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왔던 이야기
‘쿵쿵쿵… 쿵쿵쿵쿵…’
사무실 출입문에 다다르자 지은의 가슴은 미칠 듯이 뛰었다. 토끼 열댓 마리가 심장 안에서 뜀박질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가슴에 두 손을 얹었다.
사무실엔 이제 막 점심을 먹고, 자리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뭐가 그리 재밌는지 깔깔대며 웃는 동주, 그런 동주를 보며 까불고 있는 수혁, 희건은 자리에 없었다.
‘팀장님은 어디에 있는 거지?’
그녀는 까치발을 들어, 사무실 구석구석을 살폈다. 하지만 그는 보이지 않았다.
“김 대리, 여기서 뭐 해?”
지은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건 분명 희건의 목소리! 그녀는 떨리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어색하게 웃으며 몸을 돌렸다.
“하하하… 팀장님, 어제 집에 잘 들어가셨어요?”
“잘 들어가긴! 너 잠깐 나 좀 따라와.”
“네…”
희건과 지은과 비상계단으로 향했고 지은 죄가 있는 지은은 얌전히 그를 따랐다. 비상계단에 도착한 희건은 문을 걸어 잠그곤,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계단 위아래를 살폈다. 그리고 지은을 쳐다봤다.
‘한 소리 듣겠지?’
지은은 희건이 입을 열자, 눈을 질끈 감았다.
“괜찮아?”
그녀의 생각과는 달리, 희건은 다정하게 안부를 묻고 있었다. 지은은 그의 태도에 당황한 듯 말을 더듬었다.
“티… 팀장님 덕분에 잘 들어갔어요. 죄… 죄송해요… 많이 힘드셨죠?”
그녀의 말에 희건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피식’ 웃었다.
“허리가 부러지는 줄 알았다. 살 좀 뺐는 줄 알았는데, 몸무게는 그대로더라.”
지은의 얼굴이 순식간에 홍당무가 됐다.
“아니, 제가 언제 업어 달랬어요? 걸어갈 수 있었거든요! 근데 팀장님, 우리 집은 어떻게 알았어요? 어떻게 알고 절 집까지 데려다준 거예요?”
그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그녀에게 보이며 말했다.
“이래 봬도 나 팀장이야. 니 개인정보 정도는 메일함에 들어있다고. 그리고 정확한 집 위치는 니 입으로 말했잖아. 등 뒤에서 내비게이션처럼 집까지 잘 안내하더니. 혹시 너 나한테 업히고 싶어서 취한 척한 거 아니야?”
“지금 무슨 말을 하시는 거예요?”
“농담이야, 농담. 어제 많이 힘들었을 텐데, 괜찮아? 다친 데는 없고?”
“네. 멀쩡해요.”
“다행이네. 일단 사무실 들릴 필요 없이 그냥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
“주차장엔 왜요?”
지은의 물음에 희건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너 오늘 캠프 장소 답사 가는 거 잊은 건 아니지?”
“!!!!”
‘침착하자… 침착하자…’
순식간에 눈이 커진 지은은 애써 표정 관리하며 말했다.
“당연하죠. 어제 말씀하셨잖아요. 횡성 간다고.”
희건은 한숨을 푹 쉬었다.
“홍성이거든!”
희건은 비상계단 문을 열고 나와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지은은 멋쩍은 듯 희건의 뒤를 따랐다.
엘리베이터에 탄 둘 사이에는 묘한 기류가 흘렀다. 20층에서 지하 2층까지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는 시간은 제법 길었다. 지은은 자신도 모르게 희건을 올려다봤다. 작고 하얀 얼굴과 긴 목이 눈에 들어왔다. 6년 전 모습과 하나도 달라진 게 없었다. 지은은 희건과 사귀었을 당시 이렇게 그를 올려다보는 걸 좋아했다. 뭐랄까, 남자 주제에 숨 막히게 아름다운 그림을 만들어 낸달까?
“닳는다. 그만 쳐다봐.”
지은은 귀가 빨개져서는 서둘러 정면을 바라봤다.
“제가 언제 팀장님을 쳐다봤다고 그래요?”
희건은 웃으며 지은을 바라봤다.
“이 여자가 지난번부터 자꾸 거짓말을 하네. 내가 널 몰라?”
지은은 새우 눈을 뜨고 희건을 바라봤다.
