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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Feb 17. 2020

바느질은 사랑인가 보다.

  딸내미가 집에서 즐겨 입는 티셔츠의 팔꿈치에 밤톨만 한 구멍이 숭숭 두 개가 났다. 벌써부터 알면서도 며칠 째 애써 눈길을 피하는 중이다. 바느질은 솜씨도 없고, 취미도 없어, 여간해선 손에 바늘과 실을 잘 들지 않는 나지만, 아주 가끔씩 가족들 옷가지에 손을 대어야 할 때가 있다. 딸내미가 아침에 구멍 뚫린 팔꿈치를 내 눈앞에 들이대며 "엄마, 이것 보세요. 구멍 두 개가 계속 커지다가 결국 하나로 뚫려 버렸어요."라고 하자 더 이상은 피할 수가 없었다. '칫, 그래 꿰맨다. 꿰매, 오늘!' 나름 마음을 가벼이 하고 오랫동안 장롱 한 구석을 지키고 있는 반짇고리를 가져와 소파에 앉아 자세를 잡았다.


  소맷단을 접어 잡고 꿰매는데, 들고 나는 햇살로 거실이 환해졌다 흐려졌다 한다. 창 밖을 보니 낮게 앉은 희뿌연 하늘에 눈꽃송이가 가벼이 날린다. 저 멀리 보이는 관악산 산등성이가 밤새 내린 흰 눈으로 덮여 있다. 고즈넉하니 바느질하는 기분이 따뜻해진다. 그 따뜻한 기운이 실을 따라 한 땀, 한 땀에 내려 스며드는지 딸 애를 사랑하는 마음도 살며시 부푼다. 바느질 덕분인가? 눈 내리는 정겨운 경치 덕분인가? 솜씨는 어설프지만 그래도 조금은 말끔해진 티셔츠를 입게 해 줄 수 있는 나의 고연한 뿌듯함인지도 모르겠다. 바느질을 하면, 꼭 그 옷이나 양말 주인을 생각하며 나도 모르게 정성이랄까, 애정이랄까 그런 게 같이 꿰매지는 건 같은 기분이 든다.


  중학교 시절 가사 시간에 바느질할 게 그렇게 많았다. 한복과 블라우스를 직접 만들어야 했고, 갖가지 서양 자수법들도 배웠다. 살아보니 생활에 정말 유용한 기술인데, 당시의 나는 바느질이 너무너무 싫었다. 분명 선생님 말씀을 이해하다가도, 어느 순간 순서를 놓치고 허둥대며 헤맬 적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공부는 그럭저럭 했는데, 이상하게 가사 시간만 되면 백치가 돼버리는 것 같았다. 바느질을 잘하는 친구들은 애써 순서나 기법을 외우려 하지 않고도 손이 다 알아서 하는 듯했다. 나는 그들의 리듬감 있는 손놀림을 부러운 눈빛으로 한참씩 보곤 했다. 다행히 자기 것을 얼른 끝낸 친한 친구가 안쓰럽다는 듯 내 것까지 맡아 주었기에 그 수많은 악몽 같은 가사시간을 그나마 무사히 보낼 수가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친구가 없는 여름방학 앞치마 자수 과제였다.


  좀 뻣뻣한 면 재질의 앞치마에다가 학기 중에 열심히 배운 갖가지 자수기법을 이용해 자수를 놓는 것이 여름방학 과제였다. 그 과제가 떠오를 때마다 걱정이 되어 방학 내내 놀아도 논 것이 아니었고, 쉬어도 쉰 것이 아니었다. 미루고 미루다가 더는 미룰 수 없는 개학 전날 밤! 저녁식사를 마치고 세찬 여름 비가 막 오려던 눅눅함 속에 드디어 앞치마를 꺼내 들었다.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면서 잠시 움쩍거렸을 뿐인데 그 새 두어 시간이 휙 가버렸다. '1/10도 안 했는데 어느 세월에 이걸 다 메꾸나... 오늘 밤 잠은 다 잤네. 밤을 새우면 끝낼 수는 있으려나?' 처량한 마음 반, 후회하는 마음 반으로 울먹거리던 나를 엄마가 보셨나 보다. 구세주 같은 엄마의 도움으로 나는 잠자리에 들 수 있었고, 다음 날 아침 수놓아진 앞치마가 어찌나 감격스럽고, 엄마가 얼마나 고맙던지! 그러고 보니 왜 나는 진작 엄마에게 도움 청할 생각을 못했을까? 사실 지금이야 누구에게든 도움 청하는 일이 별로 어렵지 않지만, 어려서는 썩 내켜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내 일을 누구한테 떠 넘기는 건 잘못이지.'라며 막중한 책임감에 빠져 있었거나, 도와달라고 말하는 게 자존심 상했는지도 모른다. 어찌 됐든 나는 그 앞치마에 가득 찬 자수의 한 땀, 한 땀을 엄마의 사랑이라고 느꼈고, 고마운 마음이 가득했던 것을 똑똑히 기억한다.


  최고의 바느질 일화는 글쓰기 모임을 함께 하시는 어느 선생님께 들은 이야기이다. 그분은 어린 시절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집을 떠나 고모댁으로 가셔야 했는데, 그때 할머니와 어머니께서 직접 솜이불을 만들어주셨다고 한다. 심지어 솜이불에 들어가는 목화까지 십여 년 동안 직접 기르시고 따서 말리셨다고 하니 두 분의 정성에 감탄이 절로 난다. 결혼할 때 혼수로도 한 그 이불은 지금도 얼굴을 묻으면 할머니 품처럼 여전히 따스해서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하신다. 햇살같은 목화를 넣어 손수 바느질 한 엄마와 할머니의 이불이라니!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깊어지는 사랑의 징표로 이보다 더 진한 게 또 있을까?


  각종 IT기기들에 둘러싸여 있는데도 멀티태스킹이 선호되는 시대이다. 너무나 빨리 돌아가는 세상의 속도에 맞추느라 바느질 같은 단순한 일에 시간을 들여 몰입하는 것은 시대에 뒤쳐진 일이라는 평을 받는 게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느끼고 표현하는 일이 점점 더 버거워지는지도 모른다. 바느질은 아마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표할 수 있는 좋은 방법 중 하나일 수 있다. 나도 이참에 가족들을 위해 좀 더 뭐든 꿰매 보며 부족했던 사랑을 맘껏 표현해 보리라 마음먹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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