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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Feb 23. 2020

부정적 감정 대처하기

평정심 놓지 말기

  코로나 바이러스로 연일 뉴스가 도배되고 있다. 전국적으로 확진자 발생 도시가 계속 추가되고 있고, 내가 사는 동네 인근에도 확진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점점 올가미를 조여 오는 기분이다. 하필 이런 날 아이 둘 다 외출이다. 방학 내 집에 머물러 그나마 걱정이 없었는데, 타고 가는 버스는 안전할지, 확진자랑 동선은 겹치지 않을지, 만나는 사람들 중에 혹시 증상자는 없을지, 모든 게 걱정이다. 며칠 만에 하늘이 파랗고 공기도 깨끗해서 기분이 좋을 법 한데 마음은 무겁다. 오늘의 내 감정 모드는 염려와 불안이다.


  미국에 잠시 살 때 일이다. 영어나 배워볼까 하고 다니던 학교에서,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과 잠깐 이야기를 하고 있다가 화장실에 다녀왔는데, 잠시 후에 핸드폰을 화장실에 놓고 온 걸 알게 되었다. 불안감에 갑자기 심장이 방망이질을 해대기 시작하고, 머릿속에 혈관들이 좁아지며 혈류가 급속하게 흐르는 게 느껴졌다. 바로 달려갔으나 핸드폰은 놓아둔 자리에 있지 않았다. 머리가 아득해진다. 정말로 비상 상황이다. 한국도 아닌 타국에서 핸드폰을 잃어버리다니. '누가 훔쳐 갔을까? 아까 화장실 나오면서 부딪힌 히잡 쓴 그 여자일까? 아니면 손 씻던 몸집 있는 흑인 여자?' 의심과 걱정이 증폭되는 가운데 정신없이 교실로 돌아와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하는데, 머리가 안 돌아간다. 멀쩡하던 영작이 꼬이고, 속으로 아무리 '침착해, 침착해'를 외쳐도 "Could you..., Would you..." 같은 예의 갖춘 어법을 사용하는 데까지 미처 주의가 기울여지지 않는다. 친절한 선생님의 안내로 Main office에 달려가 조금 전에 분실물로 신고되어 있던 내 핸드폰을 무사히 손에 쥐게 된 후에야 제정신이 돌아온다. 평상시엔 그럴듯하게 그럭저럭 영어로 얘기하던 애가 평정심을 잃으니 단어만 내뱉은 게 부끄럽고, 히잡 쓴 여자분이 내 핸드폰을 분실물로 신고해준 건 상상도 못 하고 애먼 사람을 공연히 의심한 게 너무나 미안했다. 내 민낯이고 바닥이었다.


  만약 핸드폰을 또 잃어버린다면, 당연히 분실물 신고처에서 알아보면 될 일이고, 설령 정말로 분실되었다 해도 잃어버린 기록들이 아쉽기야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서서히 단념하게 될 일이다. 생명에 지장이 있는 일도 아니요, 누가 다친 일도 아니며, 경제적 손해랄 것도 크지 않은 일인데 왜 그 상황에서는 심하게 안달하고야 마는 걸까?


  누구나 여러 이유로 힘든 때가 있다. 고통의 강도나 이유를 두고 "너는 뭘 그런 걸 가지고 힘드니?"라고 거드는 이야기는 의미가 없다. 고통은 절대적이지 않고 사람마다 다 고통의 민감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독박 육아로 몸은 고되었고 정신은 바짝 말라 갈라진 논바닥이었던 때가 있었다. 돌이켜보면, 어찌 버텨냈을까 싶은... 그 시절로 되돌아가라면 절대 절대 싫은... 그런 시절이었다.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참고 참아 짜증을 넘어 분노가 되어가는 듯한 마음이 더 이상 빈 틈이 없을 정도로 몸 안에 빼곡히 쌓여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혹시 누군가 말을 걸려고 팔이라도 툭 쳤다면, 바람 빠지는 풍선처럼 기다렸다는 듯이 대놓고 분노의 욕들이 튀어나갈 판이었다. 욕하는 게 익숙지 않지만, 왠지 아는 모든 욕들에 꾹꾹 누른 화를 섞어 대차게 퍼부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다행히 별 일없었지만, 세포 하나하나에까지 나를 온통 점령했던 그 화와 분노의 감정이 너무도 생생해서 잊히지 않는 장면이다. 그 시절처럼 격하게 자주는 아니지만 사는 동안 그런 불쾌한 감정들을 만나는 일은 늘 있는 일이다. 지나고 보면 결국엔 별 일 아닌데, 왜 그 상황 가운데에서는 그리 쉽게 온 마음이 그 부정적 감정에 쉽게 삼키고 마는 걸까? 그것도 거의 매번.


  비슷한 일을 반복적으로 겪으며 어떻게 하면 갑작스럽게 부정적 감정 속으로 급격하게 빠져들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중에 최근 류시화 님의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를 읽고 좋은 팁을 얻었다. 마음을 울리는 글들이 다 좋았지만, 그중에서도 "어서 와, 감정"편에서 내가 고민하던 바의 도움 내용이 있었다. 마음에 들어오는 부정적 감정들에게 이름을 붙여주라는 것이다. 슬픈 감정이 오면, "슬픔, 너구나. 어서 와.", 불안이 들어오면 "안녕, 불안.", 두려움이 오면 "안녕, 두려움." 이렇게 말이다. 이름을 부르고 인사를 건네는 것만으로도 그 감정들과 나의 자각 사이에 여유공간이 생겨 그것들을 분명히 알아차리게 되고, 마음을 관찰하다 보면, 나는 잠시 슬플 뿐이지 슬픈 사람은 아닌 것이고, 잠시 불안할 뿐이지 불안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한다. 오늘처럼 불안과 걱정이 나를 삼키려고 또 내면에서 스멀스멀 일어나는 날, 이 방법을 연습해 보기 딱 좋겠다. 복잡한 감정과 사념이 밀려올 때 차 한 잔을 음미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하니 집에 있는 차 한 잔 앞에 놓고 염려와 불안의 이름을 불러가며 찬찬히 들여다봐야겠다.


  부정적 감정들에 쉽게 흔들리지 않기 위해 또 다른 방법으로 좀 더 강인한 정신력을 갖도록 단련하는 것도 필요한 일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류시화 님의 같은 책 "내 영혼, 안녕한가?"편에 명상, 독서, 여행, 예술 활동, 자연을 가까이하는 일 등이 영혼을 돌보는 데에 도움이 된다 하고, 건강한 음식, 만족스러운 대화, 감동을 주는 경험들은 영혼에 자양분을 주는 일이라 하니, 할 수 있는 만큼 즐기며 할 일이다. 하긴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여행은 안되니, 명상과 독서, 가까운 곳 산책하며 건강하게 집 밥 만들어 먹고 가족과 즐거운 대화 하면서 한동안은 지내는 게 좋겠다. 그러다 가족들과의 애정이 돈독해져 혹시 감동적인 일화라도 생긴다면 코로나바이러스가 나에게 꼭 부정적 감정만 주는 건 아닌지도 모를 일이다.

평정심! 이번엔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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