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의 권위와 권태
"The Ordinary: Recordings"
Rem Koolhaas in conversation with Enrique Walker
2013년 10월 16일, 암스테르담에서 진행된 Rem Koolhaas와 Enrique Walker의 대담을 읽고.
이 작고 덤덤한 표지의 책은 Enrique Walker가 도시에 관한 시선과 연구를 4명의 건축가와의 인터뷰를 엮은 글이다. 첫 장은 Rem Koolhaas와의 인터뷰다.
간단하게 인물 소개를 하자면,
Rem Koolhaas는 세계 최고의 스타 건축가 중 한 명이고, 건축계에서 중요한 책을 여러 권 집필했다.
Enrique Walker는 건축 이론가이자 교수이고, Rem Koolhaas의 작업을 오랫동안 연구해 왔다.
일단, 이 책은 대중서가 아니라 아카데미아 내부 사람들을 위한 책인 것 같다. 이 인터뷰는 Rem Koolhaas에 대한 배경 지식 및 과거 행적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정보가 없다면 이해할 수 없다. 나 역시 내용의 7-80% 정도밖에 이해 못 한 것 같다. 하지만, 그 와중에 묘한 감정과 긴장감이 들었다.
엔리케의 질문은 대체적으로 길고 복잡하고 내용을 꼬아서 모호하다. 솔직히 무엇을 질문하는 것인지 애매하고 본인은 나름대로 이미 답변이 다 준비되어 있고 순수하게 궁금해서 질문하는 것이 아닌, 마치 함정을 파는 듯한 질문들의 연속이다. 렘의 대답은 이러한 변화구들을 전부 쳐낸다. 심지어, 본인이 질문이 다 끝나기도 전에 엔리케의 질문들을 자기가 끝내주며 대답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가 6번이나 등장한다. 렘은 마치 이러한 질문들을 너무 많이 들어서 지겹다는 듯이 짧게 쳐내는 식의 답변들을 하고 엔리케의 "함정"을 전부 회피한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인터뷰는 대상자가 적극적으로 말하려는 태도를 갖고 있고, 대화도 비교적 협조적이고 따뜻한 분위기로 알고 있다. 하지만, 엔리케와 렘이 개인적으로 어떤 관계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렘의 태도가 굉장히 시큰둥하고 냉소적이며 경계하는 느낌이다. 질문자의 말을 끊는 경우도 부지기수이고, 전반적으로 "지겨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엔리케는 뭔가 말꼬리를 잡고 집요하게 캐묻는 모습을 보인다. 당연하게도 인터뷰의 말의 흐름은 매끄럽게 풀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읽는 나 자신도 피로감을 느꼈다.
"그때 왜 그렇게 말했습니까?"
"아직도 그렇게 생각합니까?"
"그때 ~~라고 했었는데 ~~ 했다는 거죠?"
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읽고 이해한 느낌으로는 엔리케는 2-30년 전에 렘이 낸 개념들에 대한 집요한 질문들을 하고, 자기가 들은 답을 묘하게 재구성해서 되묻기를 하고, 렘이 이미 "끝냈다"라고 생각한 개념들, 더 이상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유효기간이 지난) 개념들을 계속 불러오며 뭔가 "심문"하듯이 질문을 하고, 은근히 렘의 논리의 모순들을 질문하며 압박을 한다. 물론, 노골적으로 무례한 발언을 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전반적인 분위기는 반복적으로 의심하는 구조이고, 자꾸 2-30년 전의 과거의 개념들을 계속 들춰내서 해체하려 하니, 렘은 얼마나 피곤하셨을까. 이 할아버지 나이도 많으신 와중에 스케줄도 살인적일 텐데.
