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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주 Mar 06. 2024

온전한 하루를 즐긴다는 것

별거 없는 일상을 보내고도 내일이 기대된다.


아침 6시 30분이 되면 눈이 떠진다.

잠에서 깨어나면 보통 남편은 출근을 하고 없다.

10분-20분 정도만 더 일찍 일어나면 

남편의 커피라도 챙겨줄 수 있는데, 

아직은 매일 챙겨주는 게 익숙하지가 않다.



그래도, 이제 쉬니깐

남편의 아침을 매일같이 챙겨주고 싶은데

더 자라고 너무 조용히 일어나 나가는 남편의 배려에

눈치 없이 더 자버리고 말았다.


오늘 아침 역시 6시 30분에 일어나 

남편의 아침을 챙겨주진 못했다.



오늘 아침 눈뜨자마자 읽은 책은 숲 속의 자본주의자_


너무 읽고 싶었던 책인데 도서관에 있길래 바로 빌려왔다.

이 책은 참 신기하다. 


읽을수록 글에서 알 수 없는 편안함이 느껴진단 말이지_


1시간 정도 읽었나?


아이가 깨어난 소리가 들려 부리나케 방에 들어갔다. 매일 출근하던 시절엔 7시 30분까지 어린이집에 가야 해서 보통 6시 40분이 되면 아이를 깨우고 밥을 먹였었는데, 쉬면서 알게 된 게 우리 아이는 아무리 일찍 일어나도 7시 30분까지는 잠을 잔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어떤 날은 8시 30분이 되도록 안 일어나기도 하는데 그런 날은 엄청 개운해한다.


그동안 이렇게 아침잠이 많은 아이를 

늘 이른 시간에 깨워서 어린이집에 보냈던 게 

괜히 미안해졌다.




이번에 이사를 하며 어린이집을 옮겨 적응기간 중에 있는 도하.


아직 적응을 못해서 그런가,

원에 도착하자 들어가지 않겠다고 울기 시작했다.


어린이집 앞에 

장난감차를 타고 미끄럼틀을 타며 

한참 동안 시간을 보내니 괜찮아졌는지

그제야 엄마 나 들어갈게 하며

조용히 반에 들어갔다.


괜히 스트레스받게 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아이의 곁에 있어줄 수 있는

편한 오늘의 시간이

새삼스레 또 좋았다.


함께 손잡고 하원한 후 들어온 집.


어제 청소를 해서 깨끗한 신발장 바닥도 한 컷 찍고,




얼마 전 거실에 있던 큰 6인용 테이블을 당근으로 판매한 뒤

새로 들인 이케아 4인용 식탁도 한 컷 찍었다.





아직 예전의 큰 식탁이 그립긴 하지만

식사를 하기도 하고,

커피 한 잔 하기도 하고,

책도 읽기도 하며

점점 정을 붙여가고 있다.



의미 없던 키보드 하나도

온전히 1년을 쓰고 나면 

1년간 괜히 이 키보드 덕분에 글을 잘 썼던 것 같다며 

정이 붙어 버리지도 못하게 된다.


계속 쓰면 쓸수록 정드는 게 물건 아닌가 싶다_

요즘 푸릇푸릇한 게 너무 좋아

화초들을 집에 들였다.


거실 메인으로 온 엄마에게 선물받은 화초.



시장 갔다 집에 오는 길에 만난 작은 꽃집에서 사온 모스.


습기를 먹고 자란다고 해서

주방 싱크대에 뒀는데

볼 때마다 너무 귀엽다.


(설거지할때 괜히 말걸게 됨)


그릇장에도 홍콩야자와 행잉식물을 걸어놨다.




매일 아침을 챙겨주고 있는

씨클리드들도 안농 ㅎ_ㅎ





아이가 낮잠을 자는 동안

아침에 읽던 책을 마저 읽었다.



내 소유의 돈이 작아서 오는 공포심을 조금만 누르면 보인다.



남들이 갖는 필통이나 번듯한 직업, 멋진 소파나 텔레비전에 대한 욕망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이해가 가지 않는 남들의 욕망으로부터 나를 지키고자 하는 욕망이 강했다.



돈은 정확했다. 하루에 몇 시간을 일하면 내일은 얼마만큼 늘어날지 예상할 수 있었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 약속은 지켜졌다. 그리고 돈은 그 자체로 완벽했으니 아무것도 해줄 필요가 없었다.



내가 가진 건 자존감이 아니라 적극적인 탐구 끝에 얻은 나에 대한 이해다. 언제, 어떤 사람들과 함께 행복한지, 무엇이 나를 채워주는지, 어떤 거리감이 좋은지, 나를 아는 만큼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쫓아다니지 않을 수 있다.




하루하루를 돈으로만 봤을 때는

돈을 벌지 못하는 오늘을 보내고 있으면 

가치 없는 시간을 보낸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맞는 말일 수도 있는데

정말 유치한 생각이지만, 정말 만약에

돈을 벌면서도 스트레스를 받고 병을 얻으면 

결국 나는 벌었지만 잃은 게 된다.


그래서 일단은 벌지 못하는 매일을 보내기로 했다.


돈도 못 버는 시간을 

그래도 가치 있게 보내는 법을 

생각해 봐야겠다고 전환을 하자 

눈앞에 신세계 같은 하루하루가 펼쳐졌다.


아이와의 시간이 생겼고,

제테크 공부가 즐겁고,

절약이 즐거워졌다.


출근하는 남편에게 잘 다녀와라고 

인사해 줄 수 있는 시간이


늦잠 자는 아이에게 천천히 밥 먹어라고 

말할 수 있는 여유가


낮 시간을 노동을 하지 않았으면서도 

마음이 불편해지지 않는 풍요로움이.



가치있는 시간을 보내자며

그저 온전히 날 위한 하루를 보냈을 뿐인데

똑같은 일상이 즐거워졌다.



나 어쩌면 앞으로도

온전한 일상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아,


내일이 기대된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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