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 중이다. 다양한 비대면 채널로 업무 내용을 주고받는다. 비대면 채널이라 함은 카카오톡, 문자, 잔디, 이메일 등 얼굴 없이 활자로 대화하는 모든 도구를 뜻한다.
한국은 얼마나 위대한 나라인가. 디지털 디바이스가 차고도 넘치고, 데이터 전송 속도 또한 엄청나다.
한글은 또 얼마나 위대한가. 네, 넵, 넹, 네네 등 자음 모음 하나로도, 넵!, 네.. 네 ㅡㅜ 등 기호 하나로도 천국과 지옥을 오가게 한다.
지극히 내향형인 필자는 웬만한 커뮤니케이션 모두 상대의 흐름을 따른다.
상대가 네 하면 나도 네.
상대가 넵! 하면 나도 넵!
상대가 넹~ 하면 그건 차마…
사적으로는 ‘네~!’를, 공적으로는 ‘넵!’을 많이 쓴다. 딱딱한 하드웨어와 그렇지 못한 ‘네~!’, 이는 생긴 거와는 달리 제법 상냥한 사람이란 걸 어필하려는 본능이 아닐까 싶다.
또한 말줄임표를 좋아하지 않는다. 말줄임표에서는 얼버무리는 표정, 부정의 감정이 훅 올라오는지라 공적인 곳에선 확신에 찬 페르소나 가면을 쓴 자로서 느낌표를 주로 쓴다. 네…는 내가 아냐. 넵! 이 나답지.
오늘 이 글의 소재를 던져주신 건 안모 이사님이시다.
아마 업무 얘기를 하며 네. 네. 네. 하다가 넵 했던 찰나 네와 넵, 나아가 넹까지 그 효용성이 궁금해지셨으리라. 아니면 넵 한 글자에서 넵을 타이핑했을 자의 미묘한 심리 변화를 캐치하시고 흥미가 돋았을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오래간만에 막힌 게 뚫렸던 차라 확신에 찬 답을 했었다. 넵! 에서 느낌표는 과해 넵만 타이핑한 나, 넵에서 미묘한 심리 변화를 캐치한 이사님, 두 사람의 심리는 0.1초도 안 되는 시간에 ‘드러내고 캐치하는’ 일련의 활동을 한 셈이다. 그것도 무의식 중에.
단어와 기호가 주는 심리, 고찰할만한데?
그런데!
이미 조선일보에서 선수 쳤다. 자그마치 2019년에. 내가 하려던 말이 다 들어있다. 통계까지 곁들여서. 감으로 짐작하던 것들이 모두 들어맞았음을 숫자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냥 보자. 길지만 술술 읽힌다.
처음 접한 넵병에 호기심이 돋아 당장 네이버에 ‘넵병’을 검색해보니 줄줄이 나온다. 오호라, 대한민국에 넵병이 창궐한지도 모르고 살았구나. 나 또한 넵병 환자임을 몰랐네. 코로나 시국이라 비대면 소통이 많으니 넵병은 더 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필자가 주목한 특이점이 두 가지 있다.
상사의 지시에 넵이라고 응답하는 비율은 20대가 46%, 40대와 50대가 28%
넵이라고 답하는 빈도가 늘고 있는지에 대한 답으로 20대가 63%
즉, 넵병이 20대 직장인 100명 중 63명에게 발병한 셈이고 병세가 점점 깊어진다는 뜻이다.
아니, 당찬 MZ 세대들에게 넵병이라니!
MZ세대라고 별 수 있나. 20대의 60%, 30대의 57%가 넵병은 감정노동이라 생각한다고 답했다. 업무에서 상대 연령에 따라 어떻게 답할지 고민하는지 물었는데 ‘그렇다’가 70%이며 연령이 올라갈수록 그 비율이 줄어든다. 직장에서 서열이 올라갈수록 상대를 덜 배려한다는 뜻이다. 넵병은 결국 세대와 상관없이 회사라는 정글에서 살아남으려는 직장인들의 애환이 되겠다.
문득 궁금했다. 유플리트에도 넵병에 걸린 사람이 있을까? 그래서는 아니 된다. 유플리트는 ‘직급 떼고, 나이 떼고, 성별 떼고, 아무튼 다 떼고 인간 대 인간으로 소통하자.’가 모토 아닌가. 네든 넵이든 맥락을 무시하는 무심한 사람이 되자는 게 아니다. 센스 있게 소통하되 넵무덤에 함몰되지는 말자.
그런데 어떻게?
필자는 요즘 에이지리스(ageless)에 관심이 많다.
