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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잠 Apr 28. 2019

색연필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예전에 방송작가로 일할 때 '색연필'을 선물 받은 적이 있었다.

함께 일했던 프로듀서가 해외에 휴가를 꽤 긴 일정으로 다녀오면서 프로그램 스텝들에게 선물을 나눠준 것이었는데, 고심해서 고른 것 같지는 않고 그냥 귀국 비행기 안에서 적당히 고른 느낌이었다. 그래서 나도 적당히 받으려고 했었다.

그런데 선물을 주면서 함께 주던 '말 한마디'로 인해, 나는 그 선물을 정말 특별하게 받아 들었고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기억을 안고 있다. 어찌보면 선물을 주신 분 입장에서는 꽤 잘 고른, 선물다운 선물이 된 셈이다.

흔하디 흔한 색연필이었지만, 흔한 선물을 겸연쩍게 주면서 거기에 얹어서 했던 말로 인해 나는 특별한 선물을 받은 사람이 되었다. 지금까지도 기억하는 것을 보면 더욱.


"색연필의 다양한 색처럼, 색연필로 그릴 수 있는 수많은 그림처럼

색깔 있는 글, 따뜻한 글, 좋은 글, 아름다운 글을 많이 써"


그 이후 색연필만 보면 그때 그 마음이 생각이 난다.

나는 그렇게 살아왔는가.

색깔 있는 글, 따뜻한 글, 좋은 글, 아름다운 글을 많이 쓰면서...


대답을 떳떳하게 할 수 없는 것으로 보아, 그렇게 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다시금 마음을 다잡으며, 색연필처럼 그렇게 따뜻한 색감으로 아름다운 삶의 궤도를 그리며, 선한 영향을 끼치며 살아가야겠다는 마음을 다시 가져본다.



영화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에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온다.

"때로는 당신 걱정하는 게 꼭 내 직업 같아......"


그 영화를 보고 정확히 9개월 뒤에 지금의 남편을 만나 연애하고 결혼식을 올렸는데 현실은 영화와 같지 않았다. 연애할 때는 걱정 비슷한 것도 잘해주더니, 결혼 후에 남편은 오히려 나를 걱정시키고, 근심하게 했다.

당장 생활비는 어떻게 해야 할지, 혼자서 육아는 어떻게 해야 할지. 양가 어른들에게 자식 노릇 제대로 못하는 이 현실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며 의논하면서 살고 싶었는데, 남편은 도피형이었다. 골치 아픈 일이 생기면 입부터 닫았고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싫어했다. 자꾸만 방문을 닫고 혼자 방 안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더니, 기어이 자기만의 방을 만들어 쓰게 되었다.




영화 <전쟁과 평화> 중에는 내가 좋아하는 대사가 나온다.


"그녀와 춤을 추다니... 봄을 품에 안은 것 같고 라일락 가지나 새끼 고양이를 품에 안은 것 같아.

다음 돌 때 웃으면 내 아내가 될 거야..."

멜 페러가 오드리 헵번이 춤추는 모습을 보며... 그는 사랑에 빠진 남자가 얼마나 아름다운 시인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영화에는 이런 멋진 장면이 있었고, 힘들었던 내 결혼생활 속에서도 행복한 장면은 있었다.



결혼 1년 후까지는 그래도 신혼에 속했던 것 같다.

당시 일기장을 뒤져 보면, 이런 날이 있었다.


'어떤 문제건, 내가 궁금한 것, 모르는 것을 물어보면 남편은 곧잘 차를 예로 들어 설명을 잘해준다. 한참 설명하다 남편이 하는 말...

"당신과 나의 마음의 거리는? 우리는 0km야..."

나는 내가 웃음이 많은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결혼 후엔 이런 생각이 든다. 

남편 때문에 웃는다고, 웃을 일이 참 많다고...'



확실히 신혼이었나 보다. 남편이 남편 입으로 우리 사이의 거리가 '0km'라는 말을 어마 무시하게 하다니!

