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남자
요즘들어 부쩍 주변 친구들 중에
회사를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으로 옮겼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그들은 왜 스타트업으로 옮겼을까?
그리고 실제로 그들이 경험해 본 스타트업은 그들이 기대한 것과 얼마나 일치했을까?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으로,
그들의 생각과 삶이 궁금해 지난 해 이직한 친구 한 명을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안녕, 오빠!
오빠 대기업에 있었을 땐, 재무 부서에서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맞지?
근데 재무 부서도 하는 일이 엄청 다양할 거 같아. 일단 정확히 오빠가 맡았던 직무가 뭐야?
난 인턴때랑 정규직때랑 했던 일이 달라.
일단 정규직때 했던 업무 부터 설명해 볼게. 나는 회계팀에 있었는데, 그때 했던 일은 현업 부서에서 거래가 일어났을 때, 거래가 일어난 부서에서 분개를 해서 우리 팀에게 넘겨주면 그걸 1차적으로 승인해 주는 일이었어.
예를 들어 현업 부서에서 계약을 따냈다든지, 뭘 팔아서 매출을 냈다든지 하는 일이 발생하면 그들이 회계 분개를 해서 매출 얼마, 비용 얼마가 발생했다고 작성하는거야. 이걸 ‘전표’라고 하는데, 그걸 우리 팀으로 올리거든. 그럼 그걸 1차적으로 검토해서 승인하는 일을 한거야.
일단 그럼 가장 주된 업무는 지금 말한 ‘전표 승인’인 것 같고, 다른 업무는 어떤게 있었어?
일단 가장 중심이 되는 일은 아까 말했던 장부를 ‘만드는 일’이야.
그렇지만 다른 업무도 했는데, 일단 3가지로 나눠서 설명해 볼게.
첫 번째는 장부 관리야. 아까 설명했던 장부를 만드는 일에서 파생되는 세부 업무들이 있거든. 대표적인 예로 수정 분개가 있어.
그렇지만 수정 분개 이외에도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수정도 해야 하고, 월마다 결산도 해야 하고 말이야.
그런 관리 업무도 내가 같이 진행했다고 보면 될거 같아.
두번째는 채권 관리. 매출을 내면 채권이 생기거든. 만약 우리 회사의 채권 중 회수가 안된 것이 있으면 관련 현업 부서에 이 채권의 기한이 얼마 지났으니 회수해 달라고 하기도 했어.
마지막으로 결산. 회계 처리를 해야 하는 비용 중에, 전표에 올라가지 않는 비용이 있어. 감가상각 비가 대표적이야. R&D 비용 중에서도 있고. 그런 비용들은 우리 회계팀에서 자체적으로 추산해서 한달에 한번씩 ERP 시스템에 직접 포함시켜야 해. 그래서 그런 일도 했었어.
지금 들어보니 회계를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단어가 꽤 나오는데, 오빠도 따로 회계사 시험 준비 안했잖아? 혹시 일하면서 회계 용어나 개념때문에 어려움을 겪은 적은 없었어?
글쎄, 별로 없었던거 같은데?
일단 나는 ‘검토’하는 일이잖아. 그 작업은 회계 지식이 많이 필요한 일이 아니야. 이미 유형화가 되어 있는 부분이 많아서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그냥 전임자에게 물어보면 되는 정도였지.
그리고 나는 신입이니까 팀에 계신 분들도 처음부터 내가 모든 것을 스스로 알아서 처리한다기를 기대한다기 보단, 배워나가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모르는 게 있으면 주변 분들에게 물어보고 답을 얻을 수 있었어. 그래서 다행히 어려웠던 경험은 별로 없었던 것 같네.
그렇구나..그런데 정규직때는 왜 회계팀으로 배치됐던 거야? 회계 관련 자격증이나 인턴 경험이 없는데도 그 팀으로 배치된 이유가 있다면 뭐 였을 거 같아?