제일기획 매거진 중 ‘내 나이가 어때서? SNS 하기 딱 좋은 나인데!’에서 쭉 발췌해보겠다.
나이와 상관없이 자신이 원하는 가치와 문화를 향유하는 시니어들의 SNS 활동이 흥미롭다.
개그맨 지석진씨는 틱톡 특유의 유머와 재치를 영상으로 재미있게 제작해 “50년 만에 틱톡에서 적성을 찾았다.”는 반응을 얻으며 인간 틱톡으로 주목받고 있다.
▲ 지석진 씨의 틱톡 계정 ⓒ https://www.tiktok.com/@jeeseokjin 캡처
유튜브 크리에이터 박막례 할머니의 등장 이후 시니어 인플루언서들의 활약도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 대만의 창완지, 쑤시에 부부 ⓒ instagram.com/wantshowasyoung 캡처
최근 힐링 영상으로 급부상 중인 ‘미니포레스트’ 채널 운영자가 본인은 50대 여성이라고 밝혀 많은 팬들이 놀라기도 했다.
▲ 한옥집, 화덕, 텃밭 등 직접 마당을 꾸미고 K-쿡방을 선보여 인기를 얻고 있는 Mini Forest 채널
SNS를 통해 새로운 삶을 사는 사람의 연령층이 다양해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자신의 가치를 추구하는 에이지리스 크리에이터들이 많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필자는 미니포레스트 채널이 흥미로워 한 번 볼까? 하다 그만 30여 분 동안 넋 놓은 채 힐링하고 말았다. 50대 유튜버의 인터뷰 기사를 첨부하니 에이지리스한 그녀의 매력에 빠져보자.
넵병에서 에이지리스라니 너무 뜬금없는가? 옆집 언니 에밀리는 원래 삼천포를 제 집 드나들 듯 다닌다. 깜박깜박하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목적지는 잘 찾아가니 기다려보시라.
기왕 이렇게 된 거, 제일기획 매거진 하나 더 보고 가자.
58년생 개띠로 대표되는 50~60대의 ‘오팔 세대’와 19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반에 태어난 ‘X’ 세대들은 최신 트렌드에 적극적이다. 온라인 쇼핑의 큰 손이자, 각종 취미 활동이나 액티비티와 관련된 소비에 적극적이다.
▲ 취미 생활을 즐기고 있는 액티브 시니어
▲ 기성세대는 젊은 층 못지않게 최신 전자기기에 대한 관심이 높다.
기성세대의 소비 못지않게 MZ세대의 아재 소비도 주목할 만하다. 등린이(등산+어린이), 할머니의 맛을 즐기는 할매니얼(할머니+밀레니얼) 등의 신조어가 등장하기도 했다. MZ세대 패션의 핵심 키워드는 1990년대며, 새로운 취미로 손뜨개, 비즈 공예 등이 각광받고 있다.
▲ 흑임자, 단호박 등 밀레니얼 세대의 레트로 입맛을 겨냥한 제품들. ⓒ 빙그레 인스타그램 캡처(instagram.com/binggraekorea)
요지는 이거다. 젊은이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영상 촬영 기기나 액티비티 장비들을 구매하는 중장년층이 증가하고, MZ세대는 1980~90년대 유행했던 레트로 아이템이나 아재 입맛을 찾아다닌다. ‘나이답게’보다 ‘나답게’를 외치는 에이지리스 소비가 트렌드다.
제일기획 매거진을 통해 에이지리스의 세상을 둘러보고 왔다. 여기서 느낄 수 있는 감상평은 아마도 ‘멋지다!’ ‘저렇게 늙고 싶다.’ 등이 아닐까?
그렇다면 반대는 어떤 경우일까? 필자가 겪은 에피소드를 소개해본다.
친구들과 함께 순댓국을 먹으러 나섰다가 식당 문이 닫힌 바람에 그 옆에 새로 생긴 브런치 카페에 들어간 적이 있다. 눈부시게 찬란한 샹들리에, 골드 메탈로 장식한 테이블과 체어, 빛나는 커트러리로 여자 다섯이 들떴다. 오래간만에 대접받은 여왕들처럼 우아하게 배를 두드리며 나오는데 친구 어머님을 만났다. 우리가 다녀온 브런치 카페를 소개하며 나중에 딸과 함께 다녀오시라 말씀드리니 친구 어머님과 어머님의 친구는(라임 보소~) 손사래를 치며 “우리는 그런대 못 가.” 하시는 게 아닌가. 우리 같은 노인네가 가면 민폐라고 하시지만 나는 봤다. 지는 세대라 자조하며 수많은 생활 반경에서 멀어지는 불쌍한 노인의 뒷모습을. “왜요! 세상에 못 갈 곳이 어디 있어요! 떳떳하게 즐기세요!” 외쳤지만 두 분은 이미 많은 것을 내려놓은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실 뿐.
