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게임’은 사춘기라면 누구나 거치는 통과의례 같은 것으로, 좋아하는 이성을 그냥 말하기가 뭣하니까 게임이라는 형식을 빌려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진실게임의 바람은 보통 5학년 때 일기 시작해서 6학년이 되면 최고 절정에 이르게 된다.
이 진실게임을 통해서 초밥이가 정군을 사귀게 되었는데, 그때 라이벌이 한 명 있었다고 했다. 운명이 엇갈린 장소는 아파트 놀이터. 아이들은 초밥이에게 좋아하는 사람 이름을 대라고 했다. 초밥이는정군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직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단다. 연애에서‘때’라는 건 참으로 중요하지 않던가? 그래서 4학년 때 잠깐 마음을 울렁거리게 한 민이를 지목했다. 민이는 자기한테 별로 관심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것. 그랬는데 민이가 불현듯 초밥이의 손목을 끌고 아이들과 떨어진 곳으로 데려갔단다. 그리고 귀에 대고 하는 말.
“나도 너 좋아해.”
초밥이는 죄책감이 들었다고 했다. 정군에게 고백할 적절한 타이밍이 아니라는 이유로 죄 없는 민이를 끌어들인 것 같아서 말이다. 아, 그것도 잠시. 뒤를 돌아보니 씁쓸한 표정의 정군이 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사랑은 이기적인 거야.’그렇게 마음을 다잡는 초밥이었다.
그 일이 있고 두어 달이 지났다. 다시 놀이터에 모인 아이들. 당연한 수순으로 진실게임이 시작되었고, 초밥이가정군에게 좋아하는 사람을 말하라고 했다. 정군은 (예상대로) 입을 열지 않았다. 정군은 초밥이게만 알려주겠다며 귀를 대라고 했다. 아이들은 일제히 소리쳤다.
“우리한테도 알려줘!”
그때 정군은 초밥이 손목을 잡고 뛰었다. (왠지 누구한테 배운 듯)
숨을 헥헥거리며, 초밥이가 말했다.
“이제 말해봐.”
(자기 차례인데도 불구하고) 정군이 말했다.
“너 먼저 말해.”
(대찬 여자) 초밥이가 말했다.
“너”
드디어 정군이 항복을 선언했다.
“나도 너 좋아해.”
서로를 쳐다보며 배시시 웃는 정군과 초밥. 조금 떨어진 곳에는 시무룩한 표정의 민이가 있다. 민이는 둘의 사랑에 불쏘시개 역할이 자신이었다는 걸 알았을까? 초밥이는 민이가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5년간의 짝사랑인 정군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고 했다. 이번만큼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싶었다고.
하지만 끝은 배드 엔딩이었다. 5년간의 짝사랑과 200여 일의 (혼자만의) 사랑. 아무튼 일관성은 있었다.
상처가 난 자리에 새살이 돋고, 겨우내 말라있던 가지에 초록색 이파리가 움트듯 초밥이게도 새로운 사랑이 시작되었다.
정군이 헤어지고 2주가 흘렀고, 애써 담담하게 지내고 있던 초밥은 민이의 전화를 받게 된다.
“나랑 사귈래?”
민이의 첫마디였다.
‘뭐가 이렇게 쉬운 거지? 이렇게 시작할 수도 있는 거였어?’초밥이는 한 대 얻어맞은 듯,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