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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히 글을 쓰기 위한 노력 루틴

by 아인잠

https://brunch.co.kr/@uprayer/352


며칠 전, 3월 12일 오후에 도착한 브런치 알람을 통해서 내가 쓴 글이 다음날 소개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고칠까 하다가 그대로 두었다. 얼마나 고민했는지 모른다. 괜히 무섭고 떨리기도 했다.

내 글에 부적절한 표현은 없을까. 더 나은 표현은 없을까. 두근대고 걱정되는 마음도 일렁였지만 그래도 그냥 둔 것은 브런치에 대한 신뢰였다.

어련히 알아서 판단하셨을까 생각하고 나는 게으름 뒤에 숨어서 이 행운의 기회를 감사하게 받기로 했다.


쓰카모토 료의 <모닝 루틴>이라는 책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이른 아침 골프 연습장에는 어르신들이 많다. 그분들은 나보다 훨씬 능숙하다. 내 공은 멀리 날리려는 욕심 때문인지 힘이 많이 들어가 있어 종종 코스를 벗어난다. 그런데 옆에서 연습하는 분들을 보면 힘도 주지 않고 가볍게 원하는 방향으로 공을 날린다.

생각해보니 힘을 많이 주면 순간적인 힘을 발휘할 수는 있지만, 빠지는 공이 많고 오래 할 수도 없다. 적당히 어깨에 힘을 빼야 시야도 넓어지고 착실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나아가는 쪽이 최종적으로 목적지에 먼저 다다를 것이다. 아침 골프는 뭐든 단번에 해치우려는 나에게 새로운 관점을 가져다준 아주 큰 수확이었다."

나는 이 말을 글쓰기에 적용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골프처럼 글쓰기도 잔뜩 힘을 준 글은 읽기에도 힘이 드는 경우가 많다. 마음 편하게 쓰는 글이 읽기에도 편안하다고 출판사 에디터님께 들은 적이 있다. 공을 멀리 날리려는 욕심으로 힘을 많이 줘서 공을 친다면 순간적인 힘을 발휘할 수는 있겠지만, 오래 즐기면서 하기란 힘든 일일 것이다.

적당히 어깨에 힘을 빼야 시야도 넓어지고 착실하게 꾸준히 쓸 수 있는 것은 글도 그렇다.

최종적으로 책을 낸다는 목적지를 떠올린다면, 글쓰기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는 경험이 필요할 듯하다.

공이 내 맘대로 되지 않듯이 글도 내 맘대로 써지지 않을 때가 많다. 여기저기 빠지기도 하고, 글을 쓰려는 의도와 달리 전혀 다른 방향으로 써질 때도 있다.

마음은 헤밍웨이라도 몸이 헤매는 이가 되어서 길을 헤매다가 글의 방향을 잃고 만다. 애초에 글을 왜 쓰려고 하는 것인지도 먼저 점검해보면 좋겠다. 순수한 의도로 다가갈 때 글도 제 모습을 보여줄 것 같으니 말이다.


<모닝 루틴>의 내용 중 또 다른 부분을 보면 자신감에 대해서도 표현해두었는데 사람은 행동에서 얻은 성과가 자신의 기대와 일치하면 자신감이 생긴다고 한다. 즉 자신감을 키우려면 자신을 컨트롤할 수 있는 체험을 많이 쌓아서 자신의 뜻대로 컨트롤할 수 있다는 감각을 갖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가리켜 ‘감각의 축적이 자신감을 키운다’고 말한다.

글을 써서 공감하는 분들이 생기고 더 많은 분들이 볼 수 있도록 공유가 된다면, 글 쓰는 이에게 그만한 좋은 경험이 없다. 나의 글이 사람들에게 통한다는 공감의 힘은 계속해서 글을 써나갈 수 있는 자신감을 주고 글쓰기 동력이 된다.

이번 경험을 통해서 또 다른 독자님들도 많이 알게 되고, 구독해주시는 분들도 늘어났지만, 한편으로는 더욱 무거운 책임감으로, 한편으로는 가벼운 자유로움으로 글을 써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유가 된다는 것은 누군가를 만나고 새로운 일이 시작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포함하는 것이다.


브런치를 통해 이번에 알게 된 독자님께서 흥미로운 말씀을 해주셨다.

"지면을 할애한 작가님과 아이들 이야기가 더 제게 폭발력 있게 다가온 건 어떤 연유일까요?

제 이야기 같아서일까요? (그건 아니에요. 저는 그러지 못했어요.)

제 엄마와 세 아이들 이야기 같아서일까요? (그것도 아니에요. 제 엄마는 그런 분이 아니었어요.)

빙산의 일각만 보았을지라도 당신의 '삶에 대한 용기와 노력'에 어안이 벙벙한 채로 있어요."


누군가는 나의 글 속에 감춰진 용기와 노력을 봐주셨다.


"제가 관종 기질도 없고, 오히려 대인기피가 있는데요. 조금이라도 '아인잠'이 세상으로 더 힘차게 나오는데 즈려 밟힐 꽃잎 뿌려주는 사람이면 좋겠네요. 처음에 독어를 모르는 저는 ' 아인잠 ' (아이가 잘 때 글을 쓰는 작가?) 이런 해석을 했어요. 저도 아이 잘 때 일을 하려고 아이가 자기를 많이 바랬던 엄마였거든요"


비록 나의 필명인 '아인잠'이 아이가 잘 때 글 쓰는 작가인가 오해하시기도 했다지만, 그런 웃음 띈 어조 뒤에 그분이 보여주신 나에 대한 배려는 놀라웠다. 나보다 더 나의 삶에 대해 생각해주시는 분을 만난 느낌.

내가 태어난 해에 '국민학교'를 입학하셨다는 그분을 통해 나의 삶을 다시금 생각해본다.

나는 누군가에 그런 존재였던가.


"시장 가다가 이게 웬일?" 아인잠's girl.

>>> 좋은 기회와 만남의 복을 주신 브런치에 감사,

부족함 투성이인 저의 글들을 읽어봐 주신 독자님들께 감사합니다. -아인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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