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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잠 Jan 17. 2020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 실사판

온달 왕자와 바보 평강 이야기

어렸을 때 나는 눈물이 많은 아이였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이야기를 해주시면서 자꾸 울면 바보온달과 결혼하게 된다고 얘기하셨다. 어렸을 때는 '바보'와 결혼하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해서 '바보'와 결혼하지 않을 거라고 했는데 그러면 엄마는 '결혼을 하긴 할 건가 보네?'라고 놀리셨다.
조금 더 자랐을 때는 '바보 온달'이 알고 보니 바보가 아니라 '공주'덕에 멋지게 성장하는 인물임을 알게 되었고, 공주 덕에 성장은 했더라도 그가 갖고 있던 '잠재능력'이 나는 멋지게 보였다. 그래서 바보 온달이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 사람은 누구를 만나냐에 따라서 인생이 달라진다며 꽤 그럴듯한 말로 엄마에게 이제 더 이상 바보온달 이야기하지 말라고 얘기했다.
그 뒤로 엄마의 입에서는 바보온달 이야기가 잦아들었고, 내 눈에서는 눈물이 잦아들었다.
그런데 살다 보니 결혼이란 걸 하게 되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건대, 나는 평강공주도 안되었고, 한 때 남편이던 사람을 바보 온달에서 더 이상 업그레이드시키지 못했다. 내가 '바보 평강'이었던 덕에, 그가 '온달 왕자'로 군림하며 살았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바보 같았다는 생각이 든다.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의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동화 속 전설로 남았고, 나의 해피엔딩 이야기는 아직 더 가봐야 알겠지만, 아직은 나 스스로의 만족일 뿐이다.
살아가면서 내가 저지른 실수를 열거하자면 끝이 없겠지만, 결혼은 실수라기보다는 경험이었다.
나의 결혼경험기는 여러 사람들에게 슬픔과 즐거움을 주고 가십거리로 훌륭했다.
무엇보다 내가 치른 경험으로 나는 만족한다. 더 이상 흙탕물 속에서 허우적거리지 않고 살 길을 찾아 나온 과정이 용감했다.
엄마 말씀으로는 이모가 나더러 용감하다고 했다고 한다. 내가 살면서 처음 들어본 말이다.
나는 용감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귀엽다, 예쁘다, 착하다, 순수하다, 밝다, 재미있다, 글을 잘 쓴다, 말을 잘한다, 인내심이 많다, 배려심이 많다, 표현을 잘한다, 창의적이다, 부지런하다 등등의 말이 내가 제일 많이 듣고 살아온 말이다. 그런데 남편과 살면서 나는 나의 다른 모습을 알게 되었다. 남편은 나에게 화가 나면 염장지르기 위해서 말했다.
못생겼다, 뚱뚱하다, 못됐다, 나쁘다, 어둡다, 재미없다, 싸움을 잘한다, 참을성이 없다, 이기적이다, 나만 안다, 표현을 안 한다, 게으르다....
내가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는데, 나는 그 말을 들을 때 묘한 승리감을 느꼈다. 그래, 당신은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살기 바란다. 얼마나 지옥이겠어.

싸울 때 억화심정에서 나온 말이란 것도 안다. 그는 나를 어여삐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음을 사실 나는 안다. 헤어질 때 그는 나에게 '씨발, 나는 여전히 당신 사랑하는데'라고 했다.
당신의 사랑법이 틀렸고, 내가 원하는 사랑이 아니었음에 나는 당신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별했다. 그것이 사실임을 당신도 받아들이고, 이제 나를 이미 당신의 마음에서 떠나보내 주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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