간단하게는 이 팀에서 사람이 필요했던 거지. 그리고 우리 회사에서는 회계팀을 재무 부서에서 커가기 위한 기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어. 그래서 일단 나를 회계팀에 보내자는 의견이 많았던거 같아. 뭐..그리고 결정적인 이유는 내가 인턴을 했던 팀은 신입을 뽑지 않는 팀이었던 거겠지?ㅎㅎ
그러면 오빠네 회사는 일반적으로 회계팀에서 경력을 쌓고 다른 재무 관련 부서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아?
응. 그게 이상적인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더라고.
물론 필요한 경우가 있으면 신입을 바로 뽑기도 하지. 내가 전환될 때만 해도 동기들이 몇 그렇게 재무 부서들에 배치 받았으니까.
그러면 일반적으로 몇 년 동안 회계 팀에 있으면 다른 팀으로 갈 수 있다, 라는 예상이 되는 기간이 있긴 했어?
응. 정확하지는 않지만 최소 3년 정도는 회계 팀에서 일을 해야 하겠더라고. 길면 5, 6년도 있어야 했고.
진짜 오빠가 말한대로 회계 팀에서 다른 팀으로 이동하는 사례가 많았나보네.
응, 전임자들도 다 그렇게 이동 했거든. 우리 회사의 재무는 순환 보직과 비슷한 느낌이라서 그런 경향이 더 컸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
그럼 맨 처음으로 돌아가서, 인턴 지원하기 전으로 가보자.
그때는 재무 부서가 어떤 일을 할거라고 생각하면서 지원했던 거야?
사실 재무팀 지원하면서 가장 기대했던 일은 기업들 밸류에이션해서 M&A하는데 참여하거나, 채권 발행하는 일이었지ㅎㅎ
하긴 인턴십 하기 직전에 사모펀드에서 인턴했었으니까 그럴 수도 있었겠다.
응, 거기서는 그런 일을 했었거든. 그래서 막연하게 대기업 재무팀에 가면 그런 일을 할 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했던 거 같아.
아, 그리고 재무팀 지원하면서 기대했던 또 다른 건 재무 관리적인 업무를 할 수 있을거라는 거였어. 예를 들어 이 부서의 수익성이 안좋다 같은 진단을 내리고, 그에 대한 솔루션을 제시할 수 있다든지 말이야.
그럼 인턴 때 했던 일은 그러면 오빠가 기대했던 일과 비슷했어?
완전 똑같다 하긴 어려웠지만 비슷한 점이 있기도 했고?
일단 나는 인턴 때 IR 팀에 있었어.
기관 투자자들을 상대하고, 공시하는 일을 담당하는 팀이었지. 우리가 종종 보는 IR 리포트 있잖아? 그런게 기관 투자자들을 상대하는 업무 중 하나라고 보면 돼. 공시는 DART에 올라가는 자료들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되고.
인턴 때는 정확히 어떤 일을 맡아서 했었어? 현업에서 일을 한다기 보다는 다른 경험들을 했을 거 같은데.
주로 과제 수행했어. 과제는 두 가지였는데, HR쪽에서 내주는 거랑, 팀에서 내주는 것이 있었지.
일단, 재무 부문 HR 쪽에서 내주는 과제는 재무 팀에 배정된 인원 전체에게 공통으로 내주는 과제였는데, 인턴십 끝나기 전에 임원분들 앞에서 발표해야하는 과제였어.
내가 받았던 과제는 우리 회사의 기업가치를 상승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라는 거였어. 다른 회사의 우수 사례를 분석해서 인사이트를 도출하면 되는 내용이었고.
팀장님이 내주는 과제는 인턴마다 달랐던 걸로 알아. 내가 받은 과제는 약간 오퍼레이션쪽이었지.
인턴십하면서 계속 과제만 한거야?
응 가장 큰 부분이었어.
물론 그 사이에도 팀에서 주는 작은 일들을 맡아서 하긴했지.
리서치를 한다든지, 주주 명부를 엑셀로 정리한다든지 하는 크게 어렵지 않은 종류의 일이었어.
그럼 인턴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데에는 어떤 점이 가장 영향이 컸다고 생각해?
사람들이랑 잘 어울렸던 게 가장 크지 않을까 싶은데? 그리고 인턴들은 업무 시간 동안 멀뚱히 앉아있는 경우도 많은 편인데, 먼저 적극적으로 먼저 일을 달라고 말씀 드렸던 것들도 긍정적으로 평가 됐을 거 같아. 그렇게 해서 맡게된 일도 잘 수행했고.
