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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잠 Jun 30. 2020

내 삶이 가야 할 곳으로 가는 중인가요?

산도르 마라이의 <결혼의 변화>上

언제부턴가 산도르 마라이 작가의 글이 좋아졌다. 글을 읽으면서 투박하면서도 섬세하게 느껴지는 표현이 좋았고 신비롭게 느껴지는 문체에서 여자일까 남자일까 궁금했다. 그리고 남자 작가라는데에 다시 놀랐다.

<이혼전야> 이후 요즘 읽고 있는 책은 <결혼의 변화>.

 

그의 작품을 소개하며 소설가 김형경은 이렇게 표현했다.

"산도르 마라이의 소설을 읽을 때면 늘 얼음으로 만들어진 갈퀴손이 가슴 한가운데를 쓸어내리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 갈퀴손이 지나가는 곳마다 의식을 점령하고 있던 낡은 시각과 문장들이 드르륵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나간다."


괜스레 뜨거워지기만 한 답답한 가슴을 얼음 갈퀴손이 훑고 지나간 뒤에는 시원해지는 것을 느꼈다. 머리가 맑아지고 카페인을 섭취한 듯 정신이 또렷해지는 듯도 했다.

그가 갖고 있는, 작품 속에 드러나는 오래된 관념들, 열정, 운명, 배신, 결혼 같은 것들에 대한 냉소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많다. 예를 들면,


"내가 뭘 느꼈냐고? 내 운명은 내가 책임진다는 것. 모든 게 나한테 달려있다는 것. 내 인생에서도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호박이 저절로 넝쿨째 굴러들어 오길 기다릴 수는 없다는 것."
"가난과 부유함 사이에는 엄청나게 많은 단계가 있어. 그리고 가난한 정도도 얼마나 천차만별인 줄 아니? 너는 풍족하게 살아서, 한 달 수입 사백과 육백 사이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 몰라. 한 달 수입 천과 이천 사이에는 그다지 큰 차이가 없어."
"세상에서 사랑보다 더 강한 힘은 없어. 그런데도 남자들이 달리 어쩔 도리가 없어서 우리를 사랑하고, 그래서 모든 것을 좀 경멸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간혹 들어. 진실한 남자들은 사랑하는 여인 앞에서 자신의 존재, 영혼의 일부를 감추려는 듯 몸을 사리는 구석이 있어.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아. '사랑하는 이여, 여기까지만, 더 이상은 안되오. 여기 일곱 번째 방에서는 나 혼자 있고 싶소."


그냥 지나치기 쉬운 삶의 어느 한 '지점'들을 현미경으로 보고,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 같다. 그것은 일반적이지 않고, 일반적이라 할지라도 내가 말하지 못했던 일들이다.

책장을 넘길수록 '이 표현을 내가 쓰고 싶었는데!' 하고 부러움까지 드는 문장들은 그의 소설 속에서 흔치 않게 발견된다. 이처럼 약간의 냉소와 차가운 이성, 세심한 관찰력으로 글을 쓴 산도르 마라이의 작품을 읽어가는 중이다.  

주인공들은 이혼했고, 서로의 시선에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상, 하 권으로 나뉜 이야기의 전개를 보면서 역시 사람은 자기 입장대로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알았다. 제 3자의 입장에서 볼 때 안타까운 부분도 있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라고도 생각되었다.

운명은 때로는 알 수 없는 힘으로 우리를 끌고 가는 때가 있고, 그 운명에 대한 이야기를 소설은 말하고 있다.

작가가 표현한 운명에 대한 이야기. 흥미롭고 너무나 소설적인, 그러면서도 생각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어느 날 별안간 일어나는 게 아닐세. 인생의 운명적인 순간, 질병, 이별, 사람들 사이의 영원한 결합, 이런 일들은 전부 정해진 시간에 뭔가를 설명하거나, 확정 짓거나, 조사하듯이 일어나는 게 아니야. 우리가 결정적인 사건이라고 깨달을 때는 대부분 이미 모든 게 일어난 뒤일세. (중략)

인생에는 보이지 않는 연출의 손길이 존재하네. 뭔가를 해결하고 끝을 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주변에서 다들 도와주네. 그래, 장소와 주변의 물건, 사람들이 은연중에 공모자가 된다네."


내가 졸혼, 별거, 이혼의 과정을 거치면서 느꼈던 일들, 마치 누군가 나를 돕고 있는 듯한 느낌, 때마다 일마다 순적하게 이루어지는 일들, 힘들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빠져나올 수 있었던 구멍, 힘과 용기를 얻었던 순간들, 그것은 누군가 완벽하게 연출한 시나리오와 같았다. 모든 장소와 주변의 물건, 사람들까지 한 편이 되어서 나를 도와주었다. 그래서 작가의 글이 더 와 닿았고 놀라웠다. 소설가는 미로 속에서 길을 찾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별안간 맞닥뜨리는 일들 앞에서 당황하고 힘들 수 있다. 인생에서 누구라도 질병과 이별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시기만 다를 뿐, 그러나 그때가 하필 '지금'이지는 않기를 바란다.

아직 키워야 할 아이들이 있고, 해야 할 일들이 있고, 이루어야 할 성취가 있고, 만나고 싶고 가보고 싶고 알아가고 싶은 세상이 이렇게나 크고 넓은데, 부디 모든 일이 일어난 뒤에 깨닫지 않기를.

보이지 않는 연출의 손길이 우리의 삶을 조금 더 가련히 여겨서 모든 이에게 시간과 기회를 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주인공의 자조적 고백.

"세상만사를 주재하는 힘이 그 순간에도 나를 다스린다는 사실을 여전히 깨닫지 못했지."

이 순간도 우리는 거대한 힘 안에서 우리의 삶을 살아간다.

나는 그것을 믿는다.

그리고 책을 통해서, 내 삶이 어떠해야 할지를 생각하게 된다.

"사랑은 커다란 이기심의 표현일 수 있어요. 믿음 속에서 겸허하게 사랑해야 합니다. 믿음이 깃들어있는 경우에만 삶에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세계를 참아내고 서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사랑을 주셨지요. 그러나 겸허한 마음 없이 사랑하는 사람은 상대방에게 커다란 짐을 지우게 됩니다."


겸허한 사랑, 서로에게 짐 지우지 않는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여주인공이 고통스러워 노년의 신부를 찾아갔을 때, 신부님은 그녀에게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 완벽하게 행복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자매님은 무슨 권리로 행복해지려 하시지요? 자매님의 갈망과 사랑이 헌신적인 것이며, 자매님이 당연히 행복을 누려야 마땅하다고 그렇게 확신합니까?

그렇다면 여기에서 더 이상 무릎 꿇지 말고 삶이 자매님을 보낸 곳으로 가십시오. 맡은 일을 하면서 삶의 명령을 기다리십시오."


책을 덮고, 내 삶이 가야 할 곳으로 걸음을 옮겨야 할 때가 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위해 가야 할지 내가 나를 알아가는 것, 책에게 길을 묻는다. 겸허하게 사랑하고, 믿음이 깃든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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