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영애가 얼마 전 춘사영화제에서 수상하며 소감을 말했다. 자존감이 떨어지고 있었는데 용기가 생긴다는 말이었다.
'이영애' 하면 이름 그 자체로 하나의 브랜드이고 가만히 서있어도 빛나 보이는데, 그런 그녀에게 떨어질 자존감이 어디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었을 수 있다. 하지만 개인이 느끼는 자존감이란 어디까지나 말 그대로 '개인적'이어서, 혼자만의 고뇌와 가득한 생각들이 스스로 너무 무거워서 자존감이 떨어진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화려하고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개인이 느끼는 어려움은 개인만이 아는 것이기에.
내가 이영애라면, ‘오늘 설거지를 했다, 참 힘들었다’라고만 써도 특별하게 느껴질 수 있다.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고, 공감을 일으키고, 그 이면의 어떤 일들이 있었을지, 다음에 이어질 그녀의 글은 무엇일지 기대해볼 수도 있다.
내가 김태희라면, ‘오늘 아이의 웃는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그래서 행복했다’라고 적기만 해도 주목받기가 쉬울 것이다. 아이의 웃음을 떠올리며 행복한 마음을 느껴볼 수도있을 것이다.
유명하지 않고 특별할 것 없는 일상에서도 글은 빛날 수 있다.
글은 행동을 가져오고, 마음을 움직인다. 행복하다고 쓴 글에서 행복을, 즐거웠다고 쓴 글에서 즐거움을, 눈물로 쓴 글에서는 눈물이 핑 도는 것은 그런 이유다.
당신의 이야기.
나는 어떤 이야기를 갖고 있는가, 어떤 이야기를 쓰고 싶은가.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간혹 ‘내가 쓰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쓰는 분들을 만난다.
사실은 그 이야기를 하려던 것이 아니라, 다른 이야기,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는 따로 있는데, 막상 그 이야기를 건드리기가 엄두가 나지 않아, 수박의 겉만 핥게 되는 경우이다.
수박 속을 알차게 긁어모아서 담아야 하는데, 겉을 자꾸만 이리 닦고 저리 닦는 모습과 다름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열심히 읽어야 할 이유, 그분들에게 나는 유일한 ‘독자’이기 때문이다. 애써 쓴 글을 가장 처음 보는 사람이 나이기 때문에, 그 정성과 수줍은 마음이 담긴 글을 나도 소중히 읽는다.
<참을 수 없는 글쓰기의 유혹>을 쓴 브랜드 유랜드 역시 이렇게 말했다.
“만약 내가 방심하여 한 순간이라도 좌절이 그들에게 스며들게 놓아두면 그들은 곧 시들어버린다. 부드러운 식물들, 따라서 나는 그들의 원고를 모두 읽어야 한다.”
그러므로 만약 아이가 글을 써온다면 엄마는 최선을 다해서 읽어야 한다. 아이에겐 최초의, 유일한 독자가 엄마이기 때문이다. 엄마가 볼 것이라 생각하고 아이는 최선을 다해서 쓴다. 만약 그조차 감추려 한다면 아이는 구체적이고, 정작 쓰고 싶은 글을 쓸 수 없다. 어떻게든 잘 가려진 글을 적당히 써서, 쓰고 덮으면 그만인 글을 마지못해 쓰게 된다.
반대로, 글을 쓸 때에는 최초의 독자에게 보여준다는 마음으로 써야 한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보여준다는 마음으로, 설레고 기쁘고 즐겁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러면서도 행복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한 자 한 자 쓴 글은 정성스럽고 예의 바르다.
거칠고, 건너뛰고 대충 써 내려간 글에는 배려가 부족함에서 오는 거친 행간이 느껴진다.
나만 알아보는 글, 나만 이해되는 글, 나에게만 의미 있는 글이 아니라, 나에게 전혀 관심 없는, 처음 보는 이가 보더라도 무슨 일인지 알 수 있는 글, 글쓴이의 감정이 느껴지는 글을 써야 한다.
그래야 다른 사람에게 읽힌다.
나만이 알아듣는, 나에게만 의미 있는 나만의 자서전은 개인에게만 의미 있을 뿐 다른 사람이 굳이 시간 내어 읽을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글쓰기를 원하다면,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글을 써야 할 이유.
글은 나를 위한 글이 아니라, 읽는 사람을 위한 글이어야 한다. 그것이 나를 위한 글이기도 하다.
“온갖 작문 수업과 글쓰기 강좌는 끌고 갈 말도 없는데 마차를 먼저 준비하라고 가르치는 셈이다. (중략)
당신은 먼저 이야기를 해야만 한다.”
- <참을 수 없는 글쓰기의 유혹> 중에서.
글이 가진 공감력, 전달력, 행동력, 글은 힘이고, 글은 사람의 마음을 모으는 에너지이다.
나는 나이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야 하고, 내가 쓸 수 있는 글을 써야 한다.
그런데 막연히 내가 학창 시절에는 글 좀 꽤나 썼고, 상도 꽤나 받아봤기에 지금 글을 쓴다면 바로 책 한 권쯤은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책부터 쓰기 전에, 글부터 쓸 생각을 하면 좋겠다.
“당신은 먼저 쓰고, 계획은 나중에 세우라. 먼저 써보아야만 모든 단어가 자유롭고 의미 있게 나타난다. 그래야만 생각하는 대로, 이야기하고 싶은 대로 쓸 수 있다. 이렇게 해야만 당신의 책이 생생해질 것이다. 그 책이 성공하리라는 뜻은 아니다. 단지 열 사람에게만 생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그 열 사람에게만은, 당신의 책이 살아 있게 된다. 그 책은 그들에게 말을 건넬 것이다. 그것은 그들을 자유롭게 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