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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rban essay Oct 24. 2022

2017. 퇴사권고.

2017년 4월 21일.


 오늘 휴가를 마치고 돌아올 나의 직속 Line Manager인  파트너 L를 위해 한 주간 수정했던 사항, 지난 클라이언트 미팅 중 요청받은 디자인 사안 등을 간략히 정리해 Catch-up 미팅을 오전 11시에 잡았다.

모든 게 평소와 같았던 금요일 아침이었으며, 반갑게 인사한 파트너 L는 10여 분간 자신의 휴가 에피소드를  나는 태어난 지 4개월 된 아기 이야기를 하며 스몰토크를 마쳤다. 그 후 변경된  디자인 요소와 몇 가지 휴가 전 지시한 것들에서 반영하지 못한 실무적 이야기들을 하는 도중이었다.


Studio 대표로부터 전화가 그녀의 휴대폰에 울렸다. 몇 초간의 통화 후 나에게 미안하다며 잠깐 대표가 이야기를 하자 했다며, 회의를 점심 후에 다시 하자는 말과 함께 사라졌다.


후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몇 시간 뒤, 그녀의 개인 핸드백과, 책상에 놓인 개인 물품을  담당 비서가 종이 상자에 정리하였다.


짐 정리후 텅 빈 책상. 몇일간 사무실은 얼굴에 생긴 흉터 처럼 책상쪽으로 계속 눈길이 가게 된다.



그 시절 한국에서 5년, 런던에서의 2년간실무경험 동안 처음 겪는 이벤트였다. 또한 일반 직원 및 파트너도 아닌, 나의 비자, 업무, 미래까지 책임지고 있는 내 매니저가 해고를 당한다는 건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다.


(다른 회사는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해고 통보 후, 보안 및 2차 루머 발생을 방지하기 위해 회사 아이디카드 반납 및 자리로 돌아오지 못한다고 알고 있다. 따라서 놓인 개인물품들은 정리 후 집으로 보내지는 걸까? 이후, Dezeen, AJ 등 매거진에서 100여 명 이상의 해고에 대한 기사들이 떴지만 내부에서는 이 이벤트에 대해서 이야기를 조심하다 보니… 공식적인 프로세스는 알 수가 없다)


그렇게 팀원들끼리 결론 없는 미래 걱정, 프로젝트 걱정에 어떻게 오후를 보내고 퇴근을 한지 지금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다음 주 월요일부터 두 주간,  몇몇 파트너들과  AP들이 점점 보이지 않았다. 또 몇 주 후, 해고기간이 끝났나 했는데 옆에 앉아있는 Assistant 한 명이 안보였다. 시니어급만 해당사항이 있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모두가 불안감이 왔던 거 같다. 점심 및 티타임마다 누가 잘렸다, 언제까지 이럴 거 같으냐 등 온갖 루머가 발생하고 모두가 업무에 집중 못했던 한 달이 지나갔다.



4월이 지나고 몇 달간 신입사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은 남아있는 우리들에게 부담감과 업무 압박 그리고 인원 부족으로 인한 야근이 매일이었지만 다들 조용히 업무만 매달렸다. 이 분위기는 6월이 되어 월요일 아침 다시 신입사원들이 Bar에 대기하고 있는 모습을 본 뒤, 어느샌가 웃고 떠들고 가끔은 릴랙스 하는 티타임 모습을 간간히 볼 수 있었다.

(해고 후 며칠간 구직을 할 수 없다는 규정은 없지만 행정상 리스크가 있어, 매주 들어오는 신입사원들 모습은 사라지고 2달여간 정말 조용히 지나갔던 거 같다)



한편, 나의 파트너, AP가 나간 자리는 팀원들에게 커다란 불안을 만들었고, 진행 중이던  프로젝트는 결국 중지되었다. 3주간의 프로젝트 업무 정리를 끝으로 선장 및 항해사를 잃은 우리 팀 인원들은 여러 프로젝트를 떠돌아다니며 소방수 역할 몇 달간 회사 안에서 버틸 수밖에 없었다. 결국 눈에 띄는 몇몇 친구들은 각각 파트너들이 데리고 가고 아닌 친구들은 계속해서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결국 자발적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던 거 같다



퇴사하는 친구들에 대해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자면, 회사가 분위기를 만들었다기보다(다만, 윗선이 나가는 바람에 피해를 보고 있는 직원들이 있다는 걸 회사는 인지하고 있었고, 그럼에도 특별한 케어 시스템은 없었다) 2 주, 한 달간 혹은 며칠씩 프로젝트들 마감에 투입되어 마무리만 하는 업무는 결국 직원들의 의욕 또는 그들의 비전을 찾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리고 "떠난다"는 결과론적인 상황을 만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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