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wards a New Supermarket Architecture
슈퍼마켓처럼 우리의 일상에 깊게 관여하며 철저히 기능에 충실해야 하는 공간의 디자인은 어떻게 색다를 수 있을까? 그리고 앞으로 어디로 향하게 될까? 무심코 들러 장을 보는 공간도 더 나은 ”경험“을 담을 수 있을까?
최근, 이런 질문에 꽤 괜찮게 답해주는 슈퍼마켓을 알게 되었다.
그냥 신선한 야채와 빵을 파는 곳이 아니라, 슈퍼마켓의 태도와 미래에 대해 말하는 건축:
DeCicco & Sons - Sleepy Hollow 지점이다.
뉴욕 북부에는 DeCicco & Sons라는 슈퍼마켓 체인이 있다. 1973년 Bronx에서 이탈리아계 이민자 가족이 시작한 작은 식료품점이 그 시작이었다. 2006년에 아들 세 형제가 이어받아 Westchester County에 하나씩 매장을 내기 시작해서, 현재 10개 이상의 지점을 운영 중이다. 오늘 이야기할 곳은 올해 초에 문을 연 Sleepy Hollow 마을의 DeCicco & Sons 매장이다.
이 브랜드의 포지셔닝은 지역 기반의 프리미엄 슈퍼마켓이다. 미국에는 Whole Foods라는 슈퍼마켓 브랜드가 있는데 대표적인 고급 슈퍼마켓 체인이다. Whole Foods처럼 고급 유기농 식재료, 수제 맥주, 치즈, 특수 식품, 델리, 빵, 디저트 등을 판매하며, 푸드코트와 케이터링, 지속 가능성, 지역 사회와의 협력 등 프리미엄 리테일 브랜드가 할 법한 활동은 대부분 포함된다. 중상류층 이상의 고객들을 타깃으로 삼고 있기에, 당연하게도 가격은 그다지 친화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이곳은 탐욕스러운 대기업의 냄새가 나기보다는, 작은 가족 기업의 따뜻함과 고급 서비스를 결합한 매우 독특한 리테일 회사임을 자처한다. 특히 Sleepy Hollow 지점은 지속가능성, 디자인 감각, 공간 경험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브랜드의 철학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매장이다.
Sleepy Hollow는 뉴욕주 뉴욕시의 북부, Westchester County에 위치한 작은 강변 마을이다. 미국 문학과 전설 덕분에 이 작은 마을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한 번쯤은 들어본 듯한 느낌을 준다. Washington Irving의 문학작품 "The Legend of Sleepy Hollow" 덕분에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이 소설은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연극 등 수많은 매체에서 재해석되었는데, 특히 Tim Burton의 영화 (Johnny Depp이 주연으로 나오는) "Sleepy Hollow"가 유명하다. 이렇게 이 마을은 그 자체가 하나의 상상력의 무대가 되었다. 조용하고 아름다운 풍경 속의 불안, 은밀한 미신, 역사와 허구가 교차하는 지점이다.
매력 있는 장소에는 자본이 투입되는 것이 당연하듯, 이 마을의 강변 동네에는 대규모 럭셔리 아파트 단지 개발이 한창이며, 이 가게는 인자기 뺨치는 위치선정을 보이며 단지 한복판에 등장했다.
서론이 길었다. 이제 본격적인 이 슈퍼마켓의 디자인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Perimeter Pergola Canopy Details at the Exterior of the Building)
이 건물은 캐스트 스톤 베이스, 붉은 벽돌, 금속 지붕, 그리고 강철 빔과 목재 서까래로 구성된 퍼골라 캐노피로 이루어져 있다. 건물 하단을 깔아주는 캐스트 스톤과 그 위의 벽돌 벽은 이 마을의 역사성과 지역성을 드러내며, 안정감 있고 무게감 있는 기반부를 보여준다.
