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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츄럴본킬러 Apr 28. 2024

평정심 보다  눈물.

 경상도를 떠나 경기도권으로 이사를 오면서 가장 크게 느낀  변화는 바로 날씨였다.


코가 알싸하게 느껴지는 찬바람속에 따듯한 커피를 마시는 이 계절을 좋아하면서도 뼛속까지 파고드는  칼바람을  못견뎌 겨우 내내 무섭게 날아드는 난방비에도 불구하고 온 집 구석 구석 빠진 곳 없이 뜨끈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나는  여름 휴가를 경주에서 보내자는 Y의  제안에 환호했다.


말이 휴가이지, 일요일에 내려가서  1박 2일 호캉스를 보내고 월요일은 큰 애가 있는 울산으로 가서 회사 크루가 오픈한 사업장을 방문한 다음 울산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화요일 아이 학교 모임에 참가하는 스케줄이었다. 내 일을 하면서 일하는 스케줄을 조절할 수 있게 된 장점도 있지만 , 모든 일상과 일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삶이 현실이었기에 장거리 출장이 있으면 반나절 일찍 가서 주변을 돌아보는 정도의  워케이션 스타일의 휴식이 고작이다.


완전한 성수기는 아니었기에 5시간 정도 운전해서 경주역에서 Y를 픽업했다.  조금 보태 20살 나이차가 나는 대구 아가씨 Y는 내가 대구에 살 때 같은 체육시설에서 운동하며  집이 근처라는 이유로 어느 날 같이 달리기를 했고, 달리기를 꽤 잘했던 그녀는 반대로  왕언니 뻘의 내 러닝메이트가 되면서  첫 러닝 이후 몇 개월 동안 주 1회  나와 달리기를 해 주었다.


MBTI도 같던 우리는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꽤 가까워졌고, 한창 주말이면 밖에서 유흥을 즐기며 놀러다니는 20대 친구들 사이에서 운동과 독서, 그리고 자기 계발에 열중하는 Y가 너무 이뻤다.


만나서 까페에서 못 본 사이 있었던 일로 서로간의 회포를 푼 다음 밤이 되어  시내 와인바에서의 이야기는 그녀의 이전 연애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도 연애를 엉망으로 해 오며 파란만장한 20대를 지나왔었는데, 그걸 생각하면 누군가에게 연애 조언을 하기에는 스스로 서툴다는 생각이 들고,  평범하고 노멀한 것이 좋다고 하고, 인스타그램이나 유뷰브에는 헤어진 연인이나 ING중인 연애의 갈등에 관한 현자들의 다양한 조언도 넘쳐흐르지만, 그게 잘 안된다는 그녀의 말에 내가 해 줄수 있는 것은 그저 공감과 위로 뿐이었다.


모든 것을 열심히 하고 열렬하게 에너지를 쏟아붇고 천성이 남을  보살피는 것을 좋아하는 ENFJ는 그렇다. 스스로 지치고 만다. 상대방의 에너지의 온도가 나와는 다른 것에 실망한다.   나무도 서로의 그늘에서는 자랄수가 없으니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예언자'의 한 구절이나 '산'을 좋아했다가 이제 '바다'를 보니 산이 아니라 바다가 좋은 것은 당연하다. 그러니 내가 산이었을때 그 순간 열심히 사랑하고 사랑받은 것으로 헤어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라는 법륜스님의 말씀은, 무릎을 탁, 치며 그래 '옳소' 할 일이지만, 어디 그런 평정심이  보살도 아닌 우리에게서 나오기 쉬운 것이던가. 비슷한 고민을 하며 상대방에게 쏟아부은 에너지의 절반도 나에게 돌아오지 못함에 가슴 아파하고, 절망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남을 반복하던, 한마디로, 그다지 바람직하지 못한 연애를 했기에, 남의 눈이 두렵고 타인의 질타가 두려워 마음속 감정도 어디 털어놓지 못하고 오랫동안 감정의 변비가 되어 썩어들어가던 나의 20대였다.


20년을 지나고 나니 말해줄 수 있었다. 울고 미워하고 욕하고, 용서하고, 그리워 하고 , 하고 싶은 대로 할것.

수도승의 환경과 감정 다스림은 우리와는 다르다. 그렇게 잘 다스릴수 있었으면 이미 머리 깎고 절에 들어갔을 것이니, 아직도 헤어진 남자친구에게 미련을 못 버렸냐는 질타는 두려워 말고 찌질하고 구차해 보일까, 품위를 잃은 듯 보일까, 너무 고민하지 말고 울고 싶으면 그냥 울고 욕하고 싶으면 욕하는게 낫더라는 것이었다.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일은 헤어짐 뒤에 종종 온다. 모든 이별이 그런 것도 아니었지만 오랜 기간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는 이별도 분명히 있었다. 충분히 괴로워하다가 도움을 받기도 하고 혼자서 어떻게든 극복하기도 한다.

처음부터 도움을 받거나 잘 극복하거나 하면 좋겠지만 그 또한 살다보면 마음대로 되지 않고 변화하려고 마음 먹는데도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더 일찍 극복했다고 해서 그 다음 연애가 좋을 것인가.


그럴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때로는 지나치게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하는 것이 우리에게 무용할 수가 있다. 참아내는 감정이 있기에 쏟아내는데 그 만큼의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새벽에 Y는 잠꼬대를 하는 듯했다. 악몽을 꾸는 가 싶었다. 자세히 들어보니 흐느껴 울고 있었다.

단박에 느낌이 왔다. 아직도 많이 그립구나. 원망스럽구나. 그리고 다시 그립구나. 혼자 쓱 일어나더니 얼굴을 씻으러 욕실로 향했다.


'울었어?' ' 네 언니 악몽을 꿔서요' ' 보고싶어서 울었어? 그러면 그냥 울어'


울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만이 가장 간단하고 필요한 위로 라고 생각했다. 그 순간만큼은.

그녀가 정말 나와 닮았다면.

내가 필요했었기에. 그러나 나는 듣지 못했었기에.


 왜 아직도 우느냐, 그런 놈이랑 헤어진건 천번 만번 잘한 일이다. 너는 왜 남자때문에 아직까지 울고 있느냐..


질타만 가득했던  20대의 이별 후  주변인들의 질타, 그리고 난 몇년을 의미 없는 연애로 시간을 허비했다.

가볍게 만나고 가볍게 질려하고 쉽게 마음을 주지도 못했고 불안해 하는 연애를 해야만 했다.


어쩌면 그녀를 보면서 혼자서 울음을 삼켰던 그 시절의 나에게 던진 위로였을 수도 있다

때론 남이 해주는 위로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 나를 가장 잘 위로할 수 있는 건 ' 나' 일 수도 있으니까.


이른 새벽을 그렇게 보낸 우리는 즐거운 반나절을 보내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나는 다시 달리는 그녀를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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