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 집을 박차고 나오면서 평생 흘릴 눈물을 다 흘렸다고 생각했는데, 뇌경색으로 입원한 기간에도 평생 흘릴 양의 눈물은 다시 흘린 느낌이었다.
내가 이따금씩 우는 모습을 보며 간호사님이 웃으며 얘기하셨다.
"괜찮아요, 안 죽어요."
(저 정말 안 죽는 거 맞지요?)
웃으며 '죽을래?'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내 주변에는 많았는데, 나는 예전부터 그 말이 너무 싫었다. 진짜 죽으면 어쩌려고, 나는 겁이 덜컥 나서 다른 사람에게 감히 '죽을래?'라고 웃으며 말하는 사람을 보면 기분이 싸한 게 무서웠다. 건강이나 생명에 대해 안일하여 너무 열심히만 살았을 정도로 '죽음'에 대해 강박적으로 생각하진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어쩌면 내 속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것인지 모른다.
고등학교 때 할아버지께서 병환으로 안방에 누워 지내셨던 적이 있다.
학교 갈 때마다 늘 방문을 조용히 열고 "할아버지, 학교 다녀올게요!"라고 말을 했었는데 언제부턴가 할머니께서 방문을 열지 말고 조용히 가라고 하셨다. 점점 가죽밖에 남지 않으셨던 할아버지께서는 누운채로 자리에서 용변을 보셨고 뒤처리를 할머니께서 하셨다. 보통 그 시간이 내가 학교 갈 시간과 잘 겹쳤다. 그래서 그런 상황을 손녀에게 보일 수 없어서 할머니는 나에게 그냥 밖에서 목소리로만 인사를 하고 가라고 하셨다.
그날도 그랬다. "할아버지, 학교 다녀올게요."
늘 내 말은 허공에 맴돌았다. 내 말에 응답하지 못하시는, 몸만 살아계시던 할아버지는 내 목소리를 들으셨을까.
그날따라 방문을 열고 들어가 할아버지를 보고 학교에 가고 싶었다. 그런데 그러지 못하고 학교를 다녀왔다. 집안에 들어서니 집에 사람이 아무도 없고, 평소와 다르게 집안에 가득한 조용한 기운이 낯설었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날이었다.
할아버지의 마지막 얼굴을 보지 못하고, 장례식장에서 영정사진을 보면서 나는 오열하는 어른들 뒤에서 조용히 울었다. 그 이후 나는 죽음에 대해 무서움을 갖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아는 무서움이란, 죽음이란 마지막 인사를 하지 못하고 가는 것이다.
해야 할 말을 못 하고 가는 것이고, 해야 할 일을 다하지 못하고 가는 것이다. 남은 자들에게 후회를 남기고, 마지막 인사할 기회를 주지 않고 가는 것이다.
나는 그런 무서움을 떠올렸다. 그래서 울었다. 그런데 간호사님의 말이 나에겐 좋았다.
"괜찮아요, 안 죽어요."
뇌경색으로 사망할 확률보다 살아갈 확률이 크다고 생각한다. 뇌경색으로 잘못될 확률보다 잘 될 확률이 클 것을 생각한다. 뇌경색으로 소중한 것을 잃을 확률보다 소중한 것을 얻을 것을 생각한다.
나빠질 일보다 좋아질 일들을 기대하고, 못할 것보다 하게 될 일들을 생각한다.
그것이 내가 눈물을 멈춘 이유다.
병실에서 일주일간 입원하며 안정되고 혈압이 오르지 않도록 안정을 기해(절대 안정) 지낸 후 집으로 돌아와서도 안정되게 잘 지내고 있다.
이틀 후면 퇴원했던 곳으로 외래진료를 다녀오고, 다음 주면 큰 병원으로 가서 재검이 가능한지 또 예약이 되어있다.
하나하나 주어지는 일들을 잘 감당하다 보면 꼬이지 않고, 엉키지 않고 내 길을 잘 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응원하고 기도해주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고, 소중한 '돼지꿈'을 기꺼이 나에게 나눠주신 분도 계시고, 오매불망 나를 생각해주는 지인들이 계셔서 외롭지도 않고 감사하게 지내는 중이다.
치료와 정기 검사를 통해서 뇌경색의 재발 위험을 낮추고 일상생활을 건강하게 해 나갈 수 있도록 돕는 의료진이 있으니 나도 건강하게 생활해나가도록 노력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각자의 삶 속에서 우린 때때로 크고 작은 일들을 겪기 마련인데, 나에게 닥친 이 특별한 기회가 생각보다는 괜찮아서, 즐겁게 감당하고 있다.
내 인생의 스위치 하나가 더 켜진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