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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잠 Dec 28. 2019

괜찮다, 괜찮지 않다

재활치료에 가면 중증장애부터 경미한 환자까지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몸에 장애가 있는 것보다 뇌에 장애가 생길 때 사람이 어떻게 보이는지, 어떤 기능들이 퇴화하는지 눈 앞에서 보아졌다.

그중 나이가 젊고 건강청년의 모습을 보았는데 외모에서는 전혀 불편함을 못 느꼈다. 다만 들리는 말소리로 뇌의 어느 부분이 장애를 겪고 있는 것 같았다.

물리치료사와 이야기를 곧잘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분의 재활의지를 느낄 수 있었고 그는 퇴원하면 공무원 시험을 보고 싶다고 했다.

재활치료사님은 그분을 응원해주면서 자신이 알고 있는 온갖 공공기관의 취업정보와 사회의 분위기들을 생기 있는 목소리로 계속 들려주셨다. 그리고 꼭 원하는 곳에 취업이 잘 되길 바란다고 응원해주셨다.

미래의 희망적인 이야기들을 나누며 재활의지를 다지며, 주거니 받거니 하는 말속에 나는 그분이 점점 좋아질 것이라는 것을 예감할 수 있었다.



내 옆에는 할아버지께서 다리 운동을 하고 계셨다. 재활치료사의 지시에 따라 하나도 지키는 게 없자 재활치료사님이 나중에 좀 힘들어 보이셨다. 어떻게든 도와드리려고 노력하셨는데 할아버지께서는 생의 모든 것을 체념한 듯한 표정과 모습으로 그저 가만히 서계셨다.

할아버지의 낙심한 얼굴은 하나도 괜찮아 보이지 않았지만, 할아버지께서는 계속 괜찮다고만 하셨다. "운동 안 해도 괜찮다, 안 나아도 괜찮다, 죽어도 괜찮다....". 나는 그 말이 어느 말보다도 더 '살고 싶다'는 목소리로 와 닿았다.


나도 쓰러졌던 다음날, '괜찮아 보이는' 모습에 병원 가는 것을 몇 번 미루었었다. 그런데 막상 일이 닥치고 보니, 괜찮아 보인다고 해서 괜찮은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다면 더 좋았겠지만, 다행인 것은 이제 나는 내가 아프거나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달라고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폐 끼치기 싫어하는 사람은 괜찮냐고 물어보면 괜찮다고 말한다. 도와줄 게 있냐고 물어보더라도 없다고 말한다. 힘든 거 없냐고 물으면 힘들지 않다고 얘기하고, 혼자 삭히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 나는 그런 내 모습도 좋았다. 그런데 도와달라는 말을 잘하지 못하면, 자기가 원하는 것이 있더라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게 되기도 한다. 이제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해 행동할 줄 알게 되었고, '괜찮다'는 말을 함부로 쓰기 싫어졌다. 나는 안 괜찮을 때 괜찮지 않다고 말할 것이고, 기분이 나쁠 때 기분 나쁘다고 할 것이다. 가고 싶지 않은 곳에는 가지 않을 것이고,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은 만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좀 바빠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조금이라도 허튼데 쓰고 싶지 않아서 나는 앞으로 내가 원하는 일을 할 것이고 보고 싶은 사람만 볼 것이다. 그것이 나의 '이기'라 할지라도, 내 인생이니까, 내 거니까, 건들지 말라고. 당신은 당신 갈 길 가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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