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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잠 Jun 29. 2020

나도향 작가의 <벙어리 삼룡이>를 읽고

중 1 딸과 엄마의 책으로 대화하기

제목 : <벙어리 삼룡이>를 읽고


날짜 : 2020. 06. 28. 일


오늘은 <벙어리 삼룡이>를 읽었는데, 뭔가 이 책은, 음... 뭔가 파트들이 뒤로 갈수록 결말이 점점 이상해지는 느낌이다. 그러니까, 이 소설의 이야기를 파트에 따라 표현해 본다면 이런 느낌?


part 1 : 이야기를 직유법을 이용해 표현

part 2 : 약간의 공백 + 느낌

part 3 : 등장인물의 감정을 알 수 있음

park 4 : 등장인물들의 행동을 볼 수 있음

part 5 : 주인공의 생각이 표현됨

part 6 : 영문을 모르겠음. ㅠㅠ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마치 게임 1단계를 클리어하면 더 높은 난이도의 단계가 나오는 것 같다. 아 맞다!

갑자기 드는 생각인데, 이 책은 작가에게 '글 쓸 때 초등학생도 이해할 난이도로 해주세요' 요런 식으로 부탁한 건가? 그리고 이 작품에서 느낀 점은 확실히 '노트르담의 꼽추'를 닮은 것 같다.


이유 :

1. 주인공이 둘 다 몸이 불편한 장애가 있다.

2. 비운의 여주인공이 등장한다.

3. 이 두 사람 곁에는 악역이 존재한다.

이런 이유로 <벙어리 삼룡이>와 <노트르담의 꼽추>가 닮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엄마의 참견 >>>

지금까지 읽어왔던 소설에 비해서, 이 작품은 비교적 이해하기 쉽게 느껴질 정도로 읽혔을 거야.

하지만, 전개되는 내용과 주인공 '삼룡이'의 마음 변화, 행동에 대해서는 이해하기 어려웠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우선 이 소설이 쉽게 느껴진 이유는, 다른 소설과 달리 주요 인물들이 친절하게 소개되어 있어.


#삼룡이

'그 집에는 삼룡(三龍)이라는 벙어리 하인 하나가 있으니 키가 본시 크지 못하여 땅딸보로 되었고 고개가 빼지 못하여 몸뚱이에 대강이를 갖다가 붙인 것 같다. 거기다가 얼굴이 몹시 얽고 입이 크다. (중략) 동네 사람들이 부르기를 삼룡이라고 부르는 법이 없고 언제든지 ‘벙어리’ ‘벙어리’라고 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앵모’ ‘앵모’ 한다. 그렇지만 삼룡이는 그 소리를 알지 못한다.'


#주인집 아들

'삼대독자로 내려오는 그 집 아들이 있다. 나이는 열일곱 살이나 아직 열네 살도 되어 보이지 않고 너무 귀엽게 기르기 때문에 누구에게든지 버릇이 없고 어리광을 부리며 사람에게나 짐승에게 잔인 포악한 짓을 많이 한다. '   

 

#주인집 아들의 색시

'색시는 신랑보다 두 살 위인 열아홉 살이다. (중략) 금지옥엽같이 기른 터이라, 구식 가정에서 배울 것 읽힐 것 못 하는 것이 없고 게다가 또는 인물이라든지 행동거지에 조금도 구김이 있지 아니하다.'



착하디 착하고 순하고, 그저 충성스럽게 열심히 일하는 삼룡이가 주인집 아들이 결혼한 후 유난히 맞이 맞고 피가 나고 살점이 떼어질 정도로 학대당하고 나중에는 집에서 쫓겨나.

주인집 아들과 결혼한 색시(새아씨)가 결혼하자마자 남편에게 매 맞고, 고통스럽게 사는 것을 보면서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한 일이 오해를 받아서 주인집 아들에게 심하게 맞고 혼이 나는 일이 발생해.

삼룡이가 집에서 쫓겨나던 밤에 주인집에 불이 났어. 삼룡은 죽음을 무릅쓰고 불길에 뛰어들어 주인을 구출한 뒤에 다시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서 '새아씨'를 찾아 안고 불길을 피해 지붕 위로 올라가게 돼. 그리고 아씨를 끌어안고 죽음을 맞이해.


"그는 자기의 목숨이 다한 줄 알았을 때, 그 색시를 내려놓을 때는 그는 벌써 목숨이 끊어진 뒤였다. 집은 모조리 타고 벙어리는 색시를 무릎에 뉘고 있었다. 그의 울분은 그 불과 함께 사라졌을는지! 평화롭고 행복스러운 웃음이 그의 입 가장자리에 엷게 나타났을 뿐이다. "   


죽음을 맞이하면서 비로소 입 가장자리에 엷게 행복스러운 웃음이 나타났다니, 알기 어려운 의미일 수도 있지만 문학적 상상력과 표현은 이렇게 독자에게 질문을 던져.

죽음 앞에서 왜 웃었을까.

죽음은 삼룡이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비록 정답을 알 수 없을지라도 '생각'해본다는 것은 우리가 소설을 적극적으로 읽는 방법이고, 기억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이야. 다른 작품들을 이해할 수 있는 훈련이 되기도 하고, <노트르담의 꼽추>와 <벙어리 삼룡이>를 연관시켜 생각해본 것도 아주 좋은 방법이야.

여러 이야기들은 결국 우리 삶과 인간에 대한 질문을 던져. 작가의 표현을 통해서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나누어갈 이야기들이 기대되고, 앞으로도 기다리는 이유야!

엄마는 너와 함께 책을 읽을 수 있음이 너무 감사해. 책을 읽지 않으면, 우리 마음은 '벙어리 삼룡이'처럼, 어쩌면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을 가득 안고 살아가야 하고, 그 고통이 말할 수 없는 고통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때가 오기도 하거든.




*이야기의 발단>>>

https://brunch.co.kr/@uprayer/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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