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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잠 Dec 30. 2019

올해의 마지막 다이어리엔 연애편지를 쓸 거다.

올해도 하루가 남았다. 너무 뿌듯하다.

신년도 다이어리를 받고 하나하나 메꿔왔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다이어리엔 날짜 칸이 2개, 메모할 수 있는 페이지는 1장이 남았다.

내 다이어리에는 앞으로 출판하고 싶은 책의 내용과 콘셉트들이 담겨있고, 소중한 사람들과의 이야기가 적혀있고, 독서기록과 중요 메모들, 시간 스케줄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나보다 더 수고한 다이어리의 노고를 치하하며, 다이어리의 묵은 때와 너덜거림과도 안녕을 고해야 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에 감사하다.


#거절은 인생의 기술이다.

<신경 끄기의 기술>, 마크 맨슨 크누프의 책에서 보았던 메시지는 강렬했다.


당신의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드는 길은 수많은 선택지를 거부하는 것이다. 한 가지에 몰입하라. 자유를 얻을 것이다.


말하자면 좀 그럴 수도 있지만... 나는 첫 번째 거절 대상을 남편으로 정했다. 남편과의 남은 인생을 거절하고, 나는 졸혼했다. 일방적으로!

시작은 일방적이었으나 끝은 쌍방이 되기를 희망하며 내년의 목표는 깔끔하게 이혼하는 것이다.


완전한 자유 그 자체는 아무 의미도 없다. 자유는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들 기회를 주지만, 그 자체로 반드시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다. 궁극적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의미 있고 중요하게 만드는 유일한 길은 수많은 선택지를 거부하는 것이다.
즉 자유의 범위를 좁히는 것이다. 우리는 한 가지를 선택해 몰입해야 한다. 하나의 장소, 하나의 믿음, 하나의 사람을 말이다.


자유를 찾아 떠나왔지만, 자유 = free 가 아니었다. 졸혼만 하면 당장 내 앞길이 free pass 일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가는 데마다 진흙이고 곳곳에 장애물이 있다.

오히려 더 얹어지는 책임과, 온전히 맡겨진 의무와, 홀로 떠안은 부담과 자립을 향한 열망은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들을 끊임없이 맞닥뜨리게 했다.  세상은 그리 만만한 것은 아니어서, 선의로 한 일에도 욕은 먹고, 내 의지로 한 일에 남들의 평가가 따르고, 속이 뒤틀리는 소리는 나 혼자 듣는 듯했다.

어쩌면 그저 일방적 졸혼을 당하신 그분께서는 홀로 유유자적한 삶을 즐기며, 마누라가 왜 애들을 다 데리고 집을 나간 건지 기가 차다고 생각하며 답답하면 들어오겠지 생각할 수도 있겠다.

이 정신 나간 마누라가 겁도 없이 애들을 다 데리고 나가서는 아마 죽을 고생을 하며 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이랬거나 저랬거나.

그 모든 잡다한 소리들로부터 나는 '신경 끄기'를 선택했고 나의 몰입은 듣기 싫은 소리는 차단하고 듣고 싶은 소리에 감각이 발달해왔다. 어차피 남의 일로 떠드는 것은 그때뿐이고, 돌아서면 그만인 것이라.

그들이 자신의 삶에 충실(?) 하듯이 나도 내 삶에 충실하면 되는 것이라.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내가 이 삶 저 삶까지 생각할 여유도 없었기도 하고.


마지막 다이어리에는 어떤 말들을 쓸지, 나는 1년을 기대하며 생각다. 그리고 그 순간을 첫사랑 만나듯 기다려왔다. 내일이면 그 첫사랑을 만나는, 나만의 순간이 온다.


그동안 잘 참아와서 고맙다고, 그동안 잘 이겨내서 장하다고, 그동안 해온 일들이 너 다웠다고! 그동안 너를 돌보지 않고 외면해서 미안했다고, 앞으론 너를 정말 사랑해주겠노라고.

올해의 마지막 다이어리엔 날 위해 연애편지를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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