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종료
아침부터 시작된 마라톤 회의를 마치고, 희건은 한 손에 커피가 든 컵을 든 채 자리로 돌아왔다. 어제 오랫동안 운전을 한 탓인지 몸이 고단했다. 그는 약간은 무거운 마음으로 파티션을 너머로 고개를 내밀고 지은을 쳐다봤다. 그녀는 이메일을 쓰고 있었다.
희건은 아침에 잠시 그녀와 마주쳤었다. 굉장히 어색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편했다. 이제야 그녀와 자신이 헤어진 이유를 제대로 알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았다. 그렇다고 지은을 향한 마음이 사라진 건 아니다. 그는 여전히 그녀가 좋았지만, 마음을 접어야 한다. 어제 동주에게 말했던 것처럼 자신의 감정을 외면해야 한다.
“저기요. 팀장님.”
어느새 동주가 몹시 딱딱한 표정을 하며 그의 앞에 서 있었다.
“어. 동주 대리. 무슨 일이야?”
“저... 더는 안 되겠어요.”
그녀는 사직서라고 쓰인 흰 봉투를 희건에게 내밀었다.
희건은 동주를 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안 되긴 뭐가 안 돼. 나 이거 처리 못 해. 도대체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어? 이유 불충분이야.”
“이유 불충분이라니요!”
그녀는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때, 수혁이 얄밉게 웃으며 동주의 뒤에서 불쑥 나타났다.
“이럴 줄 알았어. 어제 홍성까지 다가서 왜 서울로 돌아왔나 했더니, 너 팀장님한테 고백했다가 또 차였지? 넌 차일 때마다 사직서를 내더라. 그러다 팀장님이 진짜 사직서 수리하면 어쩌려고. 아니다. 팀장님 그냥 수리해버리세요. 얘도 더는 쪽 팔려서 회사 못 다닐 거예요.”
희건은 동주의 사직서를 들어 올렸다.
“그럴까? 확 처리해버릴까?”
“벌써 다섯 번째 사직서는 될걸요? 동주 대리가 팀장님 빠순이잖아요.”
“임 대리님, 좀 조용히 하시죠?”
동주가 도끼눈을 뜨며 수혁에게 말하자, 그는 황급히 시계를 바라보았다.
“어?! 벌써 점심시간이네. 팀장님, 오늘 김 대리님은 오전 근무만 하고 회사로 돌아간다는데, 점심은 같이 먹고 헤어지죠? 동주 대리는 시련당해서 밥이 잘 안 넘어가겠지만, 그래도 김 대리님이랑 가장 오래 일했으니까 같이 데리고는 가요. 저기, 김 대리님~”
동주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수혁이 지은을 불렀다. 지은은 짐을 다 챙기고 사람들에게 인사하고 나갈 참이었다.
“네? 무슨 일이세요?”
“섭섭하니까 그냥 가지 말고, 같이 식사라도 하고 가세요.
수혁이 말하자, 희건이 옆에서 거들었다.
“그래, 밥 먹고 가.”
“그래요. 마지막이니까, 먹고 가요.”
동주도 새초롬하게 말했다.
“네. 대신 맛있는 거 사주셔야 해요!”
지은은 웃으며 대답했다.
지은의 다사다난했던 만월 그룹의 파견 근무는 이렇게 끝이 났다. 고마운 것도, 아쉬운 것도 많은 날들이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희건을 다시 만나서 참 다행이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