읽고 나면 조금 찝찝하고 불편한 인터뷰다. 도대체 엔리케가 이 인터뷰를 통해서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 건지 의문이 들고, 마치 자기가 이러한 거장을 이렇게 공격했다는 식의 자랑을 하는 건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렘은 이 인터뷰로 무례함을 느꼈을까, 피곤하고 불편했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건축 아카데미아계에선 이 정도의 "공격성"은 흔히 볼 수 있는 것인가 싶기도 하고. 물론 이런 류의 날이 선 질문들은 나도 세미나 같은 자리에서 여러 번 목격해 봤지만, 이것을 책으로 낸 것은 처음 본 것 같다.
물론 권위자에 대한 비판도 가능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성역은 없어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이 인터뷰에서는 순수한 비판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엔리케 워커가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모르지만, 과거에 했던, 그것도 2-30년 전에 얘기한 개념들에 대한 허점들을 오랜 기간 연구하고 찾아내서 인터뷰를 하면서 몰아붙이는 식의 질문을 하는 것은 솔직히 부당해 보였다. 그리고 뭔가 건축계 아카데미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의식 과잉의 향기도 짙게 느껴지는 것 같아 거북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변화무쌍한 공격들을 무심하고 힘을 주지 않으면서 툭툭 쳐내는 렘의 답변들이 인상 깊었고, 역시 고수구나 싶었다. 마치 네가 이런 질문들 할 줄 알았다 식의 태도로 별 화려한 말 없이 상대방의 질문들을 무력화시키며 훌훌 털어버리는 답변들이 멋있었다. 이 정도의 사람은 살면서 얼마나 공격적인 도전과 비판을 많이 받아봤을까. 가히 내공이 느껴지는 인터뷰였다.
인터뷰에서 렘은 자신도 자기의 개념들에 피로를 느끼고 자기 과거 작업을 회의적으로 보는 태도도 보이고, 강하게 단정 짓지 않고, 모호하고 힘을 뺀 상태로 두려고 한다던지 하는 어느 정도 차갑고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여준다. 자기가 과거에 썼던 책들과 개념에 대해서도 스스로 진부해진 상태라고도 진단하고 거리를 두려고 하는 모습과 새로운 개념을 소개 및 주장하는 데에도 관심이 없어 보이는 점에서도 흥미로웠다. 렘은 이 시대 위대한 건축 이론가중 한 명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자신의 연구는 단정 짓기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머뭇거림이라고 인터뷰를 끝낸 것은 상당히 멋진 고수의 마무리였다.
우리는 대가를 화려하게 기억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가라는 타이틀은 축복이자 동시에 형벌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이 든다.
그가 한번 던진 말은 그 사람을 평생 따라다니고, 그 말이 클수록 사람들은 더 집요해진다. 누군가는 과거의 언어를 붙잡고 흔들고 누군가는 몇십 년이 지나도 여전히 그 해석을 요구한다. 그리고 누군가는 새로운 정의를 강요한다.
렘은 인터뷰에서 자신은 주장을 망설인다고 말했다.
그는 닫힌 결론을 싫어하고 프레임 안에 자신의 생각과 말을 가두려고 하지 않는다.
대가의 삶은 찬양의 빛과 발목을 잡는 그림자의 끝없는 반복이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의 박수와 존경을 받으면서 동시에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질문과 오해, 그리고 함정 같은 대화.
나는 이 인터뷰를 읽고 나서 렘 쿨하스가 얼마나 삶이 지칠까라고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모든 고난과 역경을 감당할 수 있는 존재기에 그 위치까지 갔으리라 믿는다. 현재 80세의 할아버지임에도 불구하고 은퇴하지 않고 일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존경심이 들었다. 그는 세계적인 스타 건축가이지만, 동시에 평화가 필요한 한 명의 인간일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평온은 아마 오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이미 시대의 아이콘이 된 지 오래이고, 아이콘은 자유로울 수 없을 테니깐.
Fun Fact:
Rem Koolhaas는 네덜란드 사람이다.
Kool은 네덜란드어로 양배추란 뜻이고 Haas는 토끼란 뜻이다.
koolhaas = 양배추 토끼.
이 할아버지 이름 멋있다고만 생각했었는데 몹시 귀여운 이름이었잖아...
오늘 저녁은 오랜만에 양배추와 쌈장이다.