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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잠 Mar 20. 2020

어느 날 갑자기 슬픔이 밀려올 때

나를 위해 용기 있게 "싫어!"라고 말하자.

모리스 샌닥의 <괴물들이 사는 나라>라는 동화책의 한 장면이다.


괴물들이 말했어요.

"제발 떠나지 마. 떠나면 우리가 너를 잡아먹을 거야. 너를 너무 사랑하니까."


그러자 맥스가 말했어요.

"싫어!"


<빅 퀘스천>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 더글라스 케네디의 아들, 그의 이름도 동화 주인공과 같은 '맥스'라고 한다.

저자는 밤마다 아들에게 책을 읽어주었다. 맥스가 특히 좋아하는 대목이기도 하고, 맥스는 항상 괴물들의 말에 "싫어!"라고 목소리를 내며 책을 읽었을 것이다.

그런 귀여운 아들이 처음에 '간질'이라는 병명을 받았다. (이후 자폐증 진단)

저자는 이를 이렇게 표현했다.

"내 아들 맥스가 괴물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맥스는 간질이라는 괴물에게 말하는 능력과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는 법을 모두 빼앗겼다."


그 이후에도 더글라스는 맥스에게 <괴물들이 사는 나라>를 읽어주면서 맥스가 스스로 목소리를 내어서 전처럼 "싫어!"라고 하기를 기다렸다. 귀를 기울여도 소리를 내지 않던 맥스를 보면서 아버지로서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외국어를 공부하면 인지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말에 외국어도 가르치고, 집에서 홈스쿨링을 하면서 말을 반복하기, 정확하지 않은 시간관념, 독선적인 행동 등등 맥스가 갖고 있는 자폐아의 특징들을 깨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그런 아빠의 마음이 통했을까.

8주 뒤 맥스의 입에서 작은 소리나마 '싫어!'를 들은 더글라스는 이제 맥스가 말을 하게 되었음을 알았다.

(1주일이 8번 지나가는 동안, '싫어'한마디 하지 않았던 아들을 기다렸을 아버지. 그 마음을 생각해보면, 얼마나 큰 인내와 기다림, 희망으로 맥스를 지켰는지를 알 수 있다.)


어른이 되어도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게 될 희망이 없다는 말을 들은 맥스가 기적처럼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들이 자폐 진단을 받았을지언정 더글라스는 어릴 때부터 맥스를 음악회, 연극 공연 등에 데려갔고 보통 아이들과 똑같은 예의범절을 가르쳤다. 외국여행을 갈 때마다 함께 동행했고, 맥스의 발전을 위해서 그때그때 필요한 부분을 해결하는데 집중했다. 불안과 괴로움은 멀찌감치 밀쳐두었고, 그런 가운데서도 더글라스는 삶의 균형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일'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어떻게든 소설을 써나갔다고 한다.

그 결과 맥스는 2012년 다섯 개 대학에서 입학허가를 받았고, 일류 미술대학의 학생이 되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아버지이자 작가로서 위대하게 느껴졌던 것은 책에 쓰인 대로, 저자의 고백에 있었다.

"나는 단 한순간도 '맥스가 정상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맥스는 있는 그대로 내 아들일 뿐이었다. 맥스가 다른 모습이기를 원하지 않았다."


만약 나라면 저자처럼 위대하게 든든한 부모의 역할을 할 수 있었을까. 심지어 아내와의 오랜 갈등과 불화로 괴로운 결혼생활을 하면서 아내에게 아들을 미루지 않고, 강한 책임감과 사랑으로 아들을 지켜냈다.

한 순간이라도 '맥스가 정상이면 얼마나 좋을까, 다른 집 아이들처럼 말하고 뛰고 놀면서 장난치고 웃는 모습을 단 한 번만이라도 볼 수 있으면 좋겠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텐데, 더글라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맥스는 있는 그대로 아들일 뿐이었다고, 다른 모습이기를 원하지 않았다고 말이다.

