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같이 마시던 테이크아웃 커피, 일주일에 몇 번씩 하던 외식을 하지 않고 있다. 처음에는 상실감이 들기도 했다. 이제는 이런 걸 즐길만한 처지가 아니라는 생각과 그동안 누려왔던 즐거움과는 작별을 해야 한다는 자각이 들어서다.
카페나 식당에 왜 그리 자주 갔을까? 기분전환? 보상심리? 반복된 일상에서 환기를 시키고, 새로움을 얻고 싶었을 것이다.
해가 질 때쯤 산책을 겸해서 멀리 있는 마트까지 걸어갔다. 마카롱 가게를 지나는데, 문득 발렌타인데이에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나림이가 아빠한테 준다며 초콜릿을 고르는 걸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엄마는 왜 안주냐?”
별거를 하고 있는 남편은 양육비를 주지 않겠다고 했다. 양육비를 요구하면 자신이 딸을 키우겠다고 했는데, 별거를 하기 전에도 생활비는 내가 충당을 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남편은 급식비나 태권도 학원비를 내는 것으로 자신이 하는 의무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남편은 휴가비용이나 강아지를 사는 비용은 절반으로 나누어내자고 요구했다.
(이 한 단락을 쓰고 일주일간 덮어 두고, 열어보지 않았다. 이 일을 떠올리는 순간 실타래처럼 엉킨 많은 일들이 딸려 올라와서다. 부부의 이야기지만, 내 이야기이기도 하다. ‘비난이나 원망이 들어있지 않은 사실만을 쓰고 싶다’ 일주일간 정리한 내 입장이고, 글에서뿐 아니라 삶에서도 지키고 싶은 태도다.)
단순히 돈 문제만은 아니었다. 그냥 외롭고 쓸쓸한 섬에 사는 것 같았다. 손 잡을 사람 없이, 온기 없는 그곳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사느라 무진 애를 썼다. 그런 중에 맹세한 것이 있었다.
‘남편과는 이혼할 수 있지만, 딸과는 헤어질 수 없다.’
나의 상처를 딸에게 투영하지 않겠다고, 남편과 딸을 분리해서 생각하겠다고 나 자신에게 주문처럼 되뇌었다. 그런데 허쉬 초콜릿 때문에 다시 붙들리고 말았다. 나림이는 내가 갑자기 화를 내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하다가 마지못해 초콜릿을 내밀었다. 이게 한 달 전일이고, 오늘은 화이트 데이다.
진열장 안에 있는 파스텔 톤의 마카롱을 들여다봤다.‘이걸로 미안한 마음을 덜 수 있을까?’ 색깔 별로 여섯 개를 골랐다. ‘아침에 놀러 나갔던 딸을 불러서 오랜만에 외식을 하고 할까? 녀석이 그러 자고 하면 한 번쯤은 괜찮겠지.’
“어디야?”
“나, 핫도그 가게 근처.”
“그래, 과일가게에서 만나자.”
토요일이라 딸기를 싸게 팔았다. 두 팩에 8,900원. 길 건너편에서 “엄마!”하고 큰소리로 부르는 딸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계산을 했다.
“딸기 샀네?”하는 딸에게 봉지를 열어보이며 말했다.
“먹고 싶은 거 없어? 저녁 먹고 들어갈까?”
“아니, 딸기를 왜 이렇게 많이 샀어? 안 비싸?”
“세일하던데?”
“알맹이가 되게 작다. 맛없는 것 아니야?”
“한번 먹어볼까?”하며 하나를 녀석의 입으로 가져가다가 내 입에 쏙 넣었다. 그리고는 재빨리 다른 입에도 넣어줬다. 달콤 새콤한 딸기 향이 입안 가득 퍼졌다.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마트 들려서 가자. 요거트랑 같이 먹게.”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었고, 어서 딸기를 먹고 싶은 생각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빠른 재생모드가 되었다.
딸기를 샀으니 외식까지 하면 지출이 많다고 생각해서 딸은 먹고 싶은 게 없다고 한 거다. 그런 말은 하지 않은 편이 서로의 기분을 위해 낫다는 것까지 알고 있다. 이러니 내가 철이 안들 수가 없다. 하지만 마트에서 나는 요거트 말고도 계란, 주스 등등을 사느라 외식하는 비용보다 더 쓰고 말았다. 언제나 그렇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