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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Oct 22. 2024

결국 오래 남는 것

고모부님의 부고장을 받았다. 장례식장은 서울이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있을 때 사촌인 분희언니에게 카톡이 왔다.     


“몇 시에 출발하려고 해? 나는 내일 새벽 6시 차를 타면 8시 30분에 터미널에 도착해. 시간 맞으면 만나서 같이 가자.”     

“그럼 나도 첫 차 타고 갈게. 가면서 전화할게.”          


나는 5시 40분 차를 예매하고, 다음날 새벽 5시에 집을 나섰다.      

     

분희 언니는 경부선, 나는 호남선을 타고 왔기 때문에 고속버스 터미널 내에서도 버스가 정차하는 장소가 달랐다. 내가 먼저 도착해서 반대편 끝에 있는 경부선 버스 승차장으로 걸어갔다. 터미널 내의 상가 대부분은 아직 문을 열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준정아!”          

나는 공주 승차홈 출입문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왼쪽에서 언니가 불렀다. 육 개월 전에 언니가 우리 집을 방문한 뒤로 처음 보는 것이었다. 언니 눈에 잠깐 스치는 반가움을 뒤로하고 우리는 조금 무거운 마음으로 지하철역을 향해 이동했다. 가는 길을 인터넷으로 미리 검색해 보았다. 장례식장은 7호선을 타고 열여덟 개 역을 통과해서 공릉역에 내린 다음 택시를 타고 십 분쯤 가면 된다고 나와있었다.  

        

“보름 전에 뵈었을 때만 해도 괜찮아 보였는데 갑자기 안 좋아지실 줄은 몰랐어.”          

언니는 고모부님이 위독하다는 말을 듣고 찾아갔었다고 했다.      


올해 83세인 고모부님은 그 세대 남자 어른들과 조금 달랐다. 어린 시절 내가 나고 자란 대구에서 서울말을 하는 남자어른은 고모부님밖에 없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나는 고모부님이 하는 말을 들으면 아내에게 살갑고 자식과 격이 없어 보였다. 그 서울말을 순하고 무해하다고 느꼈다. 고모부님은 집안 행사에 거의 빠지지 않고 참석하셨고, 항상 웃는 얼굴로 사람들을 대해서 모두 반기는 분이었다.         

 

하필이면 출근시간과 맞물려서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은 사람들로 파도를 이루고 있었다. 언니와 나는 이리저리 파도에 떠밀리다가 간신히 지하철에 올라탔다. 지하철 안도 사람들로 빽빽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많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무표정한 얼굴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강남역과 청담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내리고 나서야 여유가 생겼다. 언니와 나는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이제 출근 시간은 지난 것 같지?”

언니가 한숨을 돌리며 말했다. 나는 숨을 참고 있기라도 했던 것처럼 토해내듯 “응”이라고 했다. 그때 창밖으로 한강이 보였다. 물결이 일렁거리며 햇볕에 반짝이는 걸 보다가 이틀 전 한강기맥을 갔던 일이 떠올랐다.           

한강기맥은 한강을 아우르는 산군을 오르내리는 도상거리 162킬로미터의 종주다. 그날 했던 장승재~삼마치 구간에 군부대가 하나 있었다. 군부대가 길을 가로막고 있어서 우회해야 했다. 눈은 무릎까지 쌓여있었고, 부대 주변으로 철조망이 촘촘히 설치되어 있었다.          


군부대 앞까지 왔을 때 임도로 내려가는 길이 있었다. 이미 15킬로미터 넘게 온 시점이라 모두 지친 상태였지만, 누구 하나 임도로 내려가자고 하지 않았다. 임도로 가면 삼마치가 아니라 그 앞에 있는 만대산에서 끝이 나기 때문이었다. 회장님이 앞장서서 길을 만들고 회원들이 뒤를 이었다. 철조망이 심하게 엉켜있으면 한 사람이 철조망을 밟고 기다려주었다. 그사이 사람들이 통과했다. 한 사람이 눈 속에 발이 빠져 못 나오면 다른 사람이 손을 잡아서 당겨주었다. 그날은 모두 번갈아가며 넘어지고 미끄러졌다.        

   

앞사람이 발을 디딘 부분이 단단하기 때문에 나는 그 위에 발을 옮겼다. 눈 위에 찍힌 발자국을 따라 걷다 보니 마치 점을 이어 선을 만드는 것 같았다.           


봉우리 하나를 오르는 등산은 점을 찍는 거라면 한강기맥 같은 줄기산행은 선을 만들어 가는 것 같다. 줄기산행에서 봉우리는 중요하지 않다. 구간 안에 봉우리가 몇 개든 상관없이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 봉우리를 넘으면 다음 봉우리를 향해 또 가야 한다. 그걸 반복하다 보면 점차 봉우리는 의미가 사라진다.    

      

봉우리를 향해 가는 게 아니라면 나는 어디를 향해 가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든다. 줄기산행은 과정밖에 없는 것 같다. 하나의 목표를 향해 가는 게 아니라 과정을 오래오래 곱씹는 것 같다. 오늘의 시작과 끝은 있지만, 오늘의 끝은 다음의 시작이 된다. 다음 달에는 오늘 내려온 곳을 다시 올라간다. 지난달에 이어 선을 잇는 거다. 지금 걷는 이유는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과정을 거듭하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줄기산행이 나는 늘 낯설게 느껴진다.     


일상에서는 과정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요리하는 과정 없이 음식을 배달해서 먹고, 물건을 고르고 가지고 오는 과정 없이 택배로 배송된다. 빨리 갈 수 있는 지하철처럼 과정에 걸리는 시간이 줄어들수록 편리하다고 여긴다.     


배달 음식과 택배가 우리를 편리하게 해 줄지는 모르지만 행복하게 해주지는 않는 것 같다. 지하철 안의 사람들의 얼굴이 밝지 않은 것처럼. 버스에서 창밖 풍경을 바라보고, 옆자리에 앉은 승객과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사라졌다. 과정에서 절약된 시간만큼 우리는 그만큼 더 행복해졌을까.      


나는 줄기산행을 하다 보면 빠르게 움직이는 마음을 제속도로 돌려놓는 기분이 든다. 종착지에 빨리 가는 목적이라면 도로를 만났을 때 차를 타고 가면 그뿐이다. 하지만 줄기산행에서는 그것이야말로 아무 의미가 없다. 두 발로 점을 찍어 선을 잇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터널, 도로, 군부대, 골프장을 만나면 어떻게든 우회하는 길을 찾아서 다시 선을 이어서 간다.     


시간이 흘러 돌아보면 남는 건 과정에서 있었던 일이다. 눈 속에 발이 빠졌을 때 앞사람이 손을 잡아주어 빠져나온 일, 철조망에 바지단이 걸렸을 때 뒷사람이 철조망을 밟아주어 옷자락을 빼냈던 일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한 사람의 삶의 마지막을 배웅하기 위해 가는 길, 나는 일상의 속도와 다른 줄기산행에서 결국 오래 남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선을 잇는 중
8년간 등산을 하면서 가부좌를 틀고 앉은 적이 두 번 있는데, 그중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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