“모르시거든요!”
“왜 몰라. 잘 알지. 우리가 함께한 시간이 얼마인데.”
지은은 귀를 의심했다. 지난번에 분명 옛날이야기는 꺼내지 않기로 했는데, 희건은 왜 또 이러는 건지. 도대체 다 지난 일을 꺼내서 뭐 하자는 건지. 지은은 적당한 대답을 하려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그리고 멀찌감치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동주와 수혁의 모습이 보였다. 희건은 엘리베이터에 내리며 지은에게 말했다.
“캠핑장에 보낼 물건이 있어서 차 두 대로 갈 거야. 넌 내 차에 타고, 그리고…”
그때, 동주가 희건을 보고는 방긋 웃으며 달려왔다.
“팀장님, 저 팀장님 차 탈 거예요!”
동주는 희건에게 팔짱을 꼈고, 그는 지은에게 뭐라 말할 새도 없이 끌려가 버렸다.
“어젠 잘 들어갔어요? 팀장님에 굉장히 걱정하시던데.”
“네. 임 대리님이 택시까지 잘 태워주셔서 집에 편하게 갈 수 있었어요. 근데 얼굴이 왜 그래요?”
수혁의 한쪽 뺨이 살짝 부어있었다. 그는 얼굴을 매만지며 대답했다.
“사랑 때문에 생긴 영광의 상처.”
“네?”
엉뚱한 그의 말에 지은은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사실은 취해서 비틀거리다가 벽에 부딪혔어요. 그런데 오늘 아침에 엄청 고생하셨다면서요?”
“고생했다니요?”
지원은 되묻다가, 오늘 자신이 늦게 출근했다는 걸 떠올리며 말을 고쳤다.
“아~ 네. 제가 워낙 술을 마시면 다음날 숙취 때문에 고생하거든요. 어제 섞어 마셔서 그런지 아침에 응급실까지 갈 뻔했어요. 이번 숙취가 꽤 고약하네요.”
“지금은 좀 괜찮아요? 음료수라도 마실래요?”
수혁은 걱정스레 묻자, 지원은 양손을 저으며 말했다.
“아니요, 멀쩡해요.”
“다행이네요. 차는 저쪽에 있어요. 가시죠.”
희건과 동주, 수혁과 지은을 태운 차는 회사를 떠났다. 그리고 40분 후, 그들은 회색 건물로 가득 찬 도심을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자동차 창밖으로 푸르른 산과 강이 보였다. 지은은 마음이 살짝 부풀었다.
“기분이 좋아 보여요. 오랜만에 밖에 나오나 봐요?”
수혁이 밖을 감상하며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는 지은을 향해 말했다.
“요즘 너무 바빠서 서울 벗어날 생각을 못 했거든요.”
“저도 오랜만에 멀리 나오니까 정말 좋네요. 근데 대리님, 저 뭐 하나 물어봐도 돼요?”
그는 지은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네. 얼마든지요.”
쿨하게 대답하는 그녀.
“팀장님이랑 예전부터 알던 사이죠? 계속 긴가민가했는데, 어제 팀장님이 좀 이상하시더라고요. 제가 대리님을 택시 혼자 태워 보냈다고 하니까 어찌나 화를 내시는지. 좀 오버스럽기까지 했어요. 또, 대리님 부를 때도 ‘김 대리’가 아니라 ‘지은이’라고 하시고.”
순간, 지은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이 갑작스러운 질문에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별 사이 아니에요. 그냥 대학 때 같은 과 선배였어요.”
“아, 두 분이 같은 대학 나왔구나. 근데 그냥 같은 과 선후배 사이 맞아요? 그것 보단 더 친해 보이던데.”
수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냥 같은 과 선후배 사이 맞아요. M.T 때 술잔 기울이면서 말 한두 마디하는 사이였어요.”
“그럼 왜 처음부터 둘이 알던 사이라고 말 안 했어요? 팀장님도 그렇고, 대리님도 그렇고.”
“굳이 말할 이유가 없죠. 4년 동안 같은 교수한테 같은 수업 들었는데, 누군 갑이고 누군 을이고. 좀 민망한 상황이잖아요.”
“아, 그랬구나.”
