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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Mar 23. 2020

버스에 장바구니 놓고 내려

  나는 다분히 이해타산적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고, 받았으면 주는 거고, 주었으면 준만큼 받는 게 세상의 이치 중 하나라는데에 일말의 이견이 없다. 내 생각이 이러니 다른 사람들도 내 모습을 투영해 그들도 이해타산적이리라 여기는 게 별로 마음 불편하지 않다. 눈뜨고 코 베어가는 세상이니 손해 안 보고 사는 게 중요하다고 믿으며 말이다. 그렇게 깍쟁이처럼 세상 팍팍하게 살다가 가끔 별다른 이유 없이,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풀어지는 순수한 선의를 만날 때면 '세상에, 이런 분이 아직 계시는구나.'싶어 놀라울 뿐이다.


  식빵이며 식초며 단호박 등등 필요한 생필품을 사고 집에 가는 마을버스를 탔다. 대 여섯 정거장을 지나 집에 도착해 점심을 먹고 나서 정신 차려보니 들고 온 장바구니가 없다. 그제야 버스에 두고 내린 줄 알았다. 낭패다. 아무리 들어야 할 가방이 서너 개 있었더래도 작은 손지갑도 아닌 장 본 큰 가방을 어떻게 버스에 두고 내릴 수가 있나... 언젠가부터 많은 실수를 하기 시작했지만 장가방을 놓고 내린 건 정말 충격이다. 부랴부랴 버스회사에 전화했다. 차고지에는 밤에나 들어오니 올 필요 없고, 마을버스가 총 2대뿐이니 내린 정류장에 가서 마을버스 기사님을 직접 만나란다. 정류장으로 터덜터덜 내려가며 한편으로는 남이 장본 걸 누가 손대겠나 그대로 있겠지 싶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얼마 전에 기차에 놓고 내려 잃어버린 책과 노트를 떠올리며 이번에도 혹시 또 누가 가져갔으려나 싶은 두 마음이 오락가락했다.


  기차에 놓고 내린 책과 노트는 정말 찾을 줄만 알았다. 책은 동네 도서관에서 빌려온 터라 도서관 라벨이 떡하니 앞표지에 붙어있었고, 노트에는 책 읽고 난 요약과 드는 생각의 파편들을 적어놓았는데, 누군가 가져간들 그게 그에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철석같이 찾으리라 믿었는데, 출발역과 도착역 어디에도 분실물 신고는 되어있지 않았고, 결국은 잃어버렸다. 도서관 책이니 똑같은 책을 자비로 사서 반납하는 것은 큰일이 아니었다. 정녕 허무했던 건 포스트잇을 붙여가며 정성스레 책과 정든 시간이었고, 읽으며 드는 생각들을 영원히 놓친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뭔가를 잃어버렸을 때 무엇보다 가슴 쓰린 이유는 경제적 손실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한참 정든 그 물건과 갑작스레 이별을 해야 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놓고 내린 회색 장가방도 함께 한 지 어느덧 10여 년 즈음 된 듯했다. '못 찾으면 할 수 없지, 그동안 고마웠다.' 슬슬 혼잣말로 이별을 고하며 회차하는 마을버스가 내 앞에 서기를 기다렸다. 기사님께 여쭤보니 역시나 분실물이 없다고 하신다. 배차시간에 늦으셔서 휑하니 급히 떠나시고 나는 다음 버스를 기다렸다. '그래, 카드나 지갑 같은 중요한 물건이 아니어서 다행이야. 장 본 물건들은 누구든 필요한 사람이 쓰면 되지, 뭐.' 거의 포기상태로 천천히 들어오는 다음 버스 기사님께 여쭈었다. 분실물이 있느냐고. "어떻게 생겼는데요?" 기사님이 되묻는다. 어머, "연회색에 식빵이랑 단호박이랑 그런 거 있는 가방이에요." 했더니 씩 웃으시면서 발 밑에서 장가방을 들어 꺼내 주신다. 급 희색이 만면하여 연신 꾸벅이며 인사를 하고, 분실물 신고가 된 거냐고 여쭈었더니, 회차할 때 버스 내부를 한 바퀴 돌다가 직접 발견하시고 주인이 찾으러 오기를 기다리고 계셨단다. 어찌나 고마우시던지! 버스 기사님으로서 잠시 틈 날 때 자신의 버스를 챙겨주신 덕분이었다. 작고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일에 책임을 다하신 게 타인에게 뜻밖의 선행을 베풀게 된 일로 이어진 것이다. 가방을 받아 들고 집으로 향하면서 세상이 한결 따뜻해 보이고 지나치는 아무나 정겨웠다.


  마스크 한 장이 귀한 이때에 파출소나 지구대에 조용히 30장, 10장 놓고 가시는 분들이 있다고 한다. 대구의 어디 식당은 선별 진료소의 의료진들을 위해 지난달 27일부터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도시락을 준비하여 기부한다는 소식도 있다. '어떻게 이 상황에서 이런 행동을 할 수가 있나!' 싶다. 마스크가 금스크가 되든 말든 남의 일이라고 치부하던 내가 부끄럽다. 나처럼 계산적인 사람도 인정이나 대가를 바라지 않는 이런 순수하고 아름다운 행동을 따라 할 수 있을까? 타고난 성품인지, 성장하며 길들여져서 이해타산적이 된 건지 잘 모르겠지만, 나도 선의의 선행에 동참하고 싶어 진다. 장 본 가방을 찾아주신 마을버스 기사님 덕분에 느꼈던 기쁨을 나도 누군가에게 선물로 주고 싶다. 코로나 때문에 쉽게 우울해지고 답답하다가도 이런 선행을 펼치는 훌륭하신 분들 덕분에 감동받는다. 세상을 조금만 깊게 들여다보면 따라 배울 일이 널려있는 것 같다. 작은 선행이 주는 기쁨이 퍼지고 퍼져 사회적 선순환으로 나아가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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