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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란서 제과점>과 <밀림 제과점>의 차이

by 아인잠

내가 어릴 적 우리 동네에는 육교를 사이에 두고, 이쪽 편에는 <불란서 제과점>이, 저 편에는 <밀림 제과점>이 있었다. 내 입맛에는 밀림 제과점 빵이 정~ 말 맛이 있었다. 밀림 제과점의 빵은 언제 먹어도 촉촉하고 고소하고 부드럽고 따뜻했다.

빵 향기가 솔솔 풍기고 지나갈 때마다 찬란하게 빛나는 갓 나온 빵이 진열대에 놓여있었다.

나는 밀림 제과점의 빵을 보면서 지나다니는 것만으로도 이미 행복했다. 눈으로 먹고, 향으로 먹고, 마음으로 행복해지는 것 같은 <밀림 제과점>의 빵은 나에겐 '그림의 떡 중에서도 떡'이요, 마음대로 맛볼 수 없는 높다란 성지의 열매 같았다. 내 입에 언제나 맛있었던 <밀림 제과점>의 빵은 남의 입 맛에도 맛있었는지 항상 밀림 제과점의 빵은 불티나게 팔렸던 것 같다. 당시엔 몰랐지만 지금은 명확하게 표현할 수가 있다. 일명 '재고'가 없었다. 그리고, 맛있는 만큼 가격도 <불란서 제과점>보다 500원에서 1000원은 더 비쌌다.


지금도 생각나는 그 밤식빵은 정말 최고의 맛을 자랑했다. 밤이 풍성하게 들어있는 촉촉한 밤식빵을 결에 따라 찢어 먹을 때면 행복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20200302_223503.jpg by 아인잠's girl.


<불란서 제과점>의 빵은 어딘지 질기고 거칠고 담백하지 않은 밍밍한 맛이었다. 그냥 밀가루 맛 빵. 단팥빵은 단팥빵대로 밀림 제과점보다 팥도 적고 특유의 촉촉한 맛이 없었다. 크림빵은 어딘지 느끼하고, 한 곳에 덩어리가 모여있어서 크림빵을 먹으려면 크림을 요령껏 베어 먹어서 빵이 손에서 사라지기 전까지 분배를 잘해야 했다. 꽈배기도 질기고 밤식빵에는 밤이 적고, 도넛은 너무 기름지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역시 빵은 <밀림 제과점>이 맛있다고 생각했다.


맛은 어떻던지 간에, 가격이 <밀림 제과점>보다 저렴한 <불란서 제과점>에서 엄마는 항상 빵을 사셨다. '항상' 샀다고 매일 산 것이 아니라, 어쩌다 가끔 사주셨다는 것이다.

나는 <밀림 제과점>의 빵을 내 친구 집에서 모두 맛보았다. 우리 집보다 형편이 나았던지 친구 집에는 라면도 종류대로 있고, 빵은 항상 내 사랑 <밀림 제과점>에서만 사다 놓으시고(그것도 종류대로), 그리고 사과는 항상 아기 머리 크기만 했다. 우리 집 사과는 항상 내 주먹 크기만 했고.


친구 집에 가는 것은 <밀림 제과점>의 빵을 먹는 것을 의미했다. 얼마나 맛있던지, 한 조각, 몇 조각 그렇게 먹고 오는 것만으로도 나는 욕심 없이 감사하게 먹었다.


20200302_223456.jpg by 아인잠's girl.


어느 날엔, 엄마에게 우리도 <밀림 제과점>에서 빵을 사 먹자고 했건만, 엄마는 거긴 값이 더 비싸고 육교를 넘어갔다가 집으로 넘어와야 하는 것도 불편하다고 하셨다. 빵 맛은 다 똑같다며 그냥 먹으라고.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에나 지금에나, 빵 맛은 다 똑같지 않다. 내 추억 속의 <밀림 제과점>의 빵을 원 없이 먹어보고 싶었건만, 어느 날 보니까 <밀림 제과점>이 없어져 있었다. 어디로 간 건지 왜 사라졌는지도 나는 몰랐다. 아무도 답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항상 생각한다. 나의 유년시절 내 기준의 가장 중요하고도 부러웠던 큰 사치는 <밀림 제과점>의 빵을 먹는 것이었다고.



한 때 나의 꿈은 제빵사였다. 아니, 제빵사라기보다는 하루 종일 빵집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라도 좋았다. 빵 냄새는 따뜻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신비한 힘이 있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빵을 좋아하지만, 뇌경색 진단을 받은 후 밀가루 음식은 먹는 게 좋지 않다고 해서 안 먹고 있다. 가능한 음식을 조절하고 몸에 좋은 재료들을 골라 먹고 있다. 주로 야채, 견과류, 과일, 잡곡류이고 도저히 빵이 먹고 싶을 때에는 통밀빵, 잡곡으로 만든 빵을 몇 조각 먹는다.

그마저도 웬만하면 먹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추억 속의 <밀림 제과점> 사장님은 어디서 무얼 하고 계실까, 돌아가셨을까 아니면 여전히 일하시고 계실까. 어쩌면 그때 아저씨의 나이는 지금의 내 나이쯤이 아니었을까.

은퇴하셨을까.

빵으로 나의 유년 시절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셨던 그분은 지금까지도 내게 행복바이러스를 전해주시고 있다.


누군가에 대한 기억, 무엇인가에 대한 추억, 언젠가의 생각은 사람에게 용기를 주고 웃음을 주고, 꿈을 갖도록 만드는 것 같다.

빵을 먹으며 제빵사의 꿈을 키우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고, 사업을 구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나는 겸허한 마음으로 빵을 대할 때마다 언제든 행복해질 수 있음을 떠올린다. 그래서 행복은 어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내 옆에 , 나와 함께 있다는 것 아닐까.


어려운 시기일수록 일상의 행복한 일들을 자주 떠올리고 기억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변해가는 세상에서 소중한 행복을 지키는 하나의 방법이 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불란서 제과점>과 <밀림 제과점>은 아마도 내 기억 속에 영원히 있을 것이다. 육교를 사이에 두고.



com.daumkakao.android.brunchapp_20200302223707_0_crop.jpeg 빵을 먹으면 행복해서 하늘을 날 것 같아요. by 아인잠's gi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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