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이방인의 기록 09
어젯밤 여기서 만난 친구들이 포켓볼을 치러간다고 하며 나에게 같이 가자 한다. ‘와, 이 마을에도 당구장이 있나? 있을 건 다 있네.’ 생각하며 기분 좋게 따라나섰다. 알고 보니 한 마을 구멍가게 앞마당에 당구대가 있었다. 상점은 큰 창이 있고 문이 없는 구조라 상점 안에서 하는 이야기, 텔레비전 소리가 다 들린다. 상점을 운영하는 가족 구성원은 할아버지, 할머니, 한두 살의 어린아이로 보인다. 이 세 명이 큰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다. 백발의 할아버지는 담배를 피우며 무언가를 집중하여 적는다. 아이는 할아버지 옆에서 자기 몸집보다 큰 책가방을 매었다 내려놓았다 하기도 하고, 할아버지한테 장난을 치며 까르륵 웃기도 한다 할머니는 아이의 장난에 아이를 큰 소리로 나무란다.
중국의 마을에는 어린아이들이 많다. 마을 젊은이들은 마을을 떠나 대도시에서 일을 한다. 대도시에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지만, 대도시에서 아이를 기르기에는 형편이 넉넉하지 않다. 중국에는 후커우(户口) 제도가 있어, 인구의 이동에 제약이 있다. 후커우는 일종의 호적 제도인데, EU로 치자면 시민권(Citizenship)과 비슷한 개념이다. 후커우의 유무에 따라, 해당 지역에 주거, 자녀 교육 등 방면의 복지 혜택에 큰 차이가 있다. 농촌에서 태어난 사람은 교육, 일자리 기회를 찾아 대도시로 간다. 이들을 농민공이라 한다. 농민공들은 대도시에서 10년을 넘게 지냈어도 그곳 후커우를 얻기 어렵다. 베이징, 상하이와 같은 1급 도시에는 사람들이 넘쳐나 정부에서 후커우 수를 더욱 제한하기 시작했다. 대도시 후커우가 없는 농민공에게 비싼 자녀 교육비는 큰 부담이다. 따라서 아이들은 고향에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지낸다.
농민공은 도시에 살고 있는 시민이지만, 법제상으로는 시민이 아니다. 값싼 인건비, 낙후된 주거 지역(최근 베이징 화재) 등의 위험에 쉽게 노출되어 있다. 갓난 아이와도 이별해야 한다. 일 년에 한 번 설을 쇨 때 볼 수 있을까 말까 한다. 마을을 떠난 젊은 부부는 멀리 떨어져 있는 아이를 기억하며 대도시에서 하루하루 열심히 일한다. 아이는 일 년에 한 번 정도 볼 수 있는 엄마 아빠를 그리워할까? 지금 눈앞에 걸어가는 노인의 등이 결코 가볍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