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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잠 Jun 17. 2020

내가 울면서 쓰지 않으면 남도 울면서 읽어주지 않는다.

<지구 어디쯤, 처음 만난 식탁>을 읽고 4.

도종환 시인이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를 출간한 직후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국어선생님이 가르쳐 주시길, 편지를 쓸 때는 맨 앞에 먼저 계절인사를 쓰고 상대방 안부를 묻고 내 안부를 이야기하는 순서로 써야 한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순서 그대로 계절인사 몇 줄을 쓰기 위해서 주위를 유심히 관찰하는 버릇을 갖게 된 거예요.     

지금 나뭇잎이 어떻게 흔들리는지, 날씨가 어떤지, 별이 떴는지, 바람은 어떻게 부는지를 유심히 관찰하는 습관이 쌓여서 그 가난하고 어려운 시절에 편지를 쓴 것이 나중에 글쓰는 사람이 되는 것에 중요한 토대가 될 줄 그 때는 몰랐죠. 울면서 보고 싶어서 편지 쓰고 또 쓰고 아주 정성을 들여서 썼던 중학교 시절이 있었죠."


 글을 가르쳐주었던 선생님의 말이 시인의 가슴 속에 남아있었다. 아마도 매순간 편지를 쓸때, 시인은 그런 방식으로 글을 쓰지 않았을까. 시인의 편지 속에서 어떤 별이 뜨고 어떤 구름이 지났는지, 어떤 바람이 불고 나뭇잎은 어떻게 흔들렸는지 궁금하다.    

시는 아름답다. 시인. '시인'을 말할때 조차 한 편의 시처럼 느껴진다.

시인의 시는 가슴 깊숙이 파고들어와 심장과 함께 뛰고 흐르는 피와 함께 흘러 몸을 데운다.

선생님의 말씀 이후에 아마도 주위를 더 유심히 관찰하는 버릇을 갖게 되었으리라.

어쩌면 선생님의 말씀, 그 순간이 한 명의 시인을 만든 시작이었는지 모르겠다.

될 성 부른 시인에 물주기. 햇볕을 쪼이고 바람을 쐬이고 단단하게 흙을 눌러덮어주셨을 무수한 시간들에서 시인의 싹은 자라났을 것이다.


시인은 훗날 말했다. 나중에 '글쓰는 사람이 되어서 생각해보니까, 내가 울면서 쓰지 않은 편지는, 내가 울면서 쓰지 않은 글은 남도 울면서 읽어주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문학이 이런 것이구나.’하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지구 어디쯤, 처음 만난 식탁>에서도 잊지못할 스승과의 대화를 볼 수 있다.

그것은 인사로 시작한다.


"입이 건강하길 기원합니다. 선생님."


저자가 우연히 만난, 잊지못할 뎅베제에게 했던 인사말이다.

'뎅베제는 수천 년 동안 바람처럼 각지를 떠돌아다녔다. 때로는 가수, 때로는 교사로 이야기를 통해 한 세대 한 세대 쿠르드 사람들을 가르치고 인도했다.'

뎅베제를 통해 무언가를 깨달은 사람들은 마음을 가다듬고, 이렇게 인사한다.

(몸을 굽혀 손에 키스를 하고는 그 손을 자기 볼에 갔다 댄다. 이는 웃어른에게 큰 절을 하는 의미라 한다. 주로 결혼식이나 축제에서도 볼 수 있다.)

"입이 건강하길 기원합니다. 선생님."


'노인은 감옥에 있을 때 오랫동안 제대로 식사를 하지 못해 영양실조가 와서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때 배를 채우려고 대변을 먹었다. 출소 후에는 그 후유증으로 치아가 반 이상이나 빠져버렸다.'

노인은 자리를 떠나며 말을 남겼다.

'신념을 지켜 나가면서 자네의 생을 살게나. 그러면 언젠가 어디선가 들어보고 말한 적 있는 이야기가 현실이 될 걸세.'


뎅베제가 목숨을 걸고 이야기를 전하며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신념, 그 신념을 우리에게도 지키라고 말하고 있다. 나의 생을 살아가라. 언젠가 그 신념이 현실이 되어 돌아올 것이라고 한다.

신념을 지키고, 나의 생을 사는 방법은 내겐 '글쓰기'이다.

글쓰기는 글을 쓰는 작가뿐만 아니라, 사람이 자신의 신념을 지켜나가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장치란 생각이 든다.

노인의 삶을 들으며 눈물이 핑 돌았던 이유, 뎅베제의 신념이 눈물을 자아낸 이유.

신념은 영혼의 목숨이다. 신념은 몸에 돌고도는 피와 같다.

신념은 양보할수도, 버려서도 안되는 나의 유일함이고 자신이다.


입이 건강하길 기원한다는 인사는 신념을 지켜 살아남으라는 말이 아닐까.

끝까지 살아서 삶에 대해 이야기 하고 전하라는 사명이 아닐까.

후대에 남겨야할 유산은 선대의 이야기가 아닐까.

내가 남기고자 하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나의 신념과 고민을 글로 풀어가면서 이야기 하는 것, 그것이 글쓰기의 즐거움이자 의무가 아닐까.

그래서 글쓰기가 그토록 어렵게 느껴지는 것인지...

그럼에도 써야할 이유. 글쓰기는 신념이다.


'신념을 지켜 나가면서 자네의 생을 살게나. 그러면 언젠가 어디선가 들어보고 말한 적 있는 이야기가 현실이 될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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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어디쯤, 처음 만난 식탁>을 읽고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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