게다가 더글라스는 강한 아버지였다.

처음 아들이 자폐 진단을 받았을 때 더글라스는 이리도 냉철하게 현실적인 생각까지 해냈다.

"앞으로 얼마나 지난한 싸움을 벌여야 할지 잘 알고 있었다. 자폐증과 싸워야 하고, 정부와 교육청을 상대로 싸워야 하고, 맥스의 장래가 극히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과 싸워야 할 것이다. 때로는 그런 사람들을 설득하고 손을 내밀어야 했다. 나는 그런 일에 기꺼이 뛰어들 각오가 되어있었다.

내 아들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어려운 일에도 기꺼이 뛰어들어 반드시 이겨낼 각오가 되어있었다."


어떤 어려운 일에도 기꺼이 뛰어들 각오. 아들을 위해서라면 반드시 이겨낼 각오.

세상의 편견과 싸우고 아들의 미래를 제한하는 사람들과도 싸우고, 자신과도 싸워야 하는, 부모로서 너무나 외롭고 처절한 싸움이다. 싸우는 것만 해도 힘든데 더 힘든 것은 때로는 그런 사람들을 설득하고 손을 내밀어야 했다는 것이다. 그 조차도 기꺼이 뛰어들 각오를 했다니, 저자의 글을 보면서도 놀랐지만, 아버지로서 보여준 모습도 내게는 큰 충격이었다.

이때를 저자는 이렇게 기억한다.

"계속 달리지 않으면 내가 달리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리도 잘 달려온 그이지만, 그러다가 갑자기 아무런 이유도 없이 눈물이 쏟아지는지도 모르면서 한동안 펑펑 울었다고 한다. 결국 오래도록 억누르고 있던 슬픔과 괴로움이 한꺼번에 폭발한 것이다. 저자는 너무 오래 억눌려온 슬픔이었다고 고백한다.


가장 커다란 '의심'은 자기 자신에 대해 품는 의심이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심을 잘 다스려 '내일에는 내일의 해가 뜬다'는 낙관주의를 지켜갈 수 있을까? 바로 그게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의 숙제가 아닐까?


인생을 살다가 내 어깨에 짊어진 무게가 너무 커서, 무겁고 외로워 무릎이 꿇어지려 할 때, 어느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누구에게 무릎이라도 꿇을 수 있다. 그러나, 5초 만에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자식이 '힘'이기 때문이다. 자식은 부모를 힘이 나게 한다. 절망의 순간에 일으키는 것은 자식이 부모에게 주는 놀랍고도 기적적인 힘이다.

이 세상이 진정 무서운 것은 나뿐만 아니라, 나의 자식에게 어떤 힘들고 불행한 일이 닥칠지 몰라서가 아닐까.

마치 운명처럼, 피할 수 없는 일이라 느껴질 때 운명에 지지 않고 맞서 싸우는 부모는 그래서 강해진다. 굴복하는 순간 자식이 다치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 초기에 우리에게 주어지는 선택을 제외하고, 우리의 인생에서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부분은 아주 적다. 우리는 그 초기의 선택을 '운명'이라고 부르는 게 아닐까?"

운명은 흔히 바꿀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운명에 대처하는 나의 자세는 바꿀 수 있다.

막막하고 어두운 하늘을 올려다보며 '왜 하필 나에게 이런일이!' 원망스러운 생각을 던지게 될  그럴때, 세상이 아닌, 나를 바라보자. 그리고...

괴물들이 나의 의식, 무의식에 언제든 찾아와 '나를 떠나지 마, 떠나면 우리가 너를 잡아먹을 거야! 너를 너무 사랑하니까!'라고 할 때. 맥스처럼 "싫어!"라고 용기 있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기를. 그것이 우리가 운명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주문이자 경고가 될 것이다.



참고- <빅퀘스천>,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밝은세상,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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