티 나게 둘러대는 지은의 모습에 수혁은 원하던 답변을 얻지 못한 듯한 표정이었지만, 더는 그녀가 진실을 말할 것 같지 않아 질문을 그만두기로 했다.
다른 차에 타고 있는 희건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동주는 그를 어떻게 뜯어먹어야 할지 고민하는 사자처럼 쳐다만 보고 있었다.
동주는 요 며칠간 희건이 달라졌다는 걸 느꼈다. 눈빛부터 목소리, 손짓,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까지. 늘 밝은 미소로 사람들을 살갑게 대하던 그가 다른 감정들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특히 그런 감정은 지은을 대할 때 확연히 드러났다. 그는 이유 없이 지은에게 차가웠고, 까탈스러웠다. 하지만 이따금 다정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기도 했다. 동주는 참 서운했다. 희건은 자기한테 한 번도 그런 눈길을 준 적이 없었다. 회사에 입사해서 지금까지 희건을 좋아하는 마음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며 쫓아다녔지만, 그는 놀랍도록 한결같은 태도를 유지했다. 도무지 자신을 동료 이상으로 봐주지 않았다.
“팀장님, 김 대리님이랑 뭐 있죠?”
느닷없는 동주의 질문에 운전대를 잡고 있던 희건은 잠시 멈칫했고, 이내 표정을 관리하며 그녀를 바라봤다.
“내가 김 대리랑 뭐 있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요즘 팀장님 좀 이상한 거 알아요? 기분이 오락가락. 가끔은 이유 없이 오버스럽게 행동하기도 하고요. 특히 김 대리님 앞에선 더요.”
“내가 김 대리 앞에서 어떻게 행동하는데?”
“평소와 다르게요. 더 감정적이세요. 김 대리 오기 전엔 어쩜 저렇게 완벽한 사람이 있나 싶었는데, 지금은 그냥 남자 같아요.”
“무슨 말이야? 그게?”
“팀장님이 김 대리한테 남자처럼 행동하신다고요.”
“남자니까 당연히 남자처럼 행동하지. 그리고 난 여느 때와 똑같이 행동했어. 남.자.사.람.처럼 말이지.”
“아니요. 요즘엔 그냥 남자였어요. 남자 사람 말고, 남.자.요.”
희건은 무언가를 꾹 참는 듯, 눈을 지그시 감은 후 대답했다.
“그래. 남자처럼 행동했나 보다. 네 마음대로 생각해.”
“그럼 저한테도 남자처럼 행동해주세요.”
당돌한 동주의 말에 희건은 잠시 그녀를 쳐다보더니 단호하게 말했다.
“동주야. 이 이야긴 예전에 다 끝냈잖아. 나한테 동료 이상의 다른 마음을 품지 마. 넌 아니야.”
동주는 금방 울 것 같은 눈으로 희건을 바라봤다. 희건은 ‘아차’ 싶었다. 이런 직격탄을 날리는 게 아닌데…
반년 전, 동주는 희건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했었다. 하지만 희건은 동주가 여자로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녀의 마음을 거절했다. 그 후, 동주는 꼬박 3일을 앓아누웠다. 밥을 먹어도 토하고, 책상에 앉아있어도 앉아있는 게 아니었다.
“미안, 내 말이 좀 심했다.”
“아니에요. 맞는 말인데요, 뭘. 팀장님은 저 같은 거, 동료 이상으로 안 보잖아요. 근데요. 저 그때 팀장님한테 단칼에 제 마음 거절당하고, 좋아하는 감정을 지우려고 했는데, 그게 잘 안됐어요. 지우고 지우고 또 지우려고 노력했는데 오히려 팀장님이 더 좋아졌어요.”
희건은 뭔가 곰곰이 생각하다, 어렵게 입을 열었다.
“동주 대리, 좋아하는 감정을 지우는 건 ‘외면’에서 시작해. 앞에 그 사람이 서 있어도 마치 다른 사람이 서 있는 것처럼 대하고, 우연이라도 마주칠 것 같은 길은 일부러 돌아가고, 행여 좋아하는 마음이 다시 생겨도 그건 좋아하는 마음이 아닐 거라고 무시하고. 그런 게 감정을 지우려고 노력한다는 거야. 하지만 넌 어땠어? 내 모습 하나하나에 신경 쓰고, 내가 어딜 가든 쫓아다니고, 특히 누가 나한테 다가오기라도 하면 독한 말로 망신 주거나 괴롭히기 일쑤였잖아. 넌 니 마음대로 하는 행동이었겠지만, 그런 니 모습 때문에 사람들은 상처 받아. 요즘 너, 김 대리를 ‘을’이라고 하면서 일부로 야근시키고, 창피 주고, 뒷담화하는 거 다 알아. 자신의 지위를 악용해서 사람들 못살게 구는 거, 내가 제일 싫어하는 짓이야.”