외벽을 따라 설치된 퍼골라 캐노피는 일반적인 형태에서 벗어난 길고 틈이 많은 (porous) 구조로, 건물의 주변을 감싸며 독특한 긴장감을 조성한다. 두껍고 직선적인 강철 빔은 날카롭고 묵직한 선을 그려내며, 그 위에 반복적으로 얹힌 어두운 색감의 목재 서까래는 차가운 금속의 긴장을 완화시키면서도 은은한 리듬감을 부여한다. 이처럼 캐노피는 공업적인 질감과 자연적인 따뜻함이 교차하는 모순된 감각을 동시에 안겨준다. (뭔가 Rustic modern industrial organic style?)
이 캐노피 구조물은 단순한 차양 기능을 넘어, 산업적 긴장감과 동양적인 여백의 미가 맞물리는 느낌을 준다. 언뜻 보면 눈에 띄지 않지만, 자세히 보면 상당히 이질적이지만 인상적인 디테일이 드러난다. 창문 앞에는 은은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출입구 주변에서는 마치 의식적인 게이트를 세워둔 듯한 인상을 주며 의도된 입장감을 만들어낸다.
시간에 따라 움직이는 가느다란 그림자는 입면 뒤에 또 다른 레이어를 그려내며, 건물 전체를 감싸는 방식은 마치 건축물이 여러 개의 시침과 분침을 지닌 하나의 거대한 시계처럼 느껴지게 만들다. 덕분에 이 건물은 오전과 오후, 그리고 계절에 따라 각기 다른 표정을 갖는다. 단순한 차양을 넘어, 형태적 강조와 장식성, 그리고 보행자의 시선과 속도를 무의식적으로 조절해 주는 건축적 장치로 기능하는 것 같다.
이 슈퍼마켓의 가장 독특한 점은 시선의 흐름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구조다. 대부분의 슈퍼마켓이 넓게 뻗어나가는 수평적인 동선 구조에 집중한다면, 이곳은 1층 전체가 슈퍼마켓, 2층은 통로, 라운지, 바, 피자집, 사무실, 이벤트 공간 등으로 둘러싸인 공공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1층이 소비에 집중되는 공간이라면, 2층은 사람들과 지역 커뮤니티가 머무르고 교류할 수 있는 마을의 거실 같은 역할을 한다. 그리고 1층 슈퍼마켓의 천장은 지붕으로까지 열려 있고, 2층은 1층의 공간을 “구경”할 수 있도록 위에서 슈퍼마켓 공간을 둘러싸고 있다. 위층의 이 특징은 사람들로 하여금 평범하게 어서 장을 보고 집에 가자 느낌이 아닌, 이곳이 목적지다, 천천히 이곳에서 즐기자 같은 감각을 제공해 준다.
1층 슈퍼마켓으로 입장하는 고객은 자연스럽게 무대에서 연기하는 연기자가 되고, 2층으로 입장하는 고객은 아래층의 무대에서 장을 보는 장면을 관람하는 관객이 된다. 1층에서 퍼포먼스를 끝낸 고객은 2층으로 올라가 쉬면서 자연스럽게 관객이 되고, 2층에서 맥주 한잔을 하며 쉬던 관객은 집에 돌아가기 전에 슈퍼마켓에 들르며 자연스럽게 연기자가 된다. 이곳에서는 퍼포머와 관객의 경계가 끊임없이 서로 교차하고 뒤바뀐다. 이 슈퍼마켓은 단순한 소비의 공간을 넘어, 사람들이 끊임없이 역할을 전환하는 무대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2층 복도에서 슈퍼마켓 전체를 한 위치에서만 보는 것이 아닌, 수평으로 이동하며 조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무대가 한쪽에서만 보는 것이 아닌 관객의 자리가 무대를 둘러싼 구조이자, “건축적 산책”을 슈퍼마켓에서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복층 retails는 계단이나 에스컬레이터로 수직 이동하며 아래 공간을 볼 수 있으나, 이것은 아래 공간의 일부만을 허용하지, 한눈에 전체를 보기에는 쉽지 않게 되어있다. 그리고 이런 경우에 이용자의 주목적은 이동이고, 관망은 순간적이다. 하지만 이 매장은 수평적인 이동을 하며 아래를 관망할 수도 있고, 앉아서 천천히 그리고 길게 시선을 머물 수도 있다.
