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특별한 사람은 행성 하나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질 때가 있어요. 그걸 이해하는 사람이 있고 못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저한텐 엄청 분명한 문제예요.”
- 정세랑, 《지구에서 한아뿐》
비혼주의자였던 내가 결혼을 했다. 당시 회사에선 내가 사고 쳐서 결혼한다는 소문까지 돌았을 정도다.
그를 처음 만나고 몇 번을 채 만나지 않았을 때 ‘나 이러다 이 사람하고 결혼할 거 같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귀고 있지도 않았고 물론 결혼이야기도 없었는데 분명 결혼할 것만 같다는 생각. 그렇게 우린 어쩌다 보니 결혼을 했다. 나도 예상치 못했던 나의 결혼이었다.
그러나 한 사람이 온다는 건 한 세계가 온다고 했던가. 세계 하나와 또 다른 세계가 만났으니 온갖 충돌이 생겨났다.
나의 첫 가출은 그가 내가 사준 운동화 상자를 발로 차고 방으로 들어간 후였다.
“그런다고 문이 부서져?”
힘껏 목소리 높여 소릴 질렀다. 나는 그보다 더 화가 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다. 그래 가출이다. 입고 있던 트레이닝 복에 지갑과 핸드폰만 가지고 가출을 감행했다. 들으라는 듯 현관문을 가장 큰 소리가 나도록 닫았다.
‘일단 커피나 한잔 마시자.’
사실 가출해도 마땅히 갈 곳은 없었다. 만날 동네 친구가 있는 것도, 울면서 고자질하러 갈 곳도 없었다. 커피 한 잔 마시고 그래도 화가 안 가라앉으면 동네를 배회할 참이었다. 그러나 카페에 가려니 급하게 나온 나의 몰골이 신경 쓰였다. 다행히 트레이닝 복 세트였지만 안에 입은 후줄근한 분홍색 반소매 티가 허리 아래로 날름거린다. 혓바닥 같은 티셔츠를 바지에 넣으려고 하니 양손에 들린 지갑과 핸드폰이 걸리적거렸다. 벤치에 올려놓고 손을 바지 깊숙이 티셔츠를 주섬주섬 쑤셔 넣었다.
“뭐하냐.”
아, 젠장. 그가 한 발자국 뒤에서 나를 보고 있다. 왠지 모를 창피함과 부끄러움이 뒤섞여 웃음이 났다. 나의 웃음에 그도 웃는다.
“왜 웃냐.”
“아, 몰라. 나 가출했어. 따라 오지 마.”
걸음을 재촉했지만 이미 내 손은 그의 손을 잡고 있다. 이미 왜 싸웠는지 기억도 안 난다. 그렇게 나의 첫 가출은 5분도 안되어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