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는 여러 가지 버전으로 변환된다. 같은 재료라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플라스틱이 되고 글자판이 되고 미술도구가 되고 게임판이 된다.
아이가 어렸을 때 계란판을 그냥 버린 적이 없다. 누구는 계란에 보이지 않는 균이 많다고 경악했지만, 나는 씻고 에탄올을 칙칙 뿌려 소독을 해서라도 썼다. 그리고 가멸차게 재활용 쓰레기장으로 버렸다. 그냥 버리는 것 보다야, 이 세상에 태어나 뭐라도 하고 가면 의미가 있는 것은 사람이나 물건이나 마찬가지. 게다가 물건은 환경에 인간보다 오래 남으니 그냥 버리기는 더더욱 아까웠다.
공들여 만들면 엄마가 힘드니까 대충 만든다. 대충 만들어도 아이들은 새로워하고 신나게 좋아하니까. 너무 정성껏 만들면 엄마들은 본전을 뽑고싶어서 잠깐 정신줄 놓으면 애들을 데리고 공부학대를 일삼을수도 있으니. 나는 놀이는 놀이로서 시작과 끝을 맺고, 그 과정에서 얻는 것은 아이들이 알아서 취할 거라고 생각했다.
'가' 소리나는 글자가 어디냐고 물으면, 아이가 레고조각을 '가'자리에 놓았다. 별거 아니어보여도 글자카드 들고 읽어보라고 하는것과 천지차이다. 글자카드를 들고 읽어보라고하면 엄마가 글자를 아는지 모르는지 검사하고 확인하는 것 같아보여도, 계란판을 놓고 레고조각을 넣으라고 하면, 놀이라고 생각하고 재미있게 참여하는것이 일반적인 아이들이다. (절대 엄마의 욕심이 앞서거나 들키면 안된다는것이 놀이 중 엄마가 기억해야 할 비법이다.)
계란판에 따라서 레고를 놓을 수 있도록 홈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다. 있으면 있는데로 활용하고 없으면 없는데로 활용한다. 활용법은, 글자를 맞춘 레고가 몇 개 모였는지 알수 있도록 홈에다 모아놓는 것이다.
만약 이렇게 홈이 없으면 계란판 한쪽 옆에 적당한 것을 놓고 그곳에 모으게 하면 된다. 이왕이면 레고로 만들거나, 좋아하는 용기, 장난감, 자동차 등 레고조각이 담길만한 것이면 더 좋다.
게임이 끝났을 때 맞춘 갯수에 따라서 레고가 쌓여있는 것을 눈으로 보면 아이도 훨씬 좋아하고 성취감을 느끼기도 하니까. 꼭 맞춘 갯수에 따라 표시할 수 있는 조그만 것들을 준비하면 좋다.
그것이 레고 조각이든, 콩이든, 색종이 조각이어도 좋지만, 쌓여갈수록 불어날 수 있는것, 시각적으로 표시가 확 나는 것일수록 동기부여가 되어서 아이가 놀이를 즐거워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공부는 할 때 제대로 엉덩이 힘으로 본인이 자기주도하에 밀고 나가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는 그 이상으로는 못키운다. 공부는 하는 놈만 시킨다고 계속 강조한다. 그렇다고 공부안한다고 오구오구 내새끼 하지 않는다. 공부가 아니면 재능으로, 성실로,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것으로 사람은 이름값, 밥값, 사람노릇을 하고 살아야 한다고 얘기할 뿐이다.
공짜는 없다. 공짜밥은 더욱 없다. 우리집에 오면 청소를 하든 서로를 돕든 자기몫을 하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 그 국물이라는 것은 놀이시간, 밥, 정당한 댓가, 칭찬, 자유 등이다.
하는 만큼 가진다.
놀이는 놀이로서 재미있을때 얻어진다. 놀이하는 순간 아이들의 뇌는 행복해서 비명을 지른다.
그 비명소리를 아이가 느낀다. 뇌가 얼마나 행복해하는지 그 감정이 마음으로 내려오면 아이의 스트레스가 풀리고 마음이 편안해지고 놀이는 어느새 아이의 뇌를 마구 움직이면서 학습모드로 바뀐다. 신기한 뇌의 세계.
계란판을 이용한 글자 학습법
가, 나, 다, 라 등 소리가 나는 글자를 맞춘다.
'가' 들어가는 단어 하나 둘 얘기하고 점수 1점 올리기.(가방, 가위, 가죽, 가축, 가게 등)
'나' 들어가는 단어 (나비, 나방, 나무 등)
'다' 들어가는 단어 (다람쥐, 다리, 다락방 등)
'마' 들어가는 단어 (마을, 마차, 마음 등)
'라' 들어가는 단어 (라면, 라디오, 라....*여기서 중요한 것은 라...에서 멈추면 거기서 통과해야한다.
3초 안에 나오지 않으면 이런 단어 익히는 시기의 아이들은 금새 흥미를 잃고 실망하고 재미가 뚝 떨어진다. 승부력이 높은 아이, 소심한 아이는 더 주의. 재밌자고 하는 일에 너무 목숨걸고 달려들지 않도록. 엄마가 적당히 끊고 잘 맞출 때 기뻐하면 된다.
잘한다 잘한다 하면 못하는것 들키기 싫어서 잘하는 모습만 보여주려고 한다. 그래서 못할 것 같으면 시도도 하지 않는다.그저 놀이할때는 '잘한다'보다는 그냥 탄성, "와, 오~~~, 예~~~, 호호호 하하하,맞았어! 그렇지! 또 맞췄어!' 하는 것으로 아이는 엄마가 기뻐하는 것을 칭찬으로 충분히 느낀다.
모르고 틀릴 때는 엄마가 요령껏 눈치껏 살짝 힌트를 준다거나 아빠찬스, 엄마찬스, 형제 찬스를 쓴다거나 하는게 좋다. 맞다 틀리다의 2분법 사고가 아니라, 지금은 바로 맞췄고, 지금은 힌트가 도움이 되었고, 이제는 생각해내서 대답을 해냈다고 얘기해주면서 함께하는 놀이에 의미를 더 두도록 한다.
가,나,다,라.. 등 예로 든 단어를 살펴보면, 글자 외우는 시기의 아이들은 비슷한 단어를 말하는 맥락이 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의 효과다. 또래에서 쓰고 배우는 익숙한 단어를 말하고, 반복하고, 즐거워하면서 자연스럽게 한글을 읽히는 단계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놀이를 통해서 글자를 재미있게 인식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면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