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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잠 Dec 28. 2019

뇌경색 환자에게 필요한것은 휴식이다.

아무것도 하지않고 쉬는게 휴식이다.

내가 뇌경색 진단을 받고 바뀐 것은 내가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이별하는 것을 배우게 된 것이다.


갓 지은 밥에 명란젓을 올려먹으며 밥을 두 그릇을 먹을 때 행복하게 몸에 퍼지는 기운.

칼로리를 생각하기보다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것을 먹을 때 느끼는 삶의 만족.

지인이 나에게 간단하게 라면이나 끓여먹자고 할 때 웃으며 '그래!' 할 수 있는 용기.

갓 지은 빵과 떡을 나눠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달콤한 시간.

서로 내기하듯 지하부터 꼭대기층까지 계단 오르기 10번 할 수 있는 패기.

향긋한 커피를 마시며 커피를 한잔 더 리필해서 먹을 수 있는 여유.

그로부터 이별이다.

나는 이제 카페인이 들어간 차를 먹지 못하고 자몽과 마늘을 먹으면 안 된다고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지금까지 누려왔던 것들이 얼마나 많은 혜택이었는지, 아무것도 아니게 느껴졌던 것들이 아무것이 된 현실.


뇌경색은 인생이 가져다준 커미션이다.

앞으로 평생 관리하고 주의하면서 살아가라고, 그러면 보너스가 있을 것이라고 지금 나에게 준 인생의 분기점.


일단 앞으로 긴 시간이 걸리겠지만, 우선 약을 잘 복용하면서 식단관리, 체중관리를 하려고 한다.

그리해야 한다고 한다.

사실 오래전부터 필요하다고 느꼈지만, 그 때 지금이다. 예전에 선배들이 어떤 계기가 되어 철저하게 몸을 관리하는 것을 보면서 그 '어떤 계기'라는 것이 나에게도 올진 생각을 못했는데 내게도 왔다. 보란 듯이.

그래서 이제는 내 차례다. 페이스를 잘 유지하고 천천히 오래갈 수 있게 하나하나씩 잘못된 부분들을 바꿔가려 한다.


그 첫 번째가 식단과 체중조절, 그리고 시간관리.

하나하나 쉽지 않지만 그것도 공부고 노력이 필요한 일. 정말 세상일 쉬운 게 하나도 없다는 말이 딱 떠오르지만, 어쩌면 이것이 가장 쉬운 일인 것 같기도 하다.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되기. 삶의 속도를 조절하고 방향을 찾아가고, 삶의 경계를 지키기.

뇌경색이 재발할 가능성이 있는 것은 그 어떤 것이라도 피하고 조심하기. 힘들게 하지 않기, 애써 노력하지 않기. 지나치게 참지 않기. 바로바로 이야기 하기. 자기반성은 짧게, 개선 노력은 길게 꾸준히 앞으로.


특히 최근 1년 동안은 하루에 경계 없이 계속해서 달려왔다. 일과 쉼의 경계가 없었고, 지금 일에서 다음 일로 넘어가는 것이 '쉼'이라고 생각했다.  마음먹으면 꾸준히 하기 때문에 그 꾸준함이 나의 삶의 적절함과 필요함이라 생각했고 그렇게 무리 없이 담당하는 것이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건강을 잃고서는 모든 것이 부질없다는 것,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걱정시키고 피해를 줄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 더 두렵다.

내 뇌는 그동안 내게 쉬면 안 된다고 난폭한 고용주처럼 굴었지만, 앞으로는 합리적으로 타협하고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논의하는 노조가 필요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자꾸만 쉬라고 한다. 일과 쉼이 분리가 되어야 하고, 분명해야 한다고 한다. 아직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내 의지가 휴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쉬는 것이 휴식이라고 한다. 내게는 그런 휴식이 필요하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잘못하는 것 같은 죄책감이 자꾸 드는데 이것도 병이라고 한다.

그래서 알람 시간을 정해놓고 그 시간에는 쉬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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