희건은 말을 마치고 동주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녀는 숨을 꾹 참고 있었다.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기 직전이었다.
“팀장님, 지금 김 대리 편드는 거예요? 진짜 김 대리 좋아해요?”
“지금 내가 너한테 한 말의 핵심을 모르겠어? 난 지금 내가 김 대리를 좋아하고 말고의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야. 너에 대해서 말하는 거야. 그동안 너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말이야.”
희건이 동주를 또 한 번 다그치자, 그녀는 상처 받은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내릴래요. 회사로 돌아갈래요.”
“어린애처럼 굴지 마.”
“저 어린애 맞아요. 팀장님이 여자로 못 느낄 정도로 어린애예요. 그러니까 내릴래요.”
희건은 숨을 한 번 고르고 말했다.
“그만하자.”
“뭘 그만해요?”
“이동주, 너 선을 넘고 있어.”
“그럼 이것만 확실히 말해요. 팀장님, 김 대리 좋아하죠?”
“너 진짜 자꾸 이럴래?”
희건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자꾸 쏘아대는 동주의 말에 짜증이 날 대로 난 탓이었다.
동주는 놀란 표정이었다. 그가 이렇게 소리를 지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희건 스스로도 자신의 모습에 매우 놀랐다. 더 짜증 나는 상황에서도 이성을 잘 유지하던 그였다. 왜 자꾸만 지은의 이야기만 나오면 감정 조절이 안 되는 걸까?
“저 진짜 내릴래요.”
그녀는 손으로 눈물을 대충 훔친 뒤,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어 수혁에게 전화를 했다.
“임 대리님, 저랑 서울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아요. 급한 일이 생겼거든요. 일은 팀장님이랑 잘난 김 대리님이 알아서 하신대요.”
희건은 뒤늦게 그녀에게 사과하려고 했지만 동주는 몸을 그와 반대편으로 돌린 채 도통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단단히 화가 난 것 같았다.
“팀장님, 차 세워주세요.”
수혁의 차에 탄 동주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수혁은 궁금했다. 이제 30분만 더 가면 목적지 도착인데, 무슨 급한 일이 있기에 다시 서울로 돌아가자는 걸까? 그는 동주에게 묻고 싶은 게 산더미였지만, 자신의 차에 올라탄 이후로 무서운 얼굴로 묵언수행으로 일관하는 그녀를 보니 섣불리 말을 걸 수 없었다.
지은도 마찬가지였다. 동주와 차를 바꿔 타면서 희건에게 무슨 일인지 묻고 싶었지만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는 무언가에 단단히 화가 난 듯한 표정이었다. 이전엔 본 적이 없는 모습이었다.
희건은 목적지에 다다를 때까지 아무 말도 없었다. 지은도 딱히 말을 걸진 않았다. 캠핑장에 도착한 둘은 차에 싣고 온 짐을 체크하고, 각자 맡은 일을 묵묵히 했다. 처음부터 지은과 희건, 둘만 이곳에 온 것처럼 말이다.
볼 일을 마친 둘은 다시 차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내비게이션의 예상 도착 시간은 오후 9시였다. 차 안에서도 둘의 침묵은 계속됐다. 참다 참다못한 지은이 입을 열었다.
“무슨 일 있었어요?”
희건은 지은을 조용히 바라봤다.
“별로. 그냥 동주 대리한테 내가 말실수를 좀 했어.”
“말실수요? 팀장님이 동주 대리한테 그냥 어떤 말실수를 했는데, 집에 돌아가요?”
“개인적인 일이야. 너한테 말할 이유 없어.”
그는 차갑게 대답했다. 지은은 그런 희건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강산은 10년만 흘러도 변하지만, 사람은 100년이 흘러도 잘 안 변한대요. 지금 팀장님이 겪은 일, 분명 그냥 아무것도 아닌 일은 아닐 거예요. 왜냐면 팀장님 표정이 별일이 있었다고 말하거든요. 못 미덥겠지만, 저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털어보는 건 어때요? 여자로서 동주 대리의 입장을 잘 설명해 줄 수 있잖아요.”
