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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Apr 30. 2020

LA 운전 도전기

  운전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건, 공부하는 남편을 따라 갑작스레 LA에 가게 되면서이다. 미국은 대중교통이 좋지 않아 자기 차가 없으면 일을 볼 수가 없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부랴부랴 출국 전에 운전면허를 급히 따고 국제 운전면허증을 발급받았다. 말도 서툰데 미국 면허 따느라 고생하지 말고, 일단 국제면허증으로 버텨보자는 심산이었다. 본격적인 연습은 LA에서 남편한테 맡겨보기로 했다.


  면허만 땄지, 아직 감이 없었기 때문에, 실전 연습이 더 필요했다. 남편의 지도로 거주하는 아파트 단지 안과 밖을 며칠간 돌며 미숙한 부분들을 집중 연습했다. 턴 할 때 핸들 돌리는 각도와 차의 회전 반경에 대한 감각을 익히고, 차선 변경할 때 사각지대까지 얼굴을 돌려 확인하는 것, 브레이크 자주 밟지 않고 속도 조절하는 법 등 운전석에 앉아있는 내내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남편도 말로는 괜찮다고 마음 편히 하라고 하지만, 주행 내내 보조석 문 윗 손잡이를 생명줄 잡듯이 꼭 잡고, 조금이라도 속도가 빨라지려 하면 아직 이럴 때가 아니라며 놀라서 제지시키기 급급했다. 좀 나중에는 '뭘 이렇게까지 천천히 가야 하나...'싶은 게 어린아이 취급받는 것 같아 내심 속상했다. 속도로 티격태격하는 동안 조금씩 운전이 익숙해지자,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더 멀리, 더 빨리 달리고 싶은 유혹이 슬며시 부풀며 근거 없는 자신감도 함께 스멀거렸다. LA 도로 폭은(약 3.6m) 서울 도로보다(약 3.2m) 약간 넓은데, 차 통행량은 오히려 적어서 초보자가 딱 봐도 만만해 보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영화에서 자주 보던 그 장면, 선글라스 끼고 목에 두른 스카프 좀 바람에 날려주며, 운전석 창문에 한쪽 팔꿈치 올려둔 채 한 손으로 능숙하게 핸들을 잡던, 바로 그 자유의 로망을 빨리 재연해 보고 싶은 욕구가 용솟음친 것도 같다. LA는 영화도시이니 자연스레 더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속도 타령만 하며 아파트 주변만 백날 돌게 하는 남편을 옆에 두고는 영화 속 로망은커녕 귀국 때까지 장도 마음대로 못 보러 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른 아침 책상에 놓인 차 키를 조용히 챙겨 들고 살금살금 집을 나섰다. 남편은 아직 눈뜨기 전이었다. 상쾌한 자유의 공기를 마음껏 들이쉬고 엑셀을 지그시 밟으며 아파트 단지 밖으로 유유히 빠져나갔다. 목적지는 20분 정도 거리의 장 보러 다니는 한인 마트였다. 일러서 오픈은 안 했겠지만 그 마트 주차장까지 갔다가 턴 해서 돌아오기로 한 것이다. 7시 즈음의 이른 아침인 데다 마트까지는 계속 직진이니 차선 변경할 일도 없고 그저 간간이 옆과 뒤를 둘러봐주며 신나게 가면 되는 아주 쉬운 여정이었다. 이참에 길눈도 익히자 싶어 지나가는 교차로와 교차로명들을 살폈는데, 정작 한인마트 블럭에서 타이밍을 놓쳐 급하게 우회전을 하게 되었다. 속도를 미처 충분히 줄이지 못해 큰 포물선을 그리며 골목으로 간신히 들어서는데, 전방에 길을 걸어가던 행인 한 명이 골목으로 달려들어오는 내 차를 보고 멈칫 놀라며 급 뒷걸음질을 친다. 나도 소스라치게 놀라 창문은 내릴 생각도 못하고, 그저 반사적으로 행인 쪽을 보고 미안한 얼굴로 굽신거리며 "Sorry, very sorry!"만 중얼거렸을 뿐이다. 사고를 낼 뻔했던 찰나의 놀란 가슴을 천천히 쓸어내리고 주차장에서 한 바퀴 돌아 집에 오는 길에는 확실히 마트에 갈 때보다 까불지 않고 훨씬 신중하게 운전이 되었다. 아무 사고 없이 무사 귀가한 게 너무나 다행인 아침이었다.