대형 몰 같은 경우에도 이런 식의 위층의 통로가 아래층의 공간을 내려다볼 수 있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그것은 특정 매장의 내부를 보는 것이 아닌, 공용 공간(public space) 임에 반면, 이 경우는 슈퍼마켓의 내부를 위에서 내려다본다는 점에서도 특이하다.
이 건물의 한 축은 (외부로는) Hudson 강을 바라보고 있고, 안쪽으로는 이렇게 슈퍼마켓을 내려보게 되어있다. 건물은 외부와 내부에 view를 입체적으로 제공해 준다. 이 슈퍼마켓의 사이즈는 30,000 SF로, 교외의 슈퍼마켓 치고는 그렇게 크지는 않은, 중간 정도의 사이즈다. 하지만 위층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는 덕분에 공간은 더 깊고 웅장해 보인다.
그냥 2층 바닥에 큰 구멍 뚫어 놓은 거 아냐?라고 생각하며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이것은 굉장한 건축적 연출력이자, 건물주의 엄청난 결단력의 결과물이다. 일반적인 건물주의 기본적인 마음가짐은(특히 이런 수익을 주목적으로 하는 상업 건물은) 최대한 많이 소득을 얻는 것이다: 돈을 최소한으로 써서 최대한으로 많이 버는 것. 그래서 2층 공간에 큰 구멍을 만들지 않고, 일반적으로 다 메꿨다면 애초에 돈을 덜 쓰고 (디자인 및 공사 비용) 그 공간을 전부 다른 매장들로 채워서 돈을 훨씬 더 많이 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선택을 해서 이런 효과적인 슈퍼마켓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는 굉장히 희귀한 건물주와 건축가의 합작이다. 이것을 현실로 만들어내게 해 준 건축주의 안목이 감탄스럽다.
동시에, 이런 디자인의 결과물은 어쩌면 건축주의 슈퍼마켓에 대한 굉장한 자부심의 결과물이구나 라는 느낌도 든다. 슈퍼마켓의 윗부분이 2층에 전부 공개된다는 것은 냉장고와 선반의 꼭대기가 전부 노출이 되기 때문에 그만큼 청소 및 관리가 더 꼼꼼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뜻이다. 청결함에 대한 자신감이 엿보이는 선택이다. 직원들의 일거수일투족 역시 전부 위층에 공개된다. (물론 사각지대는 있다) 그리고 슈퍼마켓이라는 무대를 만들고 관객들이 무대에 들어와 장을 보는 행위를 하나의 퍼포먼스처럼 만들었다는 점에서 마치 우리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는 행위는 하나의 예술행위다라고 과시하는 것 같다. 그리고 고객들은 예술가(performer)이자 예술을 감상하는 관람자(audience)가 된다.
이쯤 되면 '아니, 위에서 내가 장을 보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구경한다고? 이거 불편해서 어떻게 장을 보라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아래 슈퍼마켓의 조명에 비해 위층의 조명은 상대적으로 어두운 편이라서 정작 장을 보고 있을 때에는 위층이 잘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의식이 되지 않는다. 덕분에 무대에서의 퍼포머는 관객을 신경 쓰지 않고 마음 편히 장을 볼 수 있다.
이 무대의 요소들:
채소 과일과 진열된 제품들이 만들어내는 복잡하고 다채로운 색의 향연
음식의 신선하고 맛있는 향
다채로운 식품 옵션, 특히 맥주. 온갖 크래프트 비어들 다 모아 놓은 냉장고들
사람들의 북적거림이 만들어내는 활기찬 기운과 생생한 에너지
바쁘고 친절하게 일하는 직원들
좁지 않은 동선
높은 천장
시원하게 밝은 조명
사람들이 꽤 많은 와중에 지나치게 시끄럽지 않음 (뉴욕시가 아니라 가능)
이 뚫려있는 공간의 가치는 무궁무진하다. 만약에 건물주가 슈퍼마켓 사업을 접는다면 industrial vintage arena 같은 이 공간은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이 너무나도 많다: 클럽, 공연장 (단순히 콘서트가 아닌 연극, 뮤지컬 같은 공연도 가능), 강연장, 이벤트 공간, 파티 공간, 농구장, 풋살장, 배구, 배드민턴, 테니스, 트랙, 다이빙이 가능한 실내 수영장, 스케이트보드 하프 파이프 등 모든 각종 실내 운동 경기장, 대형 작품을 위한 예술가의 작업실이나 미술관, 박물관, 식당, 술집, 카페, 그리고 그럴 일은 아마 없겠지만, 대형동물인 코끼리나 고래의 (전망이 필요한) 수술실 로도 가능할 것 같다.