희건은 잠시 지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동주가 내가 널 좋아하냐고 물었어.”
“네?”
지은은 놀라 되물었다.
“동주가 내가 널 좋아하냐고 물었다고.”
“그게 무슨…”
“네 생각은 어때? 내가 널 좋아하는 것 같아?”
지은의 눈이 동그래졌다.
“제가 팀장님 마음을 어떻게 알아요? 그건 팀장님만 알 수 있는 건데. 혹시 저 좋아하세요?”
“지은아,”
그는 다정하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지은의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지은아, 밥 먹고 이야기하자.”
희건은 작은 국밥집 앞에 차를 세웠다. 무엇을 기대한 걸까? 지은은 알 수 없는 허탈감을 느끼며 차에서 내렸다.
작고 허름한 국밥집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둘이 자리를 잡자마자 주인아주머니는 자연스럽게 국과 밥을 두 사람 앞에 내려놓았다. 둘이 이렇게 마주 앉아 밥을 먹는 건 6년 전 그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잘 먹겠습니다.”
밥상을 사이로 흐르는 어색함에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갈 리 만무했지만, 지은은 평소처럼 행동하려고 애썼다. 그녀는 국에 밥을 넣고는 숟가락으로 잘 말았다. 희건도 밥을 푼 후, 국에 넣었다. 지은은 조용히 국밥을 먹었다. 아니, 입에 국밥을 쑤셔 넣었다. 무슨 맛인지 잘 느껴지지도 않았다. 희건은 잘 먹는가 싶더니, 별안간 들고 있던 수저를 테이블에 탁 놓았다.
“너 아까 물었지? 내가 너 다시 좋아하냐고. 나 너 다시 좋아하는 거 아니야.”
희건의 말에 지은은 무안한 듯 그를 향해 웃어 보였다.
“어쩐지. 저도 그럴 일 없다고 생각했어요.”
“난 널 다시 좋아하는 게 아니라, 계속 좋아하고 있어. 지난 6년 간 한 번도 널 잊은 적이 없었어. 넌 잘 모르겠지만, 나 너 계속 찾아다녔어.”
지은은 놀란 눈으로 희건을 바라보았고, 그는 말을 이었다.
“우리 다시 만나.”
그녀는 수저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숨을 잠시 고르고는 입을 열었다.
“못 들은 걸로 할게요.”
지은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지만, 다시 의연해졌다.
“아니, 다시 만나.”
“예전에도 같은 대답을 했고 이번에도 같은 대답이에요. 저 팀장님이랑 만나고 싶지 않아요. 우린 맞지 않아요.”
지은은 단호했다. 희건은 그런 그녀를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너 그때 나한테 다시 돌아오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 선배 생일 파티 때 말이야.”
6년 전,
희건에게 이별 선언을 한 지, 20일이 지났다. 지은은 그가 몹시 그리웠다. 다신 보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했지만, 그럴수록 더 그리웠다. 사람은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잊혀진다고 누가 말했나. 지은에게 그 말은 순 뻥이었다.
지은은 희건이 싫어서 헤어진 게 아니었다. 그저 그녀는 그를 더는 감당할 수 없었다. 소위 말하는 빵빵한 집안에, 잘 생겨도 너무 잘 생긴 외모, 그리고 명석한 두뇌까지. 누가 봐도 자신에게 분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희건은 지은을 늘 작아지게 만들었고, 그런 게 쌓이고 쌓여 그녀는 그에게 이별을 고했다. 하지만 지은은 한 번 더 사랑이란 감정을 믿고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희건의 손을 다시 잡기로 했다.
희건에 대한 결심이 다시 섰을 때, 지은은 자신의 방 책상에 앉아있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됐다. 당장 희건을 만나서 이 마음을 전해야 했다. 실은 정말 많이 사랑한다고.
지은은 대충 옷가지를 걸쳐 입었다. 그리고 지갑을 들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희건이 있는 과 선배의 생일 파티에 가야 했다. 그를 마주치고 싶지 않아 가지 않으려 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를 꼭 만나야 한다.
