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라노 게이치로의 소설, <마티네의 끝에서>는 운명의 장난인지 아니면 그들의 의지에 따른 일인지, 서로 사랑하면서 떨어져 살아온 두 주인공이 등장한다. 떨어진 채 '서로를 만나 이야기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두 사람의 모습은 어쩌면 '이야기가 통하는 영혼'이 우리 삶 속에는 그만큼 드물다는 얘기인지도 모른다고 작가는 밝혔다.
이야기가 통하는 영혼...
한 이불 덮고 사는 남편과도 그렇게 이야기가 통하기 어려운데, 오히려 반대말로 알아듣는 경우가 많은 현실에서 다른 이불을 덮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이야기가 통할 수 있기란, 흔치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내 영혼의 반쪽, 함께하면 마치 퍼즐처럼 이야기가 꼭 맞고 마음의 결이 딱 맞는 사람이 어딘가에는 있을 것이라 믿는다.남녀 간의 관계가 아니어도 충분하다.
그렇게 믿고 살아가는 것이 마음이 편안하다. 그래서 작가는 계속해서 글을 쓰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의 글에 와 닿아주실 어느 분들의 마음을 기다리고 바라는 것은 욕심일까?
이 소설 속에는 '예측 불가능한 운명과 인간의 자유의지, 천재와 범재의 서글픈 평행선 등, 인간의 삶의 밑바탕을 뒤흔드는 중요한 명제'들이 작가의 연륜에 걸맞게 작품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현실에 뿌리를 내린 성인의 사랑이야기이면서도 '홀려들듯이 아름다운 지성의 세계'를 담고 있는' <마티네의 끝에서>.
'마티네'는 프랑스어로 '오전 중'이라는 뜻의 마탱(matin)에서 유래한 말이라 한다.
연극, 음악회, 오페라 등의 낮 공연을 가리키는 용어로, 주로 저녁에 이루어지는 공연을 낮시간이 자유로운 학생과 주부들도 즐길 수 있게 시간대를 넓혀 대상을 확대하려는 예술 경영의 전략이라고 옮긴이는 설명한다. 그리고 이 소설의 제목에 '마티네'가 포함된 것은 주인공이 클래식 기타리스트라는 점도 관계가 있지만, '고전의 대중화'라는 점에 그 의미가 깊은 것인지도 모른다고 한다.
작가 히라노 게이치로는 1998년에 일본의 권위 있는 문예지 <신초>에 첫 장편 소설 <일식>을 발표하면서 데뷔했다고 하는데, 이름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신인의 투고 작품이 문예지에 오른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 한다. 그만큼 당대의 작가들에게서 볼 수 없었던 문장과 작가 특유의 생생한 묘사가 이 소설의 장점이라 생각한다.
주인공의 이야기처럼, 우리 인간의 자유의지가 수많은 운명과 인연을 엇갈리게 만든다. 이에 대해서 작가는 소설 속에서 이같이 말한다.
"자유의지라는 것은 미래에 관해서라면 없어서는 안 될 희망이야. 인간은 자신이 뭔가를 해낼 수 있다고 반드시 믿을 필요가 있어. 그렇지?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과거에 대해서 깊은 회한이 드는 법이야. 뭔가 좀 더 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라고 말이야. 운명론이 오히려 위로가 되는 경우도 있어."
그래서 자유의지에는 운명론이 세트여야 겠다는 생각도 든다. 인간의 자유의지로 설명되지 않는 인생의 첨예한 갈등과 돌이키기 어려운 잘못들에 자유와 의지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그 무엇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운명론은 자유의지로 상처 난 마음에 바르는 연고가 될 수 있다. 그리하여 자신의 남은 인생을 더 나은 모습으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운명론은 좋은 반창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에 빠졌을 때, 유럽식 개념인 '개인'이 아니라 '분인(分人)'으로 생각해나가면 여러 개로 나뉜 '진정한 나'를 인정하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정립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옮긴이는 설명한다.
"인간은 바꿀 수 있는 것은 미래뿐이라고 믿고 있어요. 하지만 실제로는 미래가 항상 과거를 바꾸고 있습니다. 바꿀 수 있다고도 말할 수 있고, 바뀌어버린다고도 말할 수 있죠. 과거는 그만큼 섬세하고 감지하기 쉬운 것이 아닌가요?"
책을 읽는 내내 소설 가운데 중심축에 느껴지는 '미래는 과거를 바꿀 수 있다'는 말이 상당히 희망적이고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남자 주인공의 말을 곱씹으면서 과거에 대해 생각하던 여자 주인공은, 자신의 '과거'에 상당 부분 의문을 남겨주신 아버지에게 소설 말미 드디어 용기 내어 물어본다.
"그걸 아버지는 후회하세요?"
딸의 말에 아버지는 말한다.
"중요한 건 너희를 사랑했다는 것이었어.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사랑했기 때문에 관계를 끊은 거야. 그리고 너는 이렇게 훌륭하게 자랐고 네 어머니도 평온하게 잘 살고 있잖니? 아마도 잘못이 아니었던 모양이지."
아버지의 말에 여주인공은 깨닫는다.
바로 지금이라고, 잘못이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지금 이 순간. 내 과거를 바꿔주는 지금 이 순간임을.
'과거는 바꿀 수 있다. 그렇다, 하지만 과거를 바꾸면서 현재를 바꾸지 않은 채로 살아간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에서 나는 그녀가 드디어 과거를 바꾸고 성장해가는 순간임을 알았다.
그리고 나 또한 다시 생각을 정립하게 되었다.
'미래는 과거를 바꿀 수 있다'고.
과거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나의 어느 때, 미래의 내가 과거에게 설명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너의 과거를 바꿀 수 있다고.
이제 그만 바뀌었다고.
그로인해 이제 다시 희망이 차오르고, 몸과 마음은 위로받고 현재의 고통과 내 상태를 재정립할 수 있는 기회이다, 과거는 이미 바뀌었으므로.
마음 졸이게 만들며 끝을 향해 가던 소설은 결국 열린 결말로 끝난다.
그러나 나는 소설 말미의 시로 인해, 열린 결말이 내가 바라는 헤피엔딩이라고 결정했다.
그리고, 소설이 끝남이 아쉽게만 느껴진다, 이후의 이야기들을 만나보고 싶다, 작가의 필체로.
'천사여! 우리에게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광장이 어딘가에 있는 게 아닐까. 그곳에서는 이 세계에서는 끝내 사랑이라는 곡예에 성공한 적이 없었던 두 사람이.... 그들은 분명 이제 더 이상 실수하지 않으리니... 다시금 고요함을 되찾은 양탄자 위에 서서, 마침내 참된 미소를 짓는 그 연인들.....'
- 릴케 <두이노의 비가> 중에서 <행복의 동전>
참조 : 히라노 게이치로, <마티네의 끝에서>, 아르테, 2017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책을 읽고 영화로도 볼 수 있다니 선물받은 느낌, 과연 느낌은 얼마나 달라질지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