건축가는 단순히 상업시설을 설계한 것이 아니고 건축주도 단순히 고급 슈퍼마켓을 지은 것이 아니다. 기능은 기본이고, 그 이상을 기대하게 해주는 공간이다. 이 프로젝트는 리테일이라는 프로그램에 지역성과 독특한 브랜드 경험을 담아낸 공간 플랫폼이다. 슈퍼마켓이라는 일상적인 프로그램에 일반적이지 않은 동선과 유니크한 공간 연출력을 제공해 사람들로 하여금 체류하는 경험을 특별하고 즐겁게 만들어 준다. 고급 혹은 좋은 슈퍼마켓은 단순히 크기만 크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기보다는 소비자의 체류시간을 늘리는 것, 브랜드 경험을 강하게 주는 것, 동선을 일반적이지 않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여기에 지역 사회와의 연결을 고려한 외부와의 개방성, 전통과 현대가 엇갈리는 입면 구성, 그리고 안과 밖을 넘나드는 시선의 흐름까지. 장을 보는 행위는 특별할 것 없는 이동과 선택의 반복이지만, 이곳에서는 관찰과 체류라는 감각이 개입된다. 이 건물은 이러한 효과들로 장을 보는 행위를 한 단계 위로 향상했고, 이것은 단순한 “슈퍼마켓”이 아니라, 하나의 도시적 장치, 일상의 무대, 그리고 지역 커뮤니티의 쉼터이다.
이 슈퍼마켓은 단지 물건을 사고파는 장소가 아니다. 일상의 장면들이 무심코 지나가는 배경이 아니라, 연출되고 체험되는 무대로 기능한다. 이 건축은 여기서 조용하지만 분명한 언어로 지역성과 브랜딩, 그리고 공간 경험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처럼 ‘일상’을 비범하게 만들 줄 아는 건축이야말로, 도시를 변화시키는 가장 설득력 있는 언어이지 않을까.
추가 정보:
- 주소: 1 Legend Dr, Sleepy Hollow, NY 10591 (주소 좋네)
- 건축가: Studio RAI Architects
- BUDGET $5M - 10M
- Sustainability Aspect: LEED Certified, 재활용 유리 사용 콘크리트(Pozzotive), 태양광 패널, 효율적 냉난방 시스템
- 2025년 3월 28일 오픈했음
- 다른 매장들: Ardsley, Armonk, Bedford, Brewster, Eastchester, Harrison, Larchmont, Millwood, Pelham, Somers, with upcoming locations in Scarsdale, N.Y., and Greenwich, Conn.
- Area: 50,000 ft² (1층 30,000 ft² + 2층 7,000 ft² + 이벤트 공간 5,000 ft² + 야외 4,000 ft²)
- 미국 기준 전형적인 슈퍼마켓 약 45,000 SF
- 대형 체인 (Walmart, Kroger 등) 60,000–100,000 SF
- 고급 슈퍼 (Whole Foods 등) 30,000–50,000 SF
- 소형 로컬 마켓 15,000–25,000 SF
- NYC 평균 슈퍼 크기: Trader Joe’s, Whole Foods in Manhattan: 15,000–30,000 SF (복층 포함) Fairway, Food Emporium: 12,000–25,000 SF
- DeCicco & Sons @ Sleepy Hollow 매장 사이즈는 미국 평균 중간 사이즈보다 조금 작은 편이지만, 고급 마켓들만 놓고 보자면 중간 정도 사이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