그녀가 생일 파티가 열리고 있는 카페에 도착한 시간은 11시였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파티장의 분위기는 이제야 제대로 달궈진 것 같았다.
사람들로 가득한 카페 안. 지은은 사람들을 일일이 비집고 다니며 희건을 찾았다. 그녀는 곧 그를 발견했지만, 다가갈 수 없었다. 희건은 한껏 멋을 부린 예쁜 여자들과 멋지게 차려입은 선후배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지은은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았다. 후줄근한 곰돌이 후드티와 츄리닝 바지, 그리고 맨발에 구겨 신은 운동화.
“어? 지은이 아니야? 근데 쟤 옷이 왜 저래?”
지은을 발견한 여자 선배가 큰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그녀는 창피함으로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고, 희건과 눈이 마주쳤지만, 급히 몸을 돌려 밖으로 향했다. 그때, 희건이 지은에게 달려가 그녀를 뒤에서 와락 안았다. 그는 감격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너 나 보러 온 거지?”
“…”
카페의 모든 이의 시선이 둘에게 쏠렸다. 다들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분명 둘은 헤어졌다고 했는데 어쩜 이런 달달한 그림을 만들어 내는 걸까.
지은은 화려하게 차려입은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었다. 희건의 품에 안겨있었지만, 그들이 자신을 쳐다보는 눈빛은 참으로 묘했다. 그건 축하나 부러움이 아닌 시기와 질투, 그리고 연민이었다. 지은은 희건에게 여전히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지만, 갑자기 자신이 없어졌다. 앞으로 사람들은 계속 날 이렇게 바라볼 것이다.
‘과연 내가 이 연애를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지은은 자신을 꼭 안은 희건의 두 팔을 손으로 풀었다.
“미안, 나 확실히 오빠랑 끝내고 싶어서 왔어. 잘 있어.”
지은은 그의 팔을 풀며 밖으로 나갔고, 희건은 허탈한 표정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6년 후,
희건은 지은이 뭐라도 말하지 않으면 절대 물러서지 않을 듯한 표정이었다. 그는 꼭 그녀의 대답을 들어야 했다.
지은과 헤어진 희건은 그녀를 계속 찾아다녔다. 지은은 곧 휴학을 했고, 호주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희건은 지은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하지만 그녀는 학교로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지은을 꼭 다시 만나야 했다. 헤어진 이유를 모르고 헤어진 건, 헤어진 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미련이란 얇고 긴 끈이 그를 계속 묶고 있었다.
그로부터 몇 년이 흐르고, 희건은 자신의 일터 앞에서 지은을 만났다. 그녀는 여전히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우스꽝스러운 행동마저도 사랑스러웠다. 희건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지은을 향한 감정이 6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을 수 있는지.
“그래요. 솔직히 까놓고 말할게요. 팀장님, 아니, 희건 오빠. 저 대학교 때 오빠가 고백하기 전부터 이미 오빠를 좋아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막상 사귀니까 너무 부담스러웠어요. 맞지도 않는 다이아몬드 반지를 억지로 손가락에 구겨 넣고 있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지금도 그래요. 오빤 어린 나이에 벌써 팀장 자리를 꿰찼고, 외모는 더 멋있어졌어요. 여전히 저같이 보잘것없는 여자가 마다할 이유가 없는 남자죠. 하지만 저 또 바보처럼 살고 싶지는 않아요. 주눅 들고 싶지 않아요. 저 오빠랑 헤어지고 호주에서 미친 듯이 살 빼고, 열심히 공부해서 편입했어요. 졸업하고선 대기업은 아니지만 괜찮은 직장에 들어가 자리 잡았고요. 이제 겨우 절 인정해주는 사람들이 생겼어요. 그런데 저 오빠를 다시 좋아하면 김지은이 아니라 정희건의 여자친구가 돼버려요. 오빠의 그림자에 가려지겠죠.”
희건은 아주 안쓰러운 얼굴로 지은을 바라봤다.
“그래. 우리의 조건과 상황, 무시 못 해. 그런데 난 그것보다 네 마음을 더 알고 싶어. 넌 나 다시 보고 아무렇지도 않았어? 아무런 감정도 없었어?”