자신이 그런 말을 했다는 걸 알면 그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지금 우리 사이의 거리는 1만 km, 100만 km, 1000만 km라고 해도 될 만큼 멀어진 관계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는 어쩌면 더 멀게 느끼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조차 대화가 불가능한 관계니까.

굳이 묻고 싶지도 않고.


말을 해야만 아는 것은 아니다. 부부쯤 되면, 얼토당토않는 방향으로 '이심전심'이 될 때가 있다.

굳이 묻고 싶지 않은 관계. 굳이 말하고 싶지 않은 관계. 굳이 생각하고 싶지 않은 관계.



그에게 색연필을 주면서 이렇게 말해볼까.

"색연필의 다양한 색처럼, 색연필로 그릴 수 있는 수많은 그림처럼 우리 이제 아름답고 따뜻한 결혼생활을 그려나가 보면 어때요? 서로 감동을 주고, 행복을 주는 따스한 마음을 표현하면 어때요?"


그러나 색연필의 뾰족한 부분이 마음에 걸린다. 우린 서로를 또 뾰족한 말로 찌르고, 서로의 마음에 무례하게 선을 확 그어버리고 가게 될지 모른다. 

그런데 우린 애초에 어울리지 않는 색이었던 걸까? 결혼생활을 그림으로 상상해볼 때 엉망진창 되어버린 색의 조합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아이가 색칠을 해놓고 맘에 들지 않는다며 확 찢어버린 적이 있다. 자기 분에 못 이겨 찢어버리고는 눈물을 흘렸다.

그때 이렇게 말해주었다. 다시 테이프로 붙여주면서, "아직 색칠하지 않은 공간도 많이 있으니, 우선 거기서부터 다시 칠해보는 건 어때?"

그리고 색을 칠해나가기 시작했다. 이번엔 꼼꼼하고 정성스럽게, 다시 망쳐버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집중해서 그림 선을 따라서 열심히 색칠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어느새 눈 앞에는 새롭게 완성된 좋은 그림 하나가 놓여있었다.

우린 함께 기뻐하며 박수를 쳤고, 벽에 붙여서 전시를 했다.

오히려 볼 때마다 뿌듯하고 기분 좋은 그림이 되었고, 그렇게 온 가족의 사랑과 관심을 받으며 오랫동안 멋진 그림으로 감동을 주었다.


나와 아이들 사이에는 이런 추억이 많다. 뭔가 일이 잘 되지 않을 때 다시 회복시키기 위해 함께 노력해왔던 과정.


막내 아이가 4살 때의 일이다.

저녁 먹고 책상에 앉아 이래 저래 그려보더니, 뭘 그리려고 했는지는 모르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지 울기 직전의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그래서 옆에 다가가 말했다.

"뭘 그리고 싶었던 거야?"

엄마의 물음에 입을 꾹 닫아버린 막내. 

영 기분이 좋아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림을 가져다가 이런저런 방향으로 한번 돌려서 보았는데, 의외의 느낌이 들었다. 뭔가 완성해볼 수 있는 그림이었다. 




그래서 아이의 초안을 바탕으로, 엄마인 내가 앉아서 떠오르는 대로 그려주었다.

완성된 그림을 보고 아이가 지었던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나는 세상에서 최고로 멋진 엄마가 되었고, 울기 직전이었던 아이는 이 그림으로 인해서 그 후 1시간 넘게 그대로 앉아서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육아를 통해 내가 알아가고 배워가는 것이 있지만, 육아로 인한 성숙에 비해, 부부관계는 놀랍도록 꽉 막혀있다. 마치 꼼짝없이 갇혀버린 고속도로 위의 자동차가 된 것 같이... 차선 변경도 못하고, 후진도 못하고 역주행도 안되고  오직 직진만이 가능한 상황인데 막혀서 꼼짝할 수 없는 그 답답함이란...


색연필을 쓰다가 닳으면 깎아서 다시 쓰는 것처럼, 실패한 줄 알았던 그림을 다시 살려내는 것처럼, 

결혼생활도 어떤 식으로든 해결해나갔으면 좋겠다. 어떤 노력을 하면 좋을지...

오늘은 곰곰이 생각해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날이다. 아이의 색연필을 보면서 문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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