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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결핍이 어때서...

살아가기 딱 좋은 나인데~

by 아인잠

셋째를 임신했을때 만삭이었다.

한 여름 얼마나 더운 오후였는지, 마침 아파트에 수박장사가 수박을 팔고 있었다. 다른 아기 엄마들은 너도 나도 수박 한덩어리씩 사서 가는데 나는 수박을 살 돈이 없었다.

한 덩어리에 15,000원 밖에 안하는 수박을 살 수가 없어서 놀이터에서 땀이 범벅이 된 아이들의 손을 붙들고 그만 집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런데 마침 이웃에 사는 아기엄마가 나를 보고는 불러세웠다.

수박이 너무 맛있게 보이는데 같이 사러가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나는 집에 과일이 좀 많아서 수박은 다음에 사려한다고 둘러 대답했으나, 아기 엄마는 잠시만 기다리고 있으라며 수박을 사올테니 집에 같이 가자는 말로 나를 붙들었다.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보며 잠시 기다리고 있는데 아기 엄마가 나에게 반으로 쪼개진 수박 반 덩어리를 내미는 것이었다. 수박이 너~무 커서 집에 혼자서 가져갈수도 없고, 다 먹을 사람도 없으니 반으로 나눠먹고싶어서 사온 것이라고 했다. 극구 사양하였지만,기어이 주시는 수박을 받아들고 집에 왔다.

저녁을 먹고 아이들과 함께 수박을 나눠먹는데 그렇게 달콤하고 맛있는 수박은 지금 생각해봐도 내 평생 처음이었다.

그 아기엄마나 나나, 출산예정일이 1주일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서 임신기간 내내 입덧도 같이 하고 힘든 것도같이 견디며 지내와서 그런지, 수박을 먹고싶은 내 마음도 알아차렸던 것 같다.

함께 힘든 일을 겪고 같은 입장에 처한 사람은 같은 상황에 놓인 사람의 마음을 더 이해하고 잘 알아채는 부분이 있다.

수박을 볼 때마다 그 아기엄마가 생각이 나고 항상 고마운 마음이 떠오른다. 살아가는 내내 고맙다. 누군가에게 그렇게 호의를 베풀기란 또 얼마나 정성이 필요한 일인가.


결핍은 불편할 때도 있지만,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알게 되는 경험이 된다.

채워졌을 때 기쁨을 알고 행복도 느끼게 된다.

지금도 여전히 결핍이 있다. 컴퓨터, 깨진 핸드폰, 항상 바닥이 보이는 통장, 뭐만 하려면 꼭 하나씩 없는 재료들.

그래도 기쁨이 있다. 이 와중에도 이만큼 살아가고 살아내고 있다는 사실이 자신감이 생기고 흥미롭다.

주변 사람들의 배려와 이해도 나의 든든한 지원군이며, 생각지않게 여러 방향에서 다가오는 좋은 계기들은 내가 앞으로 해나갈 일들에 대해 희망을 갖게 하기도 한다.


아이에게 크고 작은 시련을 주는 바람은 아이의 독립심을 키우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한다.

(참조: <참조 틀 밖에서 놀게하라>,김경희,포르체)

다르게도 생각하면, 사람에게 일어나는 크고 작은 시련은 독립심을 키우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겠다.

사람이 자라면서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살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어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은 완전하지도, 완벽하지도 않은 삶이다.

그 누구도 동화 속 주인공처럼 아무런 문제도 없이 축복 속에서 평생을 행복하게 살수는 없을 것이다.

하버드 정신의학과 교수인 로버트 콜스는 부유한 어린이들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특징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했다.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다 얻을 수 있다는 '특권의식'을 갖고있다는 것이다.

텍사스 주 농림부 장관을 지낸바 있는 짐 하이타워는 유명한 억만장자 정치인을 가리켜 이렇게 묘사한 바 있다.

"그는 처음부터 3루에서 시작했으면서 자신이 3루타를 친 줄 안다."


풍족하고 여유있는 삶에서도 충분히 가능성과 자양분을 얻을 수도 있지만, 특권의식이 불러오는 지나친 관행들은 사회를 어지럽히는 일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많이 가진 경우이든 결핍이 있든 어떤 경우에도 나의 여건에서 좋은 열매를 영글게 할 수 있으려면 토양이 되는 내 삶의 조건들을 똑바로 인지하고 잘 이용할 수 있어야한다.


사람이 고통을 당할 때 흔히 가질 수 있는 "신은 우리에게 감당못할 시련을 주시지않는다, 이건 하나의 시험일거야" 하는 생각. 그러나 이 생각은 결코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말이 아니다.

책 <그동안 당신만 몰랐던 스마트한 실수들> 에서는 이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자신은 신의 '시험'에 통과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오히려 죄책감을 느낄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넌 무엇이든 될 수 있어'와 같은 말 또한 문제가 있다. 긍정적인 사고만으로 스스로 용기를 북돋우는 것은 본질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긍정적인 생각이 도를 넘어버린 결과에서 비롯된 생각이다.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평생에 걸쳐 그것을 성취의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을 것이다.


결핍을 모르고 자라는 아이는 고마움을 알기 힘들고 무언가를 할 의욕이 잘 생기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어떤 일에 몰입하기도 어렵고 즐거움을 덜 느끼는 경향이 있다. 모든 것이 다 주어진 환경에서는 아이가 결핍에서 오는 간절함을 모르고 자라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를 창의적인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때때로 아이에게 결핍을 안겨줄 필요가 있다. 아이는 결핍을 견디며 사소한 것에도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결핍이 충족되었을때 행복을 느낀다. 이렇게 아이는 스스로 무언가를 쟁취해가는 독립적인 태도를 기를 수 있다.
- < 틀 밖에서 놀게하라>,김경희,포르체 129p


이 말을 아이에게도 적용할 수 있지만 나는 나에게 먼저 적용하려 한다.

결핍을 모르고 자라는 나는 고마움을 알기 힘들고 무언가를 할 의욕이 잘 생기지 않는다.

어떤 일에 몰입하기도 어렵고 즐거움을 덜 느끼는 경향이 있다.

결핍에서 오는 간절함을 모르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창의적인 내가 되기 위해서는 때때로 결핍이 필요하다.

나는 결핍을 견디며 사소한 것에도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결핍이 충족되었을 때 행복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나는 스스로 무언가를 쟁취해가는 독립적인 태도로 살아갈 것이다.

아이에게 독립심을 바란다면 내가 먼저 독립적인 사람이 되어야하고, 아이가 창의적이길 원한다면 내가 먼저 창의적인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나의 모습을 통해서 아이들도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태도를 배울 수 있게 될 것이므로.

노력하면 할 수 있다.

노력하면 될 수 있다.


내 결핍이 어때서

살아가기 딱 좋은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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