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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잠 Sep 09. 2019

독립 후 첫 명절

세상에는 맛있는 것도 많고 좋은 분들도 많다.

세 아이들을 데리고 독립해서 나왔으나 말이 독립이지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내 주위에는 나를 도와주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릇, 냄비, 수건 할 것 없이 접시, 물컵, 주방용품, 세제 하나하나까지... 여느 살림집 주방에 있을만한 것들을 지인들이 다 채워주셨다.

집에 있는 잉여물품들, 굳이 없어도 되는 것들이나 혹은 일부러 챙겨 오신 새 살림들, 한 번도 꺼내 쓰지 않은, 어쩌면 딸 시집갈 때 주려고 산 건지 모를 반짝이고 새로운 집기들까지 모두 우리 집으로 다 모였다.

쌀도, 반찬도, 아이들 간식이며 과일까지 더 이상 갖고 올 수 없을 정도로 무겁게 가지고들 오셨다.

처음에 나는 그때마다 울었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다.

세 아이들을 데리고 멀쩡한(?) 집을 나와서 세간살이 하나 없는 빈 집에 들어와 남의 도움으로 살림살이가 하나둘씩 채워져 갈 때, 나는 고마워서 울었고, 미안해서 울었고, 어쩔 줄 몰라서 울었다.

그땐 눈만 마주쳐도 울컥했다. 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받기가 벅차고 송구스러웠고 감사했다.

그런 내 모습을 보신 지인들 모두가 진심으로 격려해주셨다. 괜찮다고... 살아갈 수 있다고... 다 해낼 수 있다고 해주셨다. 그만 울어도 되겠다고 하셨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주변에 있지 않냐며 놀라워하셨다.

나도 놀라고, 모두가 놀라는 과정을 겪으면서 나는 경제적으로 독립 기반을 구축했다.

이제 앞으로 열심히 아이들과 살아가면서 받은 은혜를 갚으며 살면 된다. 그 자체로 희망이고 하루하루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내가 독립하여서 한 일들 중에 하나는 주민센터에 가서 전입신고를 하면서 나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상담한 일이다. 아직 법적으로 정리가 되지 않아서 경제적으로 지원을 받을 수는 없지만, 나의 딱한 상황을 헤아리신 주민센터 관계자님들과 통장님, 주변 선생님들 모두 나를 돕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 주셨다.

각종 후원물품들도 주셨고, 나의 심리상태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관심을 보여주셨다. 오히려 너무나 멀쩡해서(?) 다행이라 하셨고 좋아 보인다고 하셨고, 응원해주셨다.

명절을 앞두고 보내주신 후원물품들이 많다. 밀가루, 식용유, 양념류, 한과, 김, 미역, 다시마, 과일, 빵, 화장품, 마스크팩 등등 차고 넘치게 채워주셔서 한동안 먹고 살 일도 근심 없다.

아이들도 풍족하게  지내고 있고 많은 관심 속에 있다.

세상이 이렇게 따뜻하고 주변에 손 내밀어 주시는 분들이 많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내가 겪어보니 다르게 다가온다.

전에는 걸핏하면 나가라고 소리치는 남편 앞에서, 나가지 못하고 참았다.

그와 살 때는 그의 명의로 된 우리 집이 차마 내 집 같지가 않았었는데, 지금 아이들과 살아가고 있는 이 월세 아파트가 진짜 내 집 같고, 얼마나 편안한지 모른다. 여기가 내 집 같다. 내 집이다.

어디서 어떻게 사느냐 보다, '누구와 사느냐' 역시 이렇게 삶에 있어 행복과 평화를 좌우하는 것인지, 이 상황이 닥치고서야 비로소 알아지는 게 있었다.


나는 요즘 편안하고, 비로소 내 삶을 사는 것 같고, 사는 것 같게 살고 있다.

전에는 내가 아닌 것 같은 순간이 많았다.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인지 헷갈렸다.

날씨가 흐려서 우울한 것인지, 그에게서 길들여진 우울함인지도 분간이 안될 때가 있었다. 흐리면 흐려서, 괴로우면 괴로워서 기분이 가라앉아있었다. 그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나는 더 밝게 웃었고, 열심히 일했고, 독서를 했고 산책을 했다. 다행히 잘 감춰왔었으어느 순간 화산처럼 터져버렸다.

터져 나와보니 세상이 이렇게 넓고, 맛있는 것도 많고 좋은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알았다.

엄마가 '뉴스를 보면 세상엔 나쁜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보여도, 사실은 나쁜 사람보다는 좋은 사람이 더 많다'라고 하셨는데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다.


미움이 다툼을 낳을까, 아니면 다툼이 미움을 낳을까? 그가 밉기 때문에 나는 그와 다투었을까, 아니면 내가 그와 다투었기 때문에 그가 미울까?

아니, 지금의 내 감정은 미움이 아니다.

애처롭고, 안타깝고, 응원하는 마음이다.

그 역시 삶에 있어서 그가 꿈꾸는 행복을 찾아 나아갔으면 좋겠다. 그것이 내가 떠나 독립해서 나온 의미이자 보람일 것이다. 우리 모두 더 나은 모습으로, 각자 성장한 모습으로 만났을 때 반갑고 기뻤으면 좋겠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는 길... 받은 관심과 사랑을 사회에 환원하는 길. 그래서 우리 사회가 좀 더 살아갈만한 사회가 되도록 작은 점 하나 찍는 일. 앞으로 내가 살아가고 싶은 길, 해나가고 싶은 일이다.

나는 행복을 꿈꾸며 오늘도 직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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