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이방인의 기록 20
티엔타이현(天台县)의 장지아징 산촌(张家井村)에선 감나무가 종종 보였다. 신기하게도 나뭇가지 가장 끝, 하늘과 맞닿은 곳에 감 몇 개를 남겼다. 주황빛 잘 익은 감 몇 개가 파란 하늘과 제법 잘 어울린다. 너무 높아 감 따는 이의 장대가 이들에게 닿지 못하였나? 지역 여행사의 가이드는 마을 사람들이 관상용으로 일부러 남겨두었을 것이라 한다.
마을에는 각기 다른 시간을 겪은 가옥들이 함께 지금을 보내고 있었다. 가장 최근 집의 기와지붕은 마치 기름칠을 한 듯 햇살에 반짝반짝 빛난다. 그보다 더 오래된 것, 1960-70년대의 흑빛 기와는 세월의 흐름을 켜켜이 간직했다. 당시의 집은 벽돌을 두 겹으로 쌓아 벽을 만들었다. 외관상 간간이 벽돌 하나가 빠진 구멍이 있다. 바람을 통하게 하고, 산 위에 부는 강풍에 집이 견딜 수 있게 하는 기능을 한다고 한다. 이보다 더 오래된 집 전체가 나무로 지어진 곳도 있었다. 기둥이며 대들보며 벽이며 지붕이며 모두 나무가 재료이다. 사실 기둥 아래 부분은 유일하게 돌이다. 비가 내리면 바닥에 물이 차서 나무를 썩게 할 수도 있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아직도 이곳에 마을 사람이 살고 있다.
그 집 앞 기둥 사이에 놓인 긴 나무 막대에 감들이 올망졸망하게 줄을 맞춰 걸려 있었다. 이렇게 햇볕에 감들을 말리면 곶감이 되는 것이구나! 곶감 한 줄 당 10개 정도의 감들이 매달려 있다. 10위안 (한화 약 1600원)을 내고 사 먹을 수 있었다. 이전에는 맛보지 못한 곶감의 맛. 너무 달지도 않고 너무 쓰지도 않은 딱 적당한 당도.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맛. 이전에 상점에서 종종 사 먹던 곶감에 대한 의심이 들 정도였다.
한 농가 마당에 아직 콩을 수확하기 전인 마른 콩 줄기들이 한가득 펼쳐져 있었다. 84세의 할머니는 마른 껍질을 벗기고자 전문 기구인 듯한 나무 채를 바닥에 내리치신다. 20대의 젊은이들이 귀여웠는지 끊임없이 사투리로 이야기하신다. 사투리를 알아들을 수 없어 맞장구 칠 수 없다는 게 정말 아쉬울 뿐이었다. 우리는 할머니를 따라 일을 해보고자 했지만 기구가 꽤 무거웠다. 돌리기가 쉽지 않았다. 할머니는 떠나려는 우리의 발걸음을 애써 붙잡으신다. 그리고는 자신의 곡창으로 들어가 감을 한 바구니 꺼내오신다. 하나하나 우리의 손에 쥐어주신다.
현재 중국 정부는 지역발전사업의 일환으로 하산(下山) 정책을 적극 시행하고 있다. 산 위에 있는 마을들을 산 아래의 마을에 통합시키고 산촌 사람들을 산 아래로 내려와 살게 한다. 지역 가이드에 의하면, 그렇게 내려온 주민들은 시내 새로 지은 아파트를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구입해 살 수 있다. 원래 한 평당 1만 6천 위안 정도이지만, 정부는 하산 정책을 장려하고자 산촌 사람들에게 한 평당 3천 위안의 가격으로 아파트를 제공한다. 산에 도로를 건설하거나 기타 교통수단을 확충하는 데 정부의 비용 부담이 크다. 마을을 통합하는 것은 정부 관리 측면에서도 용이하다. 마을 사람들은 다양한 공공 서비스나 경제적 기회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문제점도 있다. 산촌에 사는 노인들 중 그곳을 별로 떠나고 싶어 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 마을 사람들이 아파트에 살기 시작하며 편안한 생활을 누릴 수 있을 거라 하지만 이들은 원래 살던 방식과 다름에서 낯섦과 불편함을 느낀다. 그들에겐 아파트의 방 천장이 너무 낮아 답답하다. 아파트의 차가운 단절된 방이 아닌, 문이 열리지도 닫히지도 않았던,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었던 산촌의 공간들, 마을 사람들과의 관계를 그리워한다.
또한 산촌이 다른 마을과 통합되면 산촌은 소실된다. 산촌이 갖고 있던 풍경, 삶의 방식, 문화 또한 사라져 버린다.
다시 마을을 떠난다. 꼭대기에 감 몇 개만이 달린 감나무가 또 눈에 들어왔다. 마을 사람들은 왜 저렇게 감을 남겼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