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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명 른 May 16. 2024

지독한 방향치

30kg이 넘는 배낭을 메고 태국을 헤매는 그 순간조차 소중했다

불치병이다. 이놈의 방향치.

현재진행형이라 이제는 극복보다는 즐기는 방향을 택했다.

낯선 골목을 한 번 더 헤매면 또 새로운 게 보인다. 멀리 보이는 목표지점으로 가늠만 한다. 그리고 10분이 걸리는 거리가 1시간이 걸리더라도 일단 걸어 본다. 그렇게 타협했다.

이거야말로 진정한 강제운동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제는 추억


미국에서는 길을 잃어 반나절을 헤맸다. 해가 떨어지니 무섭기 시작했다. 낯선 흑인 아이들과 세 번 정도 마주쳤다. 동일인물이다. 그 말인 즉 같은 곳을 세 번 돌았다는 의미다. 이거 원 인사를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서로 눈이 마주쳤다. 내가 딱했던 그들은 경찰을 불러줄까는 이야기를 한다. 그 호의조차 겁이 났다. 그냥 공중전화가 어디 있는지만 알려달라고 했다. 미국에 도착한 지 이틀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엔칸토. 샌디에이고에서 내가 처음으로 지냈던 숙소는 엔칸토에 있었다. 밤에는 고함소리와 총소리 같은 무서운 소리가 나는 꽤 위험한 지역이었다. 걱정이 된 호스트도 나를 찾아 헤맸다. 간신히 주유소 옆 공중전화를 찾았다.  철창 안에 있는 사람에게 동전을 바꿔 달라고 하고는 호스트에게 전화를 했다. 다리가 후들거려 주저앉고 싶었지만 겁이 난 걸 들키면 잡아 먹힐 것만 같았던 그날의 암흑 같던 주유소. 다행히 호스트의 차는 얼마 걸리지 않아 도착했고 나는 드디어 뱅뱅 돌던 그곳을 떠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또 떠난다. 1여 년 간의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돌아와서는 태국으로 갔다. 이번에는 배낭여행이었다. 30kg이 넘는 배낭을 메고 시골길을 걸었다. 한 달간의 배낭여행이었다. 자유로웠다. 대담했다. 길을 잃으면 주변에 숙소를 잡았다. 걷다가 걷다가 너무 힘들면 지나가는 차를 잡아 세우려 손을 흔들어 어디까지 가느냐고 물었다. 트럭 트렁크에 영화처럼 실려 보기도 했다. 그렇게 목표했던 곳에 다다랐고 한 점 한 점찍으며 다음 장소를 향했다. 배낭을 멘 자국은 그대로 피멍이 되어 있었다. 그래도 걸었다. 헤매는 걸 선택했다. 그렇게 태국을 한 바퀴 돌았다.


참 대담했다 배낭이 무거워 히치하이킹을 했다 그것도 태국에서!


이제는 현실


지금도 길을 자주 잃는다.

30kg이 넘는 배낭을 메고 있는 것도 아닌데 좀 어떠랴 하며 헤맴을 인정한다.

가끔 주변 사람들이 불안해 하지만 이제 그들도 그러려니 한다. 그들의 걱정이 고맙기만 하다.

나는 여전히 헤맨다. 그런데 안다. 길은 결국 나온다. 그러니 나는 지금 잘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잘 걸어가고 있다.


조금 헤매더라도 조금 돌아가더라도

내 길을 걸어가고 있는 그 행위로 이미 충분한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듯

나는 걸어간다.

걸어가고 있다.

애쓴다



오늘의 인증


일정: 수업 후 도서관에 들렀다. 학교에 축제가 있는지 음악 소리가 밖에서 들린다. 낭만적이다. 집에 와서는 아직 낮잠을 떼지 못한 아이를 껴안고 잠시 같이 잠이 들었다. 저녁을 챙기고 아이들을 씻고 강연을 들으니 또 이 시간이다. 하루가 어쩜 이리 빠르게 지나갈까.

소감: 굵직한 일들을 하나씩 해 나갔다. 내일은 대강이 있어 학교에 또 출근이다. 또 굵직한 일들을 하나씩 잘해나가야지.   

식단: 아침-학생식당에 학생들이 많아 편의점 떡과 프로틴으로 대신/점심-학생식당 참치덮밥/저녁-샌드위치, 만두, 물 1리터 이상 마심

운동: X

반성: 운동을 끼워 넣을 공간을 만들 필요가 있겠다



#백일백장 #일지 #기록 #책강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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