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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플리트 May 26. 2023

사람은 원래 고쳐 쓰는 거야.

필자는 2015년에 계획도시로 이사와 8년째 살고 있습니다. 아파트 서너 채 밖에 없던 시절부터 들어와 도시가 새롭게 생겨나는 것을 보아왔죠. 건물과 도로 등 모든 것이 새 것이었습니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됐다,는 문장이 머릿속에 새겨진 건지 늘 새 집에 산다 생각했는데 어느새 8년 지난 걸 체감한 건 수많은 ‘공사 중’ 팻말을 만나서였습니다. 언제부턴가 여기저기 공사 중이더군요. 알게 모르게 ‘벌써 이 바닥이 푹 꺼졌네?’, ‘얼마나 됐다고 숫자 6에 빛이 꺼졌지?’ 생각했던 것도 같습니다. 늘 ‘벌써’라는 전제가 있었어요. 눈을 들어 바라보니 도로 여기저기 많이 갈라졌고, 건물들도 세월감이 느껴지더군요. 이 도시는 알게 모르게 많이 고쳐 쓰는 중이었습니다.



고쳐 쓰는 게 아니라고?!

역시 영원한 것은 없고, 사람들은 많은 것을 고쳐 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문득 사람들은 스스로를 고쳐 쓰지 않는다는 생각이 찾아왔어요. 심지어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란 말도 있죠. 오죽 변화시키기 힘들면 그런 말이 나오고 수많은 사람들의 동의를 얻어 진리처럼 통용되고 있을까요. 아마도 눈에 보이지 않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마음에 금이 가거나 생각이 새까맣게 더럽혀진 게 눈에 보인다면 부끄러워서라도 고치며 살 텐데 말이죠.


‘공사 중’ 팻말을 보며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새 것이라는 자부심은 순간이며 언젠가 끝이 있구나. 잘 관리하며 사는 게 더 오래가고 좋은 거구나란 생각이요. 고치고 손보면 됩니다. 그런데 망가진 걸 방치하면 보기도 싫을뿐더러 쓰레기가 쌓여요. 쓰레기를 버려도 되는 곳으로 여겨지죠. 더 망가지면서 어느새 사람들 발길이 끊깁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상처가 나면 병원에 가서 치료받고 연고를 발라 나으면 되는데 상처 나지 않은 사람 마냥 버티고 방치합니다. 어떤 사람은 상처 났다고,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거냐고 털썩 주저앉아 울기만 해요. 불행히도 유연성이 부족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장 났네? --> 고치자.’로 사고의 전환이 유연하게 일어나지 않아요. 무시하거나 회피하거나 누가 대신 해결해 주길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생각보다 많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똑똑한 사람이, 정신력이 강인한 사람이 더 그런 것 같아요. 일명 대쪽 같은 사람, 혹은 FM대로 사는 사람이요. 이 세상이, 이 삶이라는 게 내 뜻대로 아름답게 흘러가지 않는데 어떻게 정석대로 사나요? 인간의 나약함과 삶의 부조리에 눈 뜬 자라야 서로 보듬어 가며 아름답게 살 수 있습니다. 옳고 그름만 가리고 살면 언젠가 본인도 그 기준에 나가떨어지게 돼요. 누구나 약하고 어리석고 약은 부분이 한 구석쯤 있잖아요. 인간은 애초에 완벽할 수 없는 존재고, 삶은 희망도 주지만 고통도 주며, 이는 인간인 이상 벗어날 수 없는 룰입니다.



좌절 중 No! 공사 중 Yes!

공사 중이란 팻말에 ‘여긴 잘못 만들어졌어요. 실수이자 실패작입니다.’라는 뉘앙스가 있나요? 그저 고치는 중입니다. 잘못 설계되었어도 다시 고치면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요? 고치면 되는데, 실패했다고 너무 오래 좌절하고 있지는 않나요? 오래 쓰면 스크래치가 나듯 우리 마음도 스크래치가 나요. 아무 스크래치 없이 깨끗한 상태에서 자존감을 느낀다면, 마치 새 건물에 자부심을 느끼는 것처럼 오래가지 못합니다. 진짜 자존감은 수많은 스크래치가 나도 나는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마음에서 자라요. 어차피 삶은 인간에게 스크래치를 새기고, 그 스크래치를 통해 성장시킨다는 룰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인생이 편해집니다. 내가 걸어온 곳곳에 스크래치가 났다고 내 삶이 소중하지 않은가요? 내 인생에 새겨지는 스크래치는 내가 틀렸다는 낙인이 아닙니다. 그러니 너무 오래 자책하고 주저앉지 마세요.

이 길은 고르지 못해 발목을 삐끗할 확률이 높음, 이라는 푯말을 새겨 뒤따르는 사람들에게 이정표로 남기세요. 이 길은 사악한 뱀이 많아 물릴 확률 50%니 각오한 자만 들어올 것, 이라는 푯말을 남겨 뒤따르는 사람에게 운동화 끈을 다시 묶도록 강한 의지를 새겨주세요. 내가 겪은 상처와 약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앞으로 나아갈 힘이 생깁니다. 직시하지 못하면 숨거나 변명하느라 에너지를 다 쓰게 되죠. 그냥 공사 중이란 팻말을 세우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세요.



UX전문가가 더 잘하는 것

우리는 잘 알고 있잖아요? 우리의 고객사들이 2~3년 주기로 좋은 UX를 새로이 정의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수시로 손보기도 한다는 것을요. 10년 전에 대상을 받았던 UX가 너무나도 훌륭하여 지금까지 지키고 있던가요? 그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리기에 계속 고쳐가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파고들어 고객을 성공적으로 유혹해 내는 우리는 고쳐쓰기의 달인들이잖아요. 그 좋은 기술을 왜 나에게 써먹지 않나요?

또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은 내가 뭔가를 잘해서, 뭔가 쓸모가 있어서 소중한 게 아닙니다. 인생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존재 자체만으로 이미 소중합니다. 내가 지금 회사에서 일로 인정받지 못한다고 해서, 내 할 일을 끝장나게 해내지 못한다고 해서 좌절하지 말아요. 누구에게나 첫 발이 있고, 삐끗하는 발이 있고, 앞서는 발이 있고, 따르는 발이 있습니다. 함께 하는 발은 다 소중해요. 성실히 함께 나아가면 됩니다. 그러니 내 쓸모와 성과를 붙들고 허공에 자존감을 쌓아가지 말고 내 존재 자체로 이미 full로 차 있는 자존감을 지켜며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응애 태어난 순간, 이미 자존감이 온몸을 감싸고 있어요. 갉아먹고 사느냐 지키고 사느냐는 당신의 선택입니다. 순간순간 힘이 빠질 때, 잊지 마세요. ‘공사 중’이란 팻말을 탕탕 박고 내 마음과 생각을 고쳐 다시 나아갑시다.




유플리더가

사랑받는 사람이 되도록

트렌디한 사람이 되도록

재치있는 사람이 되도록

다양한 잽을 날릴 것이다.


대화의 소재를 주고

사색하게 하고

발전하게 할 것이다.

그래서 유플위클리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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