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는 일생일대의 결심을 했다. 향적봉은 사진작가들이 장박을 하면서 사진을 찍을 정도로 풍경이 예술이라는 내 말에 혹해서 덕유산 향적봉 대피소에서 일박하겠다고 따라나선 것이다. 어쩌다 보니 내가 가자고 꼬드긴 상황이 돼버렸지만, 막상 가자니 나는 살면서 등산을 손에 꼽을 정도로 한 Y가 향적봉 대피소까지 갈 수 있을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약속한 날이 되었고, Y는 나를 보자마자 말했다.
“오, 멋진데, 산악인 포스가 흘러.”
내가 등산복을 입은 걸 처음 보는 Y는 내가 평소와 달라 보인다고 했다. 그날 내가 입은 옷은 4년이 넘은 것으로 그야말로 후줄근했다. 등산을 시작할 때는 옷을 자주 사고 사진에 잘 나오는 것으로 골라 입었지만, 최근에는 거의 그 계절 내내 같은 옷을 입는 형편이다. 헌데 이상한 건 요즘에야 종종 산악인 같다는 말을 듣는다는 거다.
총 거리 8.5km 중에서 구천동탐방지원센터에서 백련사까지 6km는 편안한 길이지만, 백련사부터 향적봉대피소까지 2.5km는 마의 구간이다. 백련사로 가는 길은 계곡을 따라가는 어사길과 포장된 임도가 있는데 우리는 어사길을 선택했다.
길에 들어서자마자 낮은 폭포에서 부서지는 물방울이 얼굴에 튈 것 같았고, 길에 가득 찬 분무에는 흙냄새와 풀냄새가 섞여 있었다. 그 싱싱한 기운 덕분에 대번에 기분이 좋아졌다. 예상대로 백련사까지는 순조로웠다.
“여기까지 괜찮아. 할만한데?”
Y도 자신감을 보였다.
백련사에서 점심을 먹고 드디어 마의 구간에(2.5km) 접어들었다. 내가 앞장을 서고 Y가 뒤따르며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걸었다. 그리고 ‘향적봉 대피소 1.5km’라는 이정표를 만났다.
“벌써 1km 온 거야? 에이 별거 아니네.”
Y의 말처럼 정말 별거 아니었으면 좋겠지만 그때부터 계단, 가파른 돌길, 계단, 가파른 돌길이 거듭해서 나왔다. 숨 고를 새도 없이 스틱을 찍고 올라서기를 반복해야 했다. 나도 이틀 치 식량이 든 배낭 무게가 만만치 않은 데다 페이스를 놓치면 지칠 것 같아서 쉼 없이 올라갔다. 희남 삼촌과 산에 가면 삼촌은 내가 못 따라오는 줄 알면서도 쉭쉭 가버린다. 그때마다 야속한 마음이 생기고는 했는데, 이번에 앞장서는 입장이 되고 보니 나라도 빨리 가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긴다는 걸 알았다.
어느 정도 거친 구간은 끝났다 싶을 때 배낭을 내려놓고 Y를 기다렸다. 하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Y는 나타나지 않았다. 도로 내려가 버린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때쯤 Y가 초췌한 얼굴이 보였다.
“날 버리고 간 줄 알았어.”
포도와 파인애플을 꺼내주고 Y가 먹는 걸 지켜보다가 나는 이제 정말 별로 안 남았을 거라고 하고 일어섰다.
가다 보니 마침내 ‘향적봉 대피소 0.1km’가 나왔다! ‘향적봉 대피소 1.5km’ 다음에 처음 나온 이정표다. 세상에! 그사이에 숨넘어가는 사람이 나 말고도 여럿 있었을 거다. 희망을 버릴 뻔했잖아요! 누구한테 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하소연이 터져 나왔다. 1.0km, 0.5km, 0.3km, 이렇게 줄어드는 게 아니라 1.5km에서 곧장 0.1km라니.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등산객에게 극과 극 체험을 하게 하려고 의도적으로 그런 건 아니었겠지만, 절망의 땅에서 기쁨의 땅으로 순간 이동한 기분이었다. 거기서부터 100m는 날듯이 갔다.
대피소가 모습을 드러내자, 행복감은 극에 달했다. 어여쁘고 사랑스러운 대피소를 눈으로 핥았다. 정오부터 오르기 시작해서 오후 5시에 도착. 이만하면 등산 돌쟁이 Y와 무거운 배낭을 지고 온 나로서는 양호한 성적이다. 아니 성적 따위는 필요 없다. 끝났다는 게 중요했다. 우선 오고 있냐는 전화를 해준 소장님에게 신분증을 보여주고 예약 확인부터 했다.
