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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잠의 다시쓰는 육아일기
라떼는 말이야~
by
아인잠
Jun 9. 2020
라떼는 말이야~
집에 택배가 막 오거나 그런 적이 없었어
박스를 구하려면 마트 하는 친구 집으로 뛰어갔지.
너희처럼 이렇게 박스로 뭔가를 만들고 놀면서 크진 않았어.
라떼는 말이야~
물감은 학교 미술시간에만 쓰는 것이었어.
집에서 내키는 데로 꺼내 쓰거나 종이, 색지, 색종이, 풀, 가위, 물감 이렇게 넉넉한 적이 없었어.
너희처럼 이렇게 맘먹으면 뭐든지 만들 수 있었던 적은 없었어.
라떼는 말이야~
잠자는 시간까지 이렇게 즐거웠던 적이 있었나 모르겠어.
그냥 조용히 있다 잤던 것 같은데?
잠자기 직전까지 신나게 노는 놀이? 정말 부럽구먼.
라떼는 말이야.
사춘기도 모르게 그냥 지나갔어.
온다 온다 온다 하면서 표시 낸 적도 없고
책상 좀 치우면 안 되나?
옷장 아래엔 옷이 왜 자꾸 쌓이지?
밥 아까 먹고 또 먹어?
잠은 아까 자고 또 자고?
혹시 중학교는 숙제 같은 건 안 내주나? 어째 초등학교 때보다 더 시간이 많아?
오늘 숙제 뭐 없나?
(글쎄? 아, 수학 숙제 하나 있는 것 같다)
있는 것 같아? 하고 놀면 안될까?
(내가 알아서 할거야)
응, 알아서 한다고 했지 참...
(타임머신이 있다면 아기때로 가서 실컷 놀고 자고 먹고 하고 싶어)
아기때부터 실컷 놀고 먹고 자고 하면서 큰 것 같긴 한데?
(아참, 내가 그렇지 참..)
지금 다른 아이들은 학원가서 공부할 시간인데, 우리도 뭐라도 하면 안될까 좀?
아참, 알아서 한다고 했지...
타임머신 타고 뭐할까 연구할 시간에 숙제하고 놀면 안될까?
아니, 그렇다고... 엄마 아무 말 안 했어.
고기 구워 줄까?
요즘 내가 허공에 대고 혼자서 하는 말이 많아졌다.
이제 입은 닫고 지갑을 열어야 하는 시기가 온 것 같다.
입은 닫고, 조용히 큰아이 용돈카드에 3만원을 이체해놓았다.
아이에게는 한달에 '만원씩만' 카드에 넣어놓겠다고 했다. 급하고 필요할때만 쓰라고 했다.
그래서 딸은 한 달 용돈이 만원인 줄 안다.
하지만 나는 딸의 카드에 항상 3만원 아래로 비어있지 않도록 채워놓고 있다.
아이스크림 사먹는데 900원을 써서 29,100원이 남아도, 다시 900원을 이체해서 3만원이 되도록 채워넣어준다. 그러고 싶다.
아기때 요구르트 하나 제대로 못사먹이고 키워서 그런가,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여차하면 사먹으라고 말해주려고, 통장에 3만원을 넣어 대기 중이다.
그런데 아직은 용돈 달라는 말을 하지 않고 있다. 지금 딸이 누리는 가장 큰 호사는 학교 마치고 오면서 집 앞에서 900원하는 아이스크림을 하나 먹으면서 집으로 오는 것이다.
그래서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딸의 손에는 항상 아이스크림 막대 하나가 들려있다.
그것은 딸이 누리는 호사이기도 하지만, 내가 누리는 호사이기도 하다.
아이가 쓸 용돈카드를 항상 채워주고 싶은 마음.
어릴때 한여름 땡볕에도 아이스크림 하나 사달라고 하지 않았던 아이가 내내 마음에 밟혀서
나는 이런 방식으로 나의 호사를 누리고 있다.
"이제 중 1입니다" by 아인잠's gi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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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스트
내 삶에 알맞은 걸음으로
저자
아인잠은 독일어로 외롭다는 뜻으로 '고독','자기 자신과 하나되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들어있다. 자기안에서 평온해지는 사람. 외로움과 일상의 감정들을 글로 표현하는 아인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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