예능인 전현무는 어느 프로그램에서 이런 말을 했다. 이탈리아 여행을 갔는데, 매서운 한겨울임에도 멋스러운 코트를 차려 입고 언뜻 보이는 손목에 롤렉스 시계를 찬 노신사에게 반해 그 브랜드의 시계를 샀다고 한다. 아마도 흔한 우리네 부모님은 이렇게 말씀하실 거다. 나이 들면 꾸며도 안 이뻐. 그저 따뜻한 게 최고지. 환경에 자유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가?
멋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지 생각해보면 그 사람의 애티튜드, 곧 태도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무언가에 초월한 자는 멋있는 법이다. 주눅 들지 않고 흘러가는 시류에 몸을 맡긴 채 유영하는 자의 여유로움은 우아하기까지 하다.
필자는 제시한다. 넵병에서 자유하라. 앞선 3회 차 유플에세이에 이런 말이 있었다. “완전한 자아로 일터에 나가라.” 가면을 쓸 필요가 없다. 나는 나인 채로 직장생활을 해야 감정노동하지 않으며 자유롭게 살 수 있다. 생각해보라. 나도 모르게 내 감정이 폭발했던 날, 단 한 번이라도 세상이 무너졌던가? 내 마음만 폭풍 속이지 세상은 평온하지 않았던가. 사람들은 사실 자신 외에는 관심이 없다고 한다. 누구를 위한 눈치인가. 부디 눈치 보지 않는 삶을 살기 바란다. (단 버릇은 챙겨라. 버릇없는 사람 좋아할 사람은 없다.)
나는 나인 채 완전한 솔직함으로 타인과 소통하되 솔직하게 드러내도 해롭지 않으려면 내면을 다스려야 한다. 세상에나, 아인슈타인이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어제와 똑같이 살면서 다른 미래를 기대하는 것은 정신병 초기증세이다.”
거칠지만 거 참, 맞는 말일세.
‘네? ㅡ,.ㅡ+’의 마음을 품고 ‘넵!’이라 말하는 어제오늘내일이 반복되면 나는 영원한 감정노동자다. 네, 넵, 넹 등의 네바다에서 답을 고르려 애쓰지 않아도 될 정도로 내면의 힘을 기르자. 나는 소중하다는 자존감, 너도 소중하다는 이타심, 우리는 함께라는 파트너십, 꽃길만 걷겠다는 멍뭉미를 발산하며 내 시공간을 아름답게 채워가자.
필자는 가까이 보아야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다. (feat. 김병구 화가의 그림 ‘축척의 시간’)
근래에 멋진 그림을 봤다. ‘축적의 시간’이란 테마의 전시회에서 만난 그림들인데 멀리서 보아도 좋더니 가까이서 볼 때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색감과 구성이 조화로워 호감을 갖고 다가섰는데, 자세히 보니 다양한 색과 질감이 덧대어진 그림이었다. 살아온 인생이 외모와 태도에 드러나게 될 텐데, 그렇다면 나는 가까이 다가서서 보고 들어보고 싶은 인생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인생의 선배들이 뭐라고 말하는지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필히 우리가 하게 될 말이기 때문이다. 90살 넘은 언니가 이런 말을 했다.
“야야, 너 늙으면 젤루 억울한 게 뭔지 아냐? 주름? 아녀. 돈? 그거 좋지. 근데 그것도 아녀. 이 할미가 진짜 억울한 건, 야야, 나는 마지막에 웃는 놈이 좋은 인생인 줄 알았다. 근데, 자주 웃는 놈이 좋은 인생이었어. 젊은 사람들 말맹키로 타이밍인 거시여. 인생, 너무 아끼고 살진 말어. 꽃놀이도 꼬박꼬박 댕기고. 이제 보니께 웃는 것은 미루면 돈처럼 쌓이는 게 아니라 더 사라지더라.”
바라건대 유플리트 전원은 넵병에서 자유할지어다. 이제 그만 남을 위한 자기 검열과 눈치에서 벗어나 완전한 솔직함으로 일하되, 상냥하고 다정할지어다. 훗날 인생을 돌아볼 때 후회할 짓은 당장 멈추고, 사랑만 할지어다. 그것이 넵병 백신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