지은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솔직히 아무 감정이 없진 않았다. 희건을 만난 이래로 그녀의 눈은 그를 향해 있었으며, 귀는 그의 목소리를 쫓고 있었다. 지은은 자신이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바보 같이 헤어진 남자에게 관심을 가지다니…. 더욱이 어제 새벽 길거리에서 떨고 있던 자신을 그가 찾아주었을 땐 고마움, 그 이상의 감정이 들었다.
“아무 감정도 없었다고 말 못 해요. 정말 좋아했던 사람을 6년 만에 다시 만났는데,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어요? 하지만 확실한 건 전 또다시 그 가시방석 같은 연애를 할 수 없다는 거예요.”
“내가 부담스러워서?”
“네. 오빠처럼 외모도, 학벌도, 집안도 완벽한 사람, 꿀리는 게 하나도 없는 사람, 제겐 과분해요.”
희건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은아, 그냥 내 모습 그대로를 봐주면 안 돼?”
“오빤 내 입장이 아니라 모르겠지만, 나 그때 정말 가진 거 하나도 없었어요. 대학교도 학자금 대출받아서 과외 알바로 갚으면서 간신히 다녔고, 10년 동안 모은 적금으로 호주 워킹 가서 죽도록 일하면서 영어 공부했어요. 이런 내 상황, 오빤 알고 있었어요? 봐요, 하나도 몰랐잖아요. 오빠 같은 부잣집 도련님은 짐작도 못 했을 거예요.”
한바탕 몰아 말한 지은은 감정이 북받쳐 오른 것 같았다. 희건은 그녀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나. 갈 데가 있어.”
“갑자기 어딜 가요?”
“그냥 따라와.”
운전대를 잡은 그는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표정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뭔가 단단히 결심한 모습이었다. 반면, 지은은 희건이 자신을 어디로 데리고 가는지,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었다. 그에게 몇 번이고 물어봤지만, 대답이 없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지은은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어버렸다.
‘덜컹-'
차가 큰 턱을 지난 것 같았다. 지은은 부스스 눈을 뜨며 잠에서 깼고, 무의식적으로 밖을 쳐다봤다. 완전한 어둠. 9시가 좀 넘은 시간이었다.
“깼어? 커피 좀 마시고 있어.”
차량용 컵홀더에 따뜻한 커피가 있었다. 지은은 커피를 들어 뚜껑을 벗겼다. 커피 향이 코끝에 닿았다.
“향이 좋네요. 어디서 산 거예요?”
“대학교 때 자주 갔던 집 근처 카페에서. 이제 다 왔어.”
차가 멈췄다.
“여기가 어딘데요?”
“곧 알게 될 거야. 일단 내리자.”
지은은 커피를 들고 차에서 내렸고, 이내 반짝이는 서울의 야경을 볼 수 있었다. 차가 선 곳은 서울 시내의 높은 곳 중 하나인 것 같았다.
“예쁘네요. 도시가 빛으로 가득해요.”
“응. 멋진 광경이지. 그런데 오늘 내가 여기 널 여기 데리고 온 건, 저걸 보여주고 싶어서가 아니야. 뒤를 돌아봐.”
그의 말에 지은은 몸을 반대편으로 돌렸다. 그곳엔 작은 불빛들이 층층이, 그리고 빽빽하게 모여있었다. 흔히 말하는 달동네였다. 말도 안 되게 허름한 집들이 계단식으로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이곳은….”
“맞아. 여긴 찢어지게 가난한 동네야. 아직 서울 시내에 이런 곳이 남아 있는 게 신기할 정도로 후진 곳이지. 저쪽, 가로등 옆 파란 대문 보여?”
희건은 언덕 중간쯤에 있는 집 하나를 가리켰다.
“네. 보여요.”
“나 너랑 사귀었을 때 저 집에서 살고 있었어.”
“네?”
지은은 놀란 눈으로 희건을 쳐다봤다.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니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우리 집은 굉장히 가난했어. TV 드라마를 보면 자주 나오는 설정 있잖아. 가난한 것도 서러운데 부모님 여의고 그런 거. 웃기게도 그게 내 이야기였어. 어머니는 나 낳고 산후조리를 제대로 못 해서 병을 얻어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고 3 때 간암으로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셨어. 나도 참 웃긴 게,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도 장례식장에서 수능 공부했어. 이젠 정말 혼자가 됐으니까, 믿을 건 나밖에 없더라고.”
