먹어놓고, 아, 연속으로 사면 안 먹는구나, 그럼 다음 주에 사야겠다. 이런 식이었다. 초밥이가 가고 나서 이런 머릿속의 조잘거림이 딱 멈췄다.
어제는 딸기가 싱싱하고 알맹이가 큰데 가격도 저렴했다. 예전 같으면 횡재를 만난 기분으로 사가지고 왔을 텐데 초밥이가 없다는 사실만 크게 느껴졌다. 이제 떡집에 들러 백설기를 사 올 일도 없다. 상투과자, 호두과자를 살 일도 없고, 마트 광고문자를 자세히 볼 필요도 없다. 돈가스, 모자렐라 치즈, 냉동만두를 사지 않아도 된다. 수업이 끝나고 나가서 과일박스를 이고 오지 않아도 되고, 일주일 동안 고기반찬을 하지 않아도 된다.
딸기, 토마토, 귤, 바나나, 고구마를 볼 때마다 초밥이 생각이 난다. 백설기, 상투과자, 호두과자, 모자렐라 치즈, 만두를 봐도 초밥이가 떠오른다.
띠띠띠띠
"엄마 수업 없어?
“어. 학생 수학여행 갔어.”
“와! 대박. 오늘 완전 빡치는 일 있었잖아. 어이가 없어가지고.”
금방이라도 초밥이가 현관문 비번을 누르고 들어와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낼 것 같은 오후다. 식탁에 다리를 걸치고 간식을 먹으면서. 하지만 집안은 적막만 흘렀다.
-------------------------------------------------------------------------------------------------------------------------
독자님들 잘 지내셨어요? 3월 19일에 일주일 후에 새로운 연재를 한다고 해놓고는 벌써 두 달이 지나버렸네요. 우선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죄송해요. 두 달간 저는 그동안 썼던 글을 퇴고했어요. 무작정 글만 쓸 게 아니라 천천히 읽어보며 정리하는 시간도 필요하더라고요. 그런 시간을 가지고 나면 안 보이던 것도 보이고, 글을 쓰면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아요. 독자님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꾸준히 글은 쓰고 있었답니다. 그러면서도 그래도 약속을 했는데, 하고 마음 한켠이 무거웠어요.
그래서 앞으로 계획을 말씀드리려고 해요. 저는 한 달간 퇴고 작업을 더하고 새로운 연재를 시작하겠습니다. 그 한 달 사이에 오늘처럼 간간이 글을 발행할 수 있고요.
<30일간의 아침밥> 이후의 초밥이와 저의 일상을 독자님들께 전하고 싶은 마음이 늘 있었어요. 한참 연재를 할 때는 의무감 때문에 힘들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독자님들과 편지를 주고받는 것처럼 글을 썼던 순간이 그립더라고요. 요즘 혼자 머리를 쥐어짜며 글을 고치고만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조금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독자님들을 만날 시간을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