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글쓰기 지도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이가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말로써 어떻게 표현하는가 하는 부분이다. 보통 말로 표현해낼 수 있게만 유도한다면 그것을 글로 옮겨 쓰게 하는 데까지는 훨씬 수월하게 통과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을 말로 표현하는 것 자체가 힘든 아이들도 적잖이 많다.
자신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모르거나, 아니면 진짜 생각이 없거나 둘 중 하나이다.
생각하기 싫어하고, 생각을 할 수 없는 상태로 자라가고 있는 가정환경이라면, 글쓰기가 문제가 아니라 치료가 병행되어야 한다.
머릿속에 생각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말로 표현할 줄 모르는 아이는 그다지 만나지 못했다. 떠듬떠듬이라도 아이들은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말하기를 좋아한다. 본능이다.
본능적으로 자신의 말에 귀기울여주기를, 아이들은 끊임없이 기다리고 있다.
말하기 자체는 크게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글쓰기로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지름길이다.
그런 전제로 생각해볼 때, 말로 표현하게끔 하려면 평소에 나누는 대화량이 어느 정도 확보되어야 한다.
그 대화량이 아이들의 표현력을 좌우하는 바로미터가 된다.
다음 중에서 자녀와의 대화를 찾아보자.
"학교 잘 다녀왔니?"
"숙제했니?"
"학원 갔다 왔니?"
"내일 숙제는 뭐니?"
"오늘 학교에서 뭐 먹었니?"
위의 표현 중에 대화가 있는가?
답은 '없다'이다.
위에 나오는 표현은 일상 속에서 닳고 닳아서 아이들은 생각지도 않는 말이다. 늘 하는 말, 또는 그조차 하지 않는 말, 엄마의 잔소리일 뿐이다.
생각과 하루의 일과 고민에 관심을 두지 않는 일상적인 질문 형태는 '대화'에 넣을 수 없다.
"오늘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는데 엄마 기분은 별로였어. 엄마 마음이 편하지도 않았고 컨디션이 별로였거든, 얼른 집에 와서 우리 00이 만날 생각만 하면서 달려왔지 뭐야. 우리 00 얼굴 보니 이제 살 것 같아. 넌 어땠어?"
이런 질문이라면, 아이는 어떻게 반응할까?
'평소에 하지 않는 말을 하고, 이 엄마가 또 왜 이러지?'라고 할 수도 있고, 묻지 않았으면 하지 않았을 표현을 아이가 오히려 꺼낼 수도 있다. 그럼 횡재다. 그것을 시작으로 대화의 물꼬를 틀 수도 있다.
그런 식으로 아이의 마음을 평소 편안한 상태에서 표현할 수 있도록 신경을 쓰는 것이 내 아이 글쓰기 실력을 향상하는 첫걸음이다.
학원을 정하고 나머지 몫은 선생님께 맡긴다면 아이는 그렇고 그런 형식에 매여 그 틀 안에서 기계처럼 글을 작성하는, 혹은 그마저 해내지 못하는 '글 장애'를 겪게 될 수도 있다.
'글쓰기란 정말 따분하고 재미없는 일이야, 글을 왜 쓰는 지 모르겠어. 글쓰기가 제일 싫어' 라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는 아이들이 의외로(?) 많은 게 현실이다.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오히려 어렵게 가고 있다. 글은 마음을 문자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엄마의 욕심에 아이가 글로써 '잘' 표현해주기만을 바란다. 더 능숙하고 논리적이고 정연하게...
그러나 아이 입장에서는 제대로 표현하는 것을 배운 적이 없다. 아이들은 태어나면서 몸짓으로 표현하다 그림으로 표현하다 장난감, 놀이, 상호작용으로서 충분히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표현을 하는 시기가 되면 엄마는 육아와 가사, 남편과의 관계, 직장 업무와 스트레스, 체력 소진 등으로 인해 아이와 상호작용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든다. 그런 과정에서 서로의 대화량은 점차 줄어들고, 부모 자식 간의 관계도 오래된 말없는 부부 사이만큼이나 소원해질 수도 있다.
내 자식이지만 도대체 '속'을 알 수 없음에 뒤늦게 답답하고 대책 없는 순간을 맞닥뜨리게 되면 그때 '논리논술' 과제를 해결하기란 쉽게 갈 수 없는 길이 된다.
다이어트를 할 때 희망 부위의 살이 가장 마지막에 빠지는 것처럼, 아이들의 글쓰기 실력도 마지막에 가서 나아진다. 처음엔 기다리고 적응하고 회복되는 과정이 필요하다.
아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너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음이 믿어지게 해 주고, 어떤 말이건 우리가 나눌 수 있는 관계가 될 때, 아이는 마음을 열고 글로 표현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글쓰기란, 글 보다 먼저 말, 말보다 먼저 그림이다. 차근차근 시작하면 나아갈 수 있는 길이다. 그래서 글쓰기는 늘 희망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