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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왈 May 29. 2018

마을로 간 청년 이야기

중국 이방인의 기록 16


류의 아버지가 30여년간 운영해 온 차 가공장


건물은 1976년에 지어졌다고 한다. 내가 이리저리 둘러보니 많이 낡았다고 류의 장모가 겸연쩍어한다. 아주머니를 따라가 보니 주방이다. 기름의 검은 때 범벅이다. 시간의 흔적이 너무나 선명했다. 건너편 건물에는 차 가공장이 있다. 아저씨 다섯 명이 각자의 위치에서 바닥에 널린 찻잎 무더기를 쓸어 담아 기계에 넣기도 하고, 기계 위에 올라가 찻잎을 짓밟는다. 벽에 붙여진 빨간색의 커다란 ‘질량 제일’이라는 글자판 중 하나가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다. 기계는 뿌연 소리와 연기로 공간 전체를 온통 칠한다.     


깨끗하게 정돈된 류가 만든 식당이 그리워졌다. 사무실동 이층에 류가 꾸민 차실을 발견하고는 한숨 돌릴 수 있었다. 반 수면상태로 있었을 때 류의 아내 토토가 들어왔다. 날씨가 덥다고 아이스크림 먹겠냐고 묻는다. 그 물음 자체가 고마웠지만, 생리 중이라 사양했다. 그러자 그녀는 내게 차를 권했다. 라오바이차(老白茶: 백차를 2-3년 정도 묵힌 것)와 야생 녹차를 마시며 우리는 대화를 시작했다.     


토토는 아까 젊은 여성 노동자(32세)와의 짧은 인터뷰가 어땠냐고 내게 묻는다. 그 여성은 내 눈도 잘 마주치 지를 않았다. 나는 그가 내 질문을 꺼려하고 어서 빨리 그 자리를 떠나려고 하는 듯했다고 토토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토토는 그가 단지 부끄러워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처음 만나는 외국인에게 곧바로 자기와 마을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를 하기가 쉽지 않다고 얘기한다. 어제 내가 똑같은 질문을 토토에게 했을 때, 그는 나름 솔직하게 속마음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의 모친이 부정적인 이야기를 왜 굳이 하냐고 그녀에게 주의를 주었다.     

 

그 여성 노동자는 꽤 괜찮은 사람이다. 그는 오늘 급여를 받으러 여기에 왔다. 계산이 잘못되어 급여가 더 나간 사실을 솔직하게 토토에게 말해 정당한 양의 급여를 챙겨갔다. 이런 상황이 여기서는 흔한 일이 아니다. 농민, 마을 사람들은 돈에 민감하다. 가난하니까 1원에도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든다. 다른 노동자들은 계산 실수로 임금이 더 나간 사실을 토토에게 알리지 않았다. 일부는 아예 연락이 두절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순간의 이익에 집착한다. 멀리 내다보기보다는 지금 한 푼 더 버는 것, 또는 아끼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많은 비용으로 적게 생산하는 유기농법에 수긍하지 않는다. 류의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금액을 깎으려 애쓴다.      


토토는 그 젊은 여성 노동자와 같은 청년들과 이야기를 할 때 잘 통한다. 이런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면 마을은 더 살만한 곳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녀는 생각한다. 그녀에게는 마을 사람들은 가련한 존재다. 이들은 돈을 벌어도 자신을 위해 쓰지 않는다. 자신이 사는 공간은 매우 낙후했고, 자신은 허름한 옷을 입는다. 도시에서 살고 있는 자식들의 생활비에, 집 장만 비용에 보탬이 되도록 자신을 위해 쓰지 않고 아껴둔다. 마을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다.      


토토는 류와 함께 류의 고향으로 온 ‘반향청년(返乡青年)’ 이다. 그녀는 류와는 달리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류와 같이 바쁘고 어지러운 도시의 삶보다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좋아한다. 그러나 이곳에서 일을 하며 마을 사람들과 실랑이를 벌이는데 지쳤다. 내일도 급여를 받으러 70대, 80대의 노인들이 온다. 그들은 계산을 할 줄 모른다. 다짜고짜 토토의 계산을 탓하고 더 임금을 가져가려고 한다. 그녀의 긴 머리는 대충 묶어 잔머리가 흘러내렸다. 걸을 때마다 슬리퍼를 끄는 소리가 그녀의 고단함을 들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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