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이 하나 워킹맘, 드디어 퇴사했습니다.

내 꿈은 '직장 없는 삶'.

by 영주



KakaoTalk_20240305_162812978_10.jpg

한 달간의 휴식이 끝났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30일 동안 나와 우리 가족에게 집중 한 삶을 살았다.


그리고 평소의 나답지 않게,

한 달 뒤에 다시 일하러 갈 건데 뭐 어때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그냥 흘러 보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들도 많았고,

별생각 없이 친구들을 만나러 간 시간들도 많았다.


예전이었으면 뭐라도 더 해야 한다며 안 달나 있었을 하루들을

그냥 보낸 것이다.


KakaoTalk_20240305_162812978_08.jpg


그렇게 시한부처럼 한 달을 쉬며 다가올 출근일을 기다리는 데,

출근할 생각만 하면 가슴이 너무 답답했다.


애써 모른 척했지만,

아이를 낳은 이후부터 들었던 의문들.

언제까지 일을 해야 하는 걸까?


일도

가정도

나조차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되지 않는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살고 있는 걸까.


지금 돈이 모자란가.

모자라다면 어디까지 더 벌어야 하는 걸까.



그렇게 시작된 고민은 끝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KakaoTalk_20240305_162812978_01.jpg


사실 나는 별 욕심 없는 사람이다.

그냥 적당히 사는 게 꿈인 사람.


그 적당히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많은 소득이 아니라도

적당히 돈을 벌고

적당히 아이를 키우면서

남편과 알콩달콩 사는 게 꿈인 사람이다.



그런데 대학을 들어갔을 때부터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우리 집은 다른 집만큼도 사는 집이 아니었구나.

너무 잘 사는 집들이 많구나.

빨리 돈 벌러 가야겠다-


KakaoTalk_20240305_163845784.jpg

그래서 졸업하기도 전,

24살의 나이에 취업한 건설회사.


적성에 맞는 과를 간 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름 전공을 살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취득한 자격증을 가지고 취직을 했다.



새벽 6시 30분 출근, 오후 6시에 퇴근.

월급은 잘 나왔고, 그렇게 내 삶은 자본주의에 물들어 갔다.



더 열심히 일을 해야 해. 그래야 진급을 하지.

자격증도 더 따야 오래오래 회사를 다닐 수 있을 거야.


만 2년 동안 회사를 다니던 나는 일을 더 오래 하지 못했다.

그 이후로도

이런 일도 해보고 저런 일도 해보며

많은 일들을 경험해보기도 했었다.



KakaoTalk_20240305_162812978.jpg


누구 말대로 운은 좋았다.


나름 괜찮은 회사들에 취업이 잘 됐고,

언제나 내 월급은 적당했다.


결혼 후 취업한 회사도 2년간 다니다

아이를 임신하며 일을 그만뒀었는데,

출산 후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언제나 회사는 나에게 적당한 월급을 주었고,

내 삶에서 출근과 퇴근은 너무도 당연했다.


KakaoTalk_20240218_153846705_04.jpg


이직을 여러 번 하는 나와 달리

남편은 날 만난 첫 회사를 아직도 다니고 있다.

꾸준히 한 회사를 다니고 있는 그를 보고 있으면

출근과 퇴근이 나만큼의 스트레스가 아닌 것 같아 보였다.


일이 적성에 맞는 편이라고 종종 말하는 남편이

너무 신기했고, 그저 부러웠다.


나도 정신 차리고 살아야지.

모두들 직장생활은 힘들대.

남에 돈 받는 게 쉬운 줄 아나.



가끔 회사에서 일을 하다 보면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속이 너무 답답하고, 곧 쓰러질 것만 같은 느낌이 여러 번이었다.

근데, 남들도 힘들 다 하니깐 다 이런 걸 버티고 다니는 줄 알았다.


정신 차리자를 수십 번 나 스스로에게 외쳤던 날들.


KakaoTalk_20240218_153846705_03.jpg


그런데 이번 한 달의 휴식이

난 내 생각보다 더 절약을 잘하는 편이었고,

어쩌면 내 재능은 회사에서 발휘되지 않는 게 아닐까라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KakaoTalk_20240305_162812978_06.jpg


미니멀라이프 덕분에 줄어든 욕심과 생활비.


우리 가계는 이미 남편의 월급으로도 충분했고,

그간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아온 나의 20대는

무일푼이던 우리 가족에게 조금의 뭔가는 남겨주었다.




KakaoTalk_20240305_162812978_07.jpg
KakaoTalk_20240305_162812978_04.jpg


그래서, 남편과의 상의 끝에 일을 가지 않기로 했다.


출근 생각만 하면 두근대는 심장을 멈추게 하자.

무엇이 널 이렇게 불안하게 만드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쉬어보자.


남편의 격려 덕분에 조금 더 자신감을 얻었다.



그래. 내 꿈은 직장 없는 삶이니깐.

꿈을 한 번 도전해 보자.


KakaoTalk_20240305_162812978_11.jpg


그때 어떻게든 경력을 유지했어야지.

경단녀가 돼버렸으니 이걸 어째.

아이가 더 크면 학원비가 얼만지 알아.

요즘 애들은 돈 많은 부모를 좋아해.

직업 있는 엄마를 좋아한다더라.

남편들도 일하는 여자 좋아하지 집에 있는 거 싫어해.



참 세상에 여러 말들이 많다.

내가 나답게 살아가겠다는 데,

남들 시선을 뭐 하러 신경 쓰나.


그동안 남 눈치 보느라 내 인생을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했다.



그냥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우리 부부가 생각했던 대로 그렇게 살아보자.



KakaoTalk_20240305_162812978_09.jpg


어제 날이 좀 풀렸길래, 아이와 산책을 나섰다.

커피도 한 잔 타서 텀블러에 담아 나선 산책길.


커피 한 모금씩 하며

천천히 아이와 동네 한 바퀴를 도는데


엄마 손 잡고,

아빠 손 잡고 산책하는 아이들이 참 많았다.


직장 다닐 때 내 눈엔 보이지 않던 것들.


KakaoTalk_20240305_162812978_02.jpg


내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 꿈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직장 다니는 것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다.

어쨌든 남편과 나의 꿈은 결국 편안한 노후니깐.


낭비하지 않고 아껴서

또 우리가 하고 싶은 것들은 하고,

아이에게 지원할 수 있는 돈들도 모으고

그렇게 잘 살아보자.


직장 없는 삶을 유지해보자.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내 꿈은 직장 없는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