저녁은 내가 준비해 온 소고기와 양배추샐러드, 청국장(냄새가 날까 봐 걱정했는데 우리밖에 없어서 다행)을 먹었다. 내가 산악용 버너에 불을 붙이고 손바닥만 한 프라이팬에 고기를 척척 굽는 걸 Y는 신기하게 바라봤다. 허브솔트와 고추냉이까지 챙기고 결정적으로 가위를 빠뜨리는 바람에 고기를 손으로 찢어먹어야 했지만, 대피소는 요 취사실 바닥에 쪼그려 앉아서 먹는 재미다. 산꼭대기에서 먹는 고기 맛은 안 먹어본 사람은 모른다. 호사스러운데 궁상맞고 부족한데 충분하고, 그 맛에 감탄하다가도 이게 감탄할 일인가 아리송해지는,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감정이다.
그때 투닥투닥, 취사실 밖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빗소리와 지글지글 고기가 익는 소리가 우리를 한층 더 여유롭게 했다. 밤은 깊어가고 고기는 익어가고, 우리의 이야기도 무르익어 갔다.
“대피소에서 익숙하게 음식을 만드는 걸 보니까 진짜 산악인 같다. 너는 원래 불편한 게 힘들지 않은 사람이었어 아니면 바뀐 거야? 나는 어릴 때는 밖에서 밥 해 먹고 자는 것도 재미있었는데 이제는 힘들어.”
Y의 말을 듣고 보니 7년 전 지리산 종주를 할 때 대피소에서의 낯설었던 기분과 유대장, 하대장, 지희가 떠올랐다. 그때는 Y가 나를 보는 것처럼 내가 유대장과 하대장를 신기하게 바라봤었다.
문득 생각나는 일이 있었다. 내가 유대장에게 나는 등산복이 안 어울린다고 했더니 유대장은 이렇게 말했다.
“자주 입으면 어울리게 돼.”
자주 입으면 어울리게 된다고? 그때는 듣고도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이제는 알 것 같다. 만약 계속 산에 가게 된다면 언젠가 어울리게 되는 날이 올 거라는 말이었나. 그때부터 7년 동안 산에 갔으니 이제 어울릴 때가 된 건가. 등산복도 없이 롱패딩에 운동화를 신고 올랐던 덕유산에 이렇게 다시 와보니 옷뿐 아니라 많은 것이 변했음을 실감했다.
새벽에서 아침, 그리고 오후가 될 때까지 산을 걸으면 마음 한켠이 느긋해졌다. 시시각각 다른 향기와 온도를 품은 바람과 하루의 변화를 몸으로 느끼는 일은 멈춰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받아들이게 했다. 그건 내가 아는 것보다 세상은 넓고, 그에 못지않게 내 안도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깊다는 걸 알게 했다.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고, 모든 건 변화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존재라는 걸 깨닫게 했다. 한 발 한 발 걸어온 걸음이 내 안을 두드리고 깊숙이 자리 잡고 있던 힘을 꿈틀거리게 했다. 그리고 마음 깊은 곳에서 이런 말이 들리는 것 같았다.
그 모든 게 아니어도 괜찮아. 나는 어떻게든 살아갈 거야.
다음날 아침, 어제는 다 죽어가던 Y가 어디서 힘이 솟았는지 일어나자마자 향적봉부터 가보자고 했다. 향적봉 대피소에서 향적봉까지 0.1km를 우리는 단숨에 올라갔다.
향적봉에 서서 봉우리들이 구름 사이에 섬처럼 떠 있는 언제 봐도 멋있는 장면을 나는 사진에 담았다. 이 자리에서 변함없이 아니 변화무쌍한 모습으로 나를 기다려줬구나. 내 힘이 닿을 수 없는 아득한 그곳을 조용히 응시했다. 그렇게 조금 있으니까, 운무가 해를 가리더니 금세 어두워졌다.
“에이 감춰버렸네.”
Y가 말하는 순간 구름이 걷히고 반짝 해가 나왔다.
“어, 다시 보여준다. 무슨 숨바꼭질하는 것 같다.”
그 뒤로도 구름은 산봉우리를 가렸다 보여주기를 되풀이했고, 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