  다음날 이른 아침, 어제 일로 겁은 좀 먹었지만, 거기서 그칠 내가 아니다. 어제처럼 조용히 차 키를 가지고 나섰다. 이제는 직진 말고 이리저리 동네를 휘돌아 아들이 다니는 프리스쿨까지 다녀오기로 했다. 도로 표지판을 살피며 어제보다 한껏 신중하게 운전을 했다. 마지막 비보호 좌회전을 막 마치고, 이제 집으로 가볼까 하는데, 어디선가 "삐.. 익, 삐.. 익." 긴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들리거나 말거나 내 갈길 가는데, 호루라기 소리가 점점 커지는가 싶어 백미러로 살짝 보니 뒤에서 미국 경찰 아저씨가 자전거를 타고 열심히 따라오며 손짓으로 내게 오른쪽으로 차를 대라는 신호를 보낸다. "오 마이 갓! 나보고 지금 세우라는 거야? 왜? 내가 뭘 어쨌다고?" 갑자기 심장이 두근 반, 세근 반 벌렁거린다. 조심조심 일단 우측에 세우자, 굳은 표정의 백인 경찰 아저씨가 다가와 면허증을 보여달랜다. '어머, 영화에서 무수히 봤던 미국 경찰의 검문을 내가 지금 받고 있는 상황?' 맥락 없는 사고 전개에 스스로도 황당해하며 '지금 영화 따위를 떠올릴 때가 아니잖아. 정신 차려, 정신!' 불안한 손길로 주섬주섬 국제 운전 면허증을 찾아 보여주었다. 뭐라고 한 참 하는데 알아먹기도 힘들다. 그저 좀 전에 했던 좌회전이 문제라는 것과 그나마 가장 싼 티켓을 끊어주겠다고 하는 말을 간신히 얻어 들었다. 발급해 준 딱지를 보니 벌금이 260불이었던가 그랬다. 이 벌금이 부당하다고 판단되면 코트에 나오라는데 이건 또 무슨 말인지... 그나마 가장 싼 딱지라는 말을 억지로 위안 삼으며 낭패감으로 엉망진창인 기분을 어찌어찌 집까지 간신히 챙겨 왔을 뿐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마지막 좌회전한 곳에 시간제한이 있었다. 오전 7시부터 오후 몇 시까지는 좌회전이 허용되지 않는 사거리인데 내가 좌회전을 했을 때가 아마도 8시 즈음되었을 테니 그걸 목격하고 경찰이 뒤따라 왔던 거다. 좌회전 표시만 보고 아래에 시간제한은 미처 파악치 못한 100% 내 불찰이니 부과된 벌금이 부당하다고 법원에 갈 이유는 전혀 없었다. 누구는 벌금 좀 깎아보려고 법원에 갔다가 오히려 더 냈다고 하니, 그저 나온 대로 내는 수밖에 없었다. 면목없지만, 자고 있는 남편을 깨워 "여보, 미안해... 나 티켓 끊겼어..." 용서를 빌 수밖에...


  뭔가 억울했지만, 연이은 실수를 저지른 나의 LA 운전 도전기는 그렇게 미완인 채로 허망하게 끝을 맺었다. 그렇잖아도 나의 운전을 못내 불안해하고 마뜩지 않아하던 남편이 벌금을 계기로 얼씨구나 나와 차를 확실하게 격리시켰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나의 운전 로망이 그대로 사그라진 것은 아니었다. 귀국했다가 4년 뒤 다시 미국 버클리에 갔을 때, 로컬이든 프리웨이든 영화 속 장면을 마음대로 연출하며 신나게 달릴 만큼 달렸으니 말이다. 서울에서는 길도 좁고, 차도 많아 마음 편히 운전이 되지 않는다. 운동도 할 겸 편리한 대중교통 이용을 더 좋아한다. 결국 나의 운전은 버클리 한정용이라는 큰 흠이 있는 게 아쉽다면 아쉬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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