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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잠 Jun 29. 2020

주요섭 작가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읽고

중 1 딸과 엄마의 책으로 대화하기

제목 :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읽고


날짜 : 2020.06.27. 토


오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읽었는데 내가 이해를 못한 건지 뭔가 여러 가지의 시간적 배경을 왔다 갔다 한?

한마디로 타임머신을 타고 여러 곳을 돌아다닌 느낌이 났다.

그래도 읽고 뭔가, 느낀 점을 질문과 혼합시켜서 써보기로 했다.


1. 내용 중에 보면 죽은 아버지가 죽기 전에 남은 가족이 먹고살 것을 남겨 놓았다는데, 아무래도 진짜 엄청 많이 남겨 놓은 모양이다. 글만 보면 잘 모르겠지만 내가 읽은 책에서는 그림 중에 문 뒤로 기와 담이 보인다.

그 말인즉슨, 이 집은 기와집이란 말일 수도 있다. 게다가 기와집은 주로 높은 신분 정도 되는 사람들이 사용하던 집이었으니 주인공이 관리였을 수도 있다. 게다가 피아노가 존재하고 사람들의 옷차림을 보면 어쩌면 일제 강점기나 그 전일수도 있다. 하지만 이 추리는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이므로 틀릴 수도 있다.


2. 이 등장인물의 관계가 궁금하다. 내가 이해한 내용대로 관계도를 그려보면 이렇게 되는 것 같다.

여기에서 엄마와 외삼촌의 관계가 좋다고 표현된 이유는 뭔가, 서로를 걱정하는 듯한? 그런 분위기인 것 같아서다. 물론 이야기에서 서로가 서로의 편지 등에 얼굴에 핏기가 사라졌다 말아졌다 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왜냐하면 편지의 내용을 모르니까) 진짜로 서로를 미워한다면 누군가가 누군가를 골 먹이려고 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3. '나'는 눈치가 있는 걸까 없는 걸까? + 결말의 이유?

끝으로, 결말 부분을 보면 어머니가 거짓말을 하는 장면을 보며 '나'가 인형에게 주인공인 '나'가 속삭이는 장면이 있는데, 그래도 다 들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어머니는 왜 갑자기 달걀을 사지 않는다고 한 걸까?



엄마의 참견 >>>

엄마도 중 1 때 이 소설을 읽었었는데 말이야, 그 후로도 고등학교, 대학교, 성인이 되어서까지 몇 번 읽을 기회가 있었어. 읽을 때마다 느꼈는데,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화자(말하는 이)가 6살 난 옥희여서, 이야기가 귀엽고 재미있었어. 6살 아이의 눈에 비치는 대로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때론 오해하기도, 때론 어설프기도, 때론 순수하기도 해서 웃음이 났어. 그때에도 엄마는 '나중에 내 딸과 이 책을 읽으며 이야기를 나눠보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었는데, 드디어 꿈이 이뤄졌구나... 이런 날이 왔구나... 엄마는 기뻐.

몇 가지 질문에 대해, 엄마가 대답을 해본다면...


1. 옥희의 아버지는 학교 교사였어.

남편이 죽자 '옥희'라는 딸을 낳아 기르는 젊은 엄마의 집에, 남편의 옛 친구가 하숙을 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야. 하숙비를 받으면서 엄마는 옥희를 키우면서 생활하기에 도움이 되었을 것인데,

엄마와 아저씨 사이에 따뜻한 감정이 생겨나기 시작해.

아저씨가 옥희에게 어머니에 대해 이것저것 묻는 장면이 나오는데, 옥희를 귀여워하는 마음이기도 했지만, 엄마에 대한 관심을 표현한 것이야.

옥희도 아저씨를 보면서 “아저씨가 아빠였으면 좋겠다.”라든가, “이 꽃 아저씨가 엄마 갖다 주라고 줬어”라는 말을 해서 엄마의 마음을 '심쿵'하게 만들어.



2. 사랑은 편지를 타고~

편지를 읽을 때에 얼굴이 핏기가 사라졌다 말아졌다 하는 이유는 감정이 생겼다가, 그 감정을 느꼈다가 하는 과정에서 얼굴에 드러난 것이라 할 수 있지. 좋아하는 사람의 편지를 받으면 얼굴이 발개지기도 하고 심장이 쿵쿵거리기도 하고, 두근거리고 설레는 마음이 얼굴에 드러나.

소설은 1930대 상황이기 때문에 지금보다는 감정을 드러내는 데 훨씬 조심스럽고, 심지어 욕을 먹을 수도 있는 상황이어서 다른 사람이 알아차리지 않게 노력했어. 더구나 남편이 죽고 홀로 아이를 키우는 여자가 다시 새로운 사람을 사랑하고 만나고 결혼하게 되는 일은 거의 상상할 수 없는 입장이었고, 그런 당시 분위기로 인해서 이야기는 그저 인물의 감정 묘사로 진행돼.

그 매개체가 주로 편지이거나, 아저씨와 엄마 사이를 오가며 말을 전하는 옥희를 통해서.

전달을 하려면 제대로 하지, 6살 아이가 얼마나 제대로 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실제 일어날법한 이야기이기도 한 것 같아. 마치 네가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해서 이런저런 질문을 떠올리는 것처럼, 옥희도 많은 질문을 떠올리는 거야. 재미있지?



3. 옥희는 '눈치'가 없었다.

아저씨가 달걀을 좋아한다는 말에, 엄마는 달걀을 삶아서 매번 아저씨의 밥상에 올려.

그러다가 아저씨가 짐을 싸서 떠나자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달걀을 모두 삶아 아저씨에게 전하라고 해.

그리고 어머니는 '옥희와 함께 언덕에 올라가, 아저씨가 탄 기차가 사라질 때까지 하염없이' 바라봐.

산에서 내려온 후 어머니는 달걀 아주머니가 오자, '인젠 우리 달걀 안 사요. 달걀 먹는 이가 없어요.'라고 해.

이 말은 이제 더 이상 달걀을 삶아서 줄 대상이 사라졌음을 의미하고, 그것은 아저씨와의 이별을 뜻하는 것이지.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가 결혼해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하고 끝나는 해피엔딩이었으면 어땠을까?

이 작품이 그렇게 끝나지 않았기에 여운이 오래 남는 건 아닐까 생각도 들어.

결혼해서 '삶은 계란'을 계속 먹으면서 살았으면 지겨웠을까? 더 맛있었을까? 생각도 해보면서

우리 옥희가 엄마 나이가 되면, 엄마의 마음이 좀 더 알아질 것 같고

언젠가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가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때는 함께 삶은 계란을 나눠먹어도 좋겠다 생각하면서~

소설이 끝난 이후에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도, 옥희도 모두 행복했습니다'로 기억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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