지은은 놀란 얼굴로 희건을 바라봤다. 그는 말을 계속했다.
“그런 표정 짓지마. 난 지금 너한테 동정받으려고 이러는 거 아니야. 내 앞만 서면 자격지심에 주눅이 들고, 자존감이 사라진다니까, 그동안 못 해줬던 이야기를 확실하게 해주고 싶었어. 어쨌든 난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서 장학금 받아 대학에 입학했고, 과외와 피팅 모델 알바로 돈도 제법 모았어. 사실, 대학 때 사람들의 오해가 날 더 편하게 만들었어. 나랑 동명이인이었던 대기업 임원 아들이 대학 등록만 하고 학교에 안 나오니까, 사람들이 나랑 그 인간을 동일 인물이라고 멋대로 착각한 거지. 그들이 날 우러러보던 모습, 그 우월감. 솔직히 편하고 좋았어. 그런데 어느 날, 어떤 여자애를 본 거야. 아직 고등학생 티가 남아있는 귀여운 신입생. 그 친구는 누구나 다 조는 교수님 강의도 열심히 듣고, 조별 발표를 할 땐 늘 뒤처지는 친구를 챙겼어. 화려하고 튀진 않았지만 난 그때의 그녀를 참 좋아했어. 그런데 그 친구가 날 잘 견디지 못하더라고. 거짓말로 가득했던 내 모습이 너무 부담스러웠던 거야. 그녀에게 사실을 말할까 했는데, 내가 좀 비겁했어. 거짓말로 얻은 편의를 버릴 수가 없었거든. 또, 내가 가진 게 없는 사람이란 걸 그녀가 알게 된다면 얼마나 배신감을 느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어. 그게 잘못이었어. 사실대로 이야기하지 않은 거. 곧 우리 둘 사이엔 오해가 생겼고, 그게 심각해져서 헤어졌어. 하지만 나 그녀를 잊지 않았어. 다시 만나서 꼭 제대로 사랑하고 싶었어.”
“절 다시 만나고 싶었다고요? 진심으로요?”
지은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응. 하지만 지금의 넌 6년 전과 변한 게 없어. 충분히 자신감을 가져도 될 외모와 능력이 있지만, 아직도 내 과거에 묶여있어. 과거의 내가 널 지독하게 괴롭혔던 탓이겠지?”
“….”
전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던 이야기. 지은은 무어라 말을 잇지 못했다.
“근데 나, 더는 너 안 잡을 거야. 이제 결판 내려고. 다시 말할게, 김지은. 나랑 다시 만나.”
희건은 결연한 표정이었다. 오늘 지은의 결정에 따라 다시는 그녀를 보지 않을 수도 있는 얼굴이었다. 지은은 복잡했다. 무엇보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그녀가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았던 희건. 늘 자신만만하고 반짝반짝 빛났던 그에게 이런 면이 있을 줄은 짐작도 못 했다.
지은은 밤하늘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30분이 흘렀지만, 희건은 그녀의 답을 재촉하지 않았다.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오래전, 우리 둘 사이에 있었던 일은 좋은 추억이라고 생각해요. 많이 다투고 오해도 했지만, 그때 참 행복하고 좋았어요.”
정적 속에서 지은이 겨우 입을 뗐다.
“하지만 제가 가진 그 자격지심은 쉽게 없어지지 않을 거예요. 오빤 여전히 멋진 외모를 가졌고, 만월 그룹에서 이례적일 정도로 어린 나이에 높은 직급을 달았어요. 오빠가 돈이 없고, 부모님이 대단한 분이 아니라고 해도 오빠는 여전히 반짝반짝 빛나고 있어요. 제가 이렇게 지질한 마음으로 계속 살아간다면, 전 오빠를 예전과 똑같이 대할 거고, 그럼 우린 같은 모습으로 다시 헤어질 거예요. 오빠의 배경이 뭐였건 이젠 문제가 되지 않아요. 문제는 저예요. 제 부족한 모습이요.”
“후회 안 해? 나 이렇게 괜찮은 남잔데?”
“할 거예요, 후회. 어쩌면 나중에 제가 오빠를 찾아갈지도 몰라요. 근데 그건 진짜 나중에 생각하려고요. 피곤하네요. 우리 이제 집에 돌아갈까요?”
지은은 빙긋이 웃으며 희건에게 말했다. 희건도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