인턴십이 끝나고 회계팀에서 일하게 된다는 걸 알았을 때, 어떤 기대치라는 게 있었을 거 같아.
입사 전에 기대했던 거랑 실제 경험한 거랑 가장 큰 차이가 있었다면 뭐가 있었을까?
사실 나는 회계팀 업무가 전표 승인을 하는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고, 그게 지루한 일이 될 수 있을 거란 것도 알고 있었어. 분개를 하겠구나 같은 내용들도 알고 있었고. 물론 전표가 뭔지는 본 적은 없었지만 말이야.
그런데 문제는 실제로 일을 해보니까 생각한 것보다 더 지루하더라고ㅎㅎㅎ
지루하다는 게 루틴한 업무가 많다는거야?
루틴한 것도 루틴한 건데, 나는 기본적으로 아이디어 내는 것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거든. 근데 회계 팀 업무에는 그런 아이디어가 끼어들 자리가 하나도 없더라고.
일반적인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됐는데?
일단 출근을 하면, 전표가 수십개 정도는 쌓여있어. 많을 때는 처리할 게 수백개가 있을 때도 있고? 그럼 그걸 업무 시간 동안 하나씩 검토해서 처리하는거지.
물론 검토해서 처리하는 일만 한건 아니야. 내가 담당한 부서가 대여섯개는 됐는데, 그 팀에서 새로운 종류의 거래가 발생하면, 그 팀에서 해당 거래를 어떻게 회계 처리할지 물어보기도 해. 그럼 나는 그런 부분에 대해 가이드라인을 주는 일도 했지. 그 과정에서 세무 이슈가 있으면 세무팀으로 일을 토스해 주기도 하고.
그렇지만 만약 가이드를 줄 일이 없으면 아까 말했던 전표 승인을 하루 종일 하다가 가는거야.
아까 채권 관리도 내가 한다고 했지?
한달에 한번 정도는 채권 관리도 해줘야 해. 회수가 안된 채권들이 있으면, 내가 회사 내 각 채권 담당자들한테 연락해서 채권 회수가 가능한지, 안되면 왜 안되고, 가능하다면 언제까지 회수될 수 있을지 확인하는거지. 회수가 이미 완료가 된 사항이라면 ERP에 등록해 달라고 이야기 할 때도 있고.
한달에 한번은 결산을 하는데, 그 때가 우리팀이 가장 업무가 많은 시기야. 새벽 3-4시까지 업무를 해야 할 정도거든. 그 땐 정말 마무리를 해야 하는 시기니까 그때까지 승인 안됐던 전표들을 전부 다 승인하고, 수정해야 할 사항들도 다 반영해서 한달짜리 재무제표를 만들어. 팀원마다 각자 다른 계정을 맡고 있기 때문에, 다 같이 보면서 이상한 부분이 있으면 왜 그런지 알아보기도 하고 말이야. 전표 승인은 사실 6-7시면 다 끝나는데 수정 업무가 많아. 그래서 새벽까지 일하게 되는거야..
그럼 외부 회계 펌들한테 회계 감사 맡기는 것도 오빠네 팀에서 담당하는거야?
응, 그렇지. 근데 그 부분은 사실 우리가 크게 해야 할 일이 많지는 않아. 그 쪽에서 자료를 요청하면 우리가 전달해 주면 되는 것들이 대다수거든.
근데 나 문득 궁금한게, 대기업들에서 회계 등을 담당하는 부서들은 회계사 자격증이 있는 전문가들을 많이 고용한다고 들었거든. 실제로 오빠가 인턴했던 팀이나, 정규직으로 일했던 팀에서 봤을 때, 그런 전문 자격증이 있는 회계사들은 비중이 얼마나 됐어?
내가 인턴으로 있었던 IR 팀은 회계사 출신이라기 보다는 회사 전반을 이해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서, 다른 일을 경험하고 온 사람들이 많았어. 예를 들면, 마케팅에서 온 사람도 있었고, 경제 연구소에서 온 사람도 있었고, 회계 팀에서 온 사람들도 있었어.
