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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주 Apr 22. 2023

산책의 즐거움

같이 걸어서 더 좋아.


요즘 나는 산책의 즐거움에 빠졌다. 추웠던 날이 풀리고 선선해진 덕분인가? 저녁식사 후 가볍게 옷을 입고 나가 가족들과 집 근처를 돌아다니는 시간이 너무 즐거워 웬만하면 매일 나가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급하게 출근 준비를 하고 출근길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정신없이 직장에서의 시간을 보내다 퇴근을 하는 일상. 퇴근을 하면 아이를 챙겨서 집에 와 아침의 모습과 비슷하게 급하게 저녁준비를 하고 아이에게 밥을 먹이고 남편과 저녁식사를 챙겨 먹는 매일. 그리고 시간이 남으면 TV를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책 좀 읽다가 취침 준비를 하는 하루들. 


여기에 산책 하나 더했을 뿐이다. 짧으면 30분, 길면 1시간. 하루 24시간 중 얼마 되지 않는 이 시간은 어느새 내가 하루 중 가장 기다리는 시간이 되었다.



우리 집 근처가 바닷가라던지 큰 공원이라던지, 대단한 산책길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걷는다. 남편과 아이와 함께 아파트단지를 한 바퀴 돌며 서로 직장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고, 유튜브에서 봤던 뉴스거리들을 말하기도 하고, 가끔은 도하의 옹알이에 장단을 맞추기도 하는 산책길. 그러다 근처 놀이터를 발견하면 미끄럼틀을 몇 번 더 타고 집에 들어올 때도 있고, 어떤 날은 괜히 분위기를 내고 싶어 동네 카페에 가서 커피 한 잔을 하기도 한다.


그간 여러 에세이들을 읽으며 땅에 발을 딛는 시간들을 즐기는 작가들의 일상을 크게 공감하지 못했었다. 뭐가 그렇게 좋은 걸까 했었는데, 이제 조금씩 그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특히 산책을 하는 동안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 생각들을 하나하나 비워가는 게 좋다. 오늘의 이야기에만 귀를 기울이고, 지금의 우리에게만 집중하게 되는 시간. 그래서 오늘 남편이 없는 시간에도 굳이 아이와 집 뒷산을 올라가기도 했다. 아무 생각을 안 하고 천천히 땅을 딛는 그 시간이 좋아서.



매일 걷는 산책길은 항상 같은 길 같지만, 그날그날 나의 기분은 조금씩 다르다. 날씨도 매일 다르고, 하늘 위에 보이는 달의 위치도 다르다. 하물며 눈에 보이는 별의 갯수도 늘 다르다. 어떤 날은 유독 발걸음이 가볍기도 하고, 어떤 날은 내 곁의 남편 표정이 더 밝기도 하다. 함께 걷는 아이의 컨디션이 좋아 뛰어다니는 날이 있기도 하고, 어떤 날은 잠이 곧 쏟아질 것만 같은 표정을 하고 있어 금방 집에 돌아가기도 한다. 


그래서 더 좋다. 매일 비슷한 일상이라 지루할 수도 있는 나에게, 어제와 같지 않다고 말해주는 시간이라서. 덕분에 내일이 지루할 거라는 생각을 안 하게 해 줘서.



아마 내일 아침도 오늘과 같은 시간에 눈을 뜨게 될 거다. 늘 듣던 알람 소리를 들으며. 그리고 늘 같은 시간에 출근을 해 퇴근시간 전까지 직장에 있겠지? 오늘과 똑같은 일정을 보낼 내일이지만, 내일 저녁 이 산책길은 아마 오늘과 다르지 않을까. 내일을 기대하게 해주는 취미가 생긴 건 꽤나 좋은 일인 것 같다. 나에게도, 남편에게도. 그리고 같이 그 길을 걸어 다니는 20개월 된 우리 아들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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