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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명 른 May 18. 2024

당신의 친정은 어디입니까?

누구에게나 내 마음의 친정이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

길에 올라온 풀을 보면 죄다 파로 보이는 나는 내내 도시에서 자랐다.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랐다고 모두 나 같지는 않겠지만.

그런 내게 시골은 그래서 더욱 특별한 곳이었다.


외할머니는 날망집이라고 불리는 산 아래에 살고 계셨다.

외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셔서 얼굴도 뵌 적이 없다.

서울에 사는 나에게 충북 영동은 꽤나 먼 곳이었고, 그래서 따뜻한 도피처가 되어주었다.

친정이었던 엄마에게는 더 그랬겠지.


그런 외할머니에게 예기치 못한 병이 찾아왔다.

어느 때처럼 시원한 스테인리스 그릇에 곶감을 챙겨 내 앞에 놓으셨지만

내가 누군지는 알아보지 못하셨다.

외할머니는 그때 날망집을 떠나 조금만 더 내려오면 있는 외삼촌댁으로 들어가셨다.

엄마의 친정은 그렇게 날망집에서 외삼촌댁으로 옮겨졌다.


학교에서 돌아왔는데 엄마가 없다.

시골에 가셨단다.

병원에서 퇴원을 기다리고 있다고 들었는데 갑작스러운 할머니의 죽음 소식이었다.

엄마가 그렇게 소리 내어 우는 걸 처음 본 날이기도 했다.

할머니의 죽음이 너무나 낯설어 얼어있던 그곳에서

엄마의 곡소리에 나도 따라 울었던 기억이 난다.

엄마의 친정은 그렇게 외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사라졌다.

방바닥을 닦으면서 문득 생각이 난다며 엄마의 눈시울은 붉어지곤 했다.

이제는 무뎌졌을까.

벌써 20년이 넘은 일이다.

그래도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늘 가슴 한편에 두고 살겠지 싶다.


그래서 지금 친정에 있는 나의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안다.

엄마가 해 주는 따뜻한 밥을 먹고 정겨운 목소리를 듣는다.

모처럼 나간 외식에서 엄마를 보니.. 무릎도 아프고 허리도 굽었고.. 할머니가 다 됐다.

엄마도 민망한지 웃으면서 이제 진짜 할머니가 되려나 보다 한다.

나의 친정이 오래오래 함께 하기를.. 그런 엄마를 보면서 소망한다.



오늘의 기록

식단: 아침-생선, 밥, 오이/점심-샤브샤브 샐러드뷔페/저녁-빵

소감: 엄마의 누룽지는 언제나 따뜻하고 고소하다. 자꾸 음식으로 기억하지 말자고 하지만 비싼 샐러드뷔페보다 엄마가 떼어주는 누룽지 한 조각이 더 맛있었다.

친정에서 보내는 오늘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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