반면에 회계팀 같은 경우에는 경력직으로 회계사들을 많이 영입하던 편이었지. 그래서 팀의 한 30, 40%는 회계사였고.
오빠는 경영학과 출신이잖아, 어떻게 보면 대학 다니는 동안 CPA를 따서 회계사의 길을 걷는 걸 선택하지 않은 케이스고.
근데 이렇게 회계 팀에 들어와서 일하고, 또 회계사들이랑 협업하면서 CPA를 따서 회계사가 되볼까 하는 생각은 따로 안해봤어?
음, 아니. 일단은 그들의 업무가 쉽지 않아 보이기도 했고, 아까 말했듯 나는 아이디어를 내는 일을 더 좋아해서...
그렇지만 이렇게 회계팀에서 일할 거, 그냥 회계사가 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은 해봤어ㅎㅎㅎ 왜냐면 회계 펌에서 3년을 일하면 여기서 10년 일한 것보다 더 회계에 대해서는 더 전문가가 되는 느낌이었거든. 실력 면에서도 그렇고.
그럼 그런 것들이 오빠가 퇴사를 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와도 관련이 있는걸까?
사실 내가 퇴사한 데에 막 결정적인 이유가 따로 있진 않았어.
처음 한 3달 정도는 내가 지금껏 했던 일과는 다르니까 신기하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해서 열심히 배우고 잘 다녔던 거 같아. 근데 그 3달 정도가 지나가고 나서 내가 일에 익숙해 지고 나니까 업무가 슬슬 지루해지기 시작했지. 회계 팀 업무라는 게 변화라는 게 있을 일이 많지 않으니까.
사실 전표도 숫자만 조금씩 바뀌지 올라오는 전표들에 큰 차이가 있는 게 아니거든. 그러다 보니까 3년 동안 여기서 이 일을 해야 한다는 게 약간 막막했지.
아까 말했던 ‘전문가’에 대한 생각도 영향을 미치긴 했겠다.
한번은 워크샵을 갔는데, 그 때 감사보고서만 한 5-6년 담당한 회계사가 보고서에 대해 쭉 설명해 준 적이 있거든? 근데 우리 회사에서 10년 넘게 있었던 사람도 그 설명을 들으면서 질문을 하고, 그 사람한테 배우는 걸 보니까, 아, 내가 아무리 여기 오래 있어도 저 5-6년차 회계사를 넘어서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
왜 그랬을까? 오빠가 하는 일이랑 오빠 팀에서 3, 4년 일한 사람이 하는 일이 많이 비슷했던 건가?
응 거의 비슷하지.
맡는 부서나 결산할 때 맡는 계정이 달라지는 거야.
예를 들어, 내가 신입 때 임차료를 맡았다면 그 다음 해에는 컨설팅 용역 수수료를 맡는다든지 이런 식으로 말이야. 그냥 같은 일인데 부분이 달라지는거지.
그래서 오빠가 결국 퇴사한다고 했을 때는 사람들 반응이 어땠어? 다들 붙잡는 분위기였어?
음..팀장님 같은 경우에는 걱정 많이 하셨지. 나가서 괜찮겠냐, 한번 더 생각해 봐라. 이런 식으로 말씀 많이 하셨고. 일단 우리 회사가 다들 오고 싶어하는 대기업이니까, 여기만한 데 찾기 쉽지 않다고 붙잡는 분도 계셨고.
물론 아직 젊으니까 여기 말고 더 하고 싶은 일을 해보는 것도 좋다고 긍정적으로 말씀해 주신 분들도 계셨어ㅎㅎ
그랬구나..그럼 오빠는 퇴사하기 전에 다음에 어디 갈지 정하고 나갔어?
응, 이미 다음에 갈 회사에 합격한 상태에서 그만 두겠다고 했지.
Part 2 [대기업 회계/스타트업 | ② 스타트업으로 이직하고 나니까 어때?]에서 계속 됩니다.
Disclaimer
Up Side의 인터뷰는 개인적 경험 및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특정 회사의 상황이나 입장을 대변하는 글이 아님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