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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잠 Jul 24. 2020

글을 쓸 수 있음이 감사한 오늘...

집에 무사히 복귀했습니다. 지난 월요일 저녁에 퇴원했으나 어지러움이 남아서 앉아있기가 어려웠고요, 오늘부터 조금씩 몸이 가벼워짐을 느낍니다.

글을 쓰지 못하는 동안, 저로서는 브런치 작가이신 다녕님을 애도하는 기간이기도 했고요, 저의 삶을 다시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https://brunch.co.kr/@uprayer/542


누군가,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지만 마음에 오래 남는 사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글을 통해 알게 된 사람은, 자주 만나는 것 이상으로 교감하고 알아가는 시간이 첩첩이 쌓이는 것 같아서요, 다녕님을 보내드리기가 참 슬펐어요.

제가 응급실로 이송된 날이 7월 9일이었는데, 다녕 님께서는 그 다음날, 7월 10일에 고인이 되셨다고 보았어요. 같은 시각, 병원에 있어서 그런지, 유독 생각이 많이 났었고, 어떻게든 안부를 좀 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더랬습니다. 생각났을때 했어야했는데, 그만 놓치고 말았던 것 같아서 마음이 더 아팠고요,

어제까지 있던 사람이 오늘은 없고, 오늘까지 있었던 사람인데 이제 더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두려웠어요.

누구든 죽음을 피할 수 있을까요. 다만, 너무 빨리 가신것이, 너무 애석하고 황망할 따름입니다. 가족에 비할수는 없지만, 나와 (본명으로는) 같은 성을 쓰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더 가까이 느꼈더랬어요.

슬픕니다.


그리고 유난히 이번 달부터 저와 가까운 분들이 다들 큰 병으로 무너지는 소식을 들으면서, 저는 제가 앓았던 뇌수막염보다 실질적으로는 더 큰 고통을 느꼈나 모르겠어요. 심신이 너무 약해졌고, 아프기도 했고, 남은 아이들이 걱정되기도 했습니다.

너무 아프다보니, 제가 병원에 가기 전날 아이들에게 울면서 말했어요.

만약에, 엄마에게 무슨일이 생기면, 아빠에게 가면 된다.

그리고 마음속으로는, 나의 부재시 누가 가장 먼저 달려와줄 것인가, 내가 없을때 나대신 누가 우리 아이들을 들여다봐줄것인가, 빠르게 계산되었습니다. 믿음이었어요.

(아니나 다를까. 구급차에 실려간 그 순간에 지인들은 저의 몸이나 잘 치료받으라며, 아이들과 집에 대해서는 생각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체적으로 단톡방을 만들어 2인 1조로 수시로 저의 집에 드나들었고, 청소며 빨래며, 궂은 일을 마다않고 두 집살림을 하듯, 집과 아이들을 챙겼습니다. 냉장고에는 반찬이 그득해졌고요, 아이들은 오히려 저와 지낼때보다 좋아보였어요. 그 덕에 제가 병원에서 마음 놓고 치료를 잘 받고 나올수 있었어요. 정말 감사한 분들이 제 곁에 계십니다.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퇴원 후 알았어요.

내가 아이들에게 했던 말이 정말 잘못되었다.

나의 부재시, 아빠에게 가라고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살게끔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셋이 똘똘 뭉쳐서 살아야한다. 서로에게 가족이 되어야 한다. 엄마,아빠, 든든한 남매가 되어주어야 한다. 엄마가 없더라도 머물 집만 있으면, 빨래하고 학교다니고 어긋나지만 않고 잘 자라가면, 반찬 정도야 주변에서 챙겨주실 분들이 있다. 쌀과 김치만 있어도 살게끔 만들어야겠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퇴원하니 큰아이가 세탁기로 빨래하는 법을 이미 익혔고, 설겆이를 할 줄 알았으며 자신이 머문 곳을 치울 줄 아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없는 동안, 스스로 할 일을 찾아해온 아이들이 고마웠어요.

당연히 그래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형편껏 살아야지요. 그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초등학교때부터 설겆이를 해서, 그렇지않아도 손에 땀이 나지 않아 거칠고 뻣뻣한데, 손에 물마를새가 없으니 여자 손이 거칠다 하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결혼하고도 손에 물마를 날이 더 없으니 그랬고요, 그래서 전남편은 그 고운 손으로 제 손을 잡으며 '당신 손은 왜이렇게 거칠어?'라고 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설겆이 정도는 아이들에게 가르치라고 했어도, 저는 아이들의 손이 거칠어질까봐, 설겆이 만큼은 안시키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제 그런거 없습니다. 설겆이는 중학생이 되면 한다로 기준을 잡았어요.

물 사용과 세제와 꼼꼼함의 기준을 정하고 제 마음에 믿고 맡길수 있을 나이를 중 1로 정했고, 그 기준은 세남매 동일하게 세웠어요. 그래서 현재는 한번씩 큰 아이에게 설겆이를 부탁합니다.


흠...

몸은 많이 회복되어 가고 있습니다.

퇴원할때 주치의께서 2시간 이상 앉아있을수 있을때를 건강의 기준으로 삼으셨는데

현재는 30분 정도 앉아있을 수 있는 듯 합니다.

그 외에는 혈압이 떨어지는 것이 느껴지고

식은땀이 많이 납니다. 그럴땐 무조건 누우라고 하신게 생각나서, 이제 누울 시간입니다.

틈틈히 마음속에 생각했던, 쓰고싶었던 이야기들 써서 올릴게요

내내 건강하시고, 모두 현재의 시간과 행복을 더없이 소중히 여기시면 좋겠습니다.


끝으로, 다시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고인께서 남겨주신 글은 언제까지고 남아있을테니, 글로서 이제 다녕 님을 느낄 수 밖에요.

그것이 이제, 감사할 따름입니다.

https://brunch